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반응을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 이슈에 대한 외신 반응을 주요 뉴스로 취급하는 한국의 언론과 달리 해외 언론의 반응을 전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미국 언론이 그것도 비판적 논조가 주종을 이룬 해외 보도를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카트리나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늑장 대응, 미국의 인종 문제, 기후변화 정책 등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상세하게 전했다. 신문은 또 그간 '반미 국가'로 여겨 왔던 쿠바와 북한 등에서 온 구호 제안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도했다.
다음은 해당 WP 기사의 요약.
***"뉴올리언스, 바그다드·방글라데시 떠올리게 해"**
세계 각국의 국민들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기 어려워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짐바브웨에 이르기까지, 뉴올리언스의 사망자나 절망에 빠진 이들-그들은 대개 빈민이고 흑인들이다-의 사진이 주요 신문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고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부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아이티, 바그다드, 수단,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떠올리게 한다. 파괴된 건물 잔해와 주검들, 생존자들의 공허한 눈빛은 저기가 미국이 아닐거라고 생각하게 한다.
"미국은 제3세계"라고 제목을 뽑은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법과 질서는 사라졌다. 총을 든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강간과 약탈이 횡행하고, 더위와 갈증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썩어가는 주검들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다. 그런 지옥 같은 광경은 지금까지 제3세계 재난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의 모습이다"라고 썼다.
'카트리나 재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충격, 동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으로 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무능력'이라면 가장 좋은 비판이고, 가장 심한 경우 '인종차별주의'를 지적한다.
많은 분석가들은 이라크에만 정신 팔려 있는 부시 행정부가 자기 나라의 자연 재해를 처리할 모든 자원을 없애버렸고, 카트리나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부시의 무관심을 조롱했다고 말한다.
***쿠바, 베네수엘라, 북한까지…**
50개 이상의 나라들과 많은 국제기구에서 구호품과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음베키 대통령이 위로의 말을 전했다. 부시 비판에 앞장섰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백악관에 손수 작성한 위로 전문을 보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중국도 수백만 달러의 성금을 보내 왔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도 지원을 제의해 왔다. 가장 눈에 띄는 '역할 반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미국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엘살바도르가 치안유지를 위한 병력 파견을 제의하고 보스니아, 코소보, 벨라루스, 그루지아, 스리랑카에서도 지원 제의가 왔다.
북한 관리들도 평양을 방문했던 짐 리치 미 하원 아태소위원장과 톰 랜토스 의원에게 각별히 신경 써서 위로를 표했다고 말했다.
***비난 일색**
그러나 대다수 세계 언론의 반응은 그렇지 않아도 이라크전 때문에 세계여론의 평이 나쁜 부시 대통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런던의 <인디펜던트>는 "미국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부시는 어디에 있었는가? 부시는 왜 5일 후에야 뉴올리언스에 갔는가? 어떻게 2500만 인구의 이라크는 3주만에 접수하면서 운동경기장에 있던 자국민 2만5000명은 구하지 못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라크의 한 신문은 허리케인에 관한 사설을 실었고 <알 자지라>는 구조 활동을 방송했다. 이라크인들은 (구조 활동을 위해) 미군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은 무릎을 꿇은 채 절망의 절규를 하고 있는 젊은 여성의 사진을 1면에 싣고 '잊혀진 자의 분노'라고 제목을 달았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동남아 쓰나미 때는 그렇게 신속하게 현장에 출동했던 미군이 "자국 영토 내에선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스라엘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한 TV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는 부시 행정부가 인명 구조보다는 휘발유 공급 확보에 더 우선순위를 뒀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중국의 웹사이트에선 최근 홍수와 지진 때 중국군 수십만 명이 구조·구호에 투입된 데 비해 "초강대국 미국은 수천 명만 보냈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 폭력문화, 인종갈등…**
다른 나라의 언론들은 카트리나와 지구 온난화를 교토의정서에 반대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연계시켰다.
아르헨티나의 한 신문은 사설에서 "허리케인의 공포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보여주는 가장 나쁜 사례"라고 썼다. 독일의 환경장관도 카트리나가 부시 행정부에게 지구 온난화 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언론들은 뉴올리언스의 약탈과 혼란상은 미국의 폭력문화를 반영한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한 영자 신문은 "쓰나미 때는 단 한명의 관광객도 피해자들에게 강탈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미국에서 우리는 그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스리랑카 시민의 말을 전했다.
미국의 인종문제도 부각된다.
뉴올리언스 참사에 대한 세계 여론의 저변에는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이 유색인종에겐 별로 그렇지 않다는 인종주의와 관련한 문제제기가 깔려 있다.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등 동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피폐한 흑인들이 주로 희생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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