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대재앙으로 사망자만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또 한차례의 허리케인이 남부 해안지대를 내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미국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9월 중 남부 해안 강타"**
허리케인 전문가인 윌리엄 그레이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와 연구진들에 따르면 "허리케인 시즌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아 카트리나에 이어 시속 177km가 넘는 강풍을 수반한 또다른 대형 허리케인이 9월 중 해안지역을 강타할 가능성이 43%나 된다"고 예측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대서양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시즌인 6~11월 중 매달 기상상황을 예측해 정보를 제공해 온 이들은 "10월에도 대형 허리케인의 위협 가능성은 15% 정도 된다"면서 "이 시즌에 열대성 폭우가 20개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10개가 허리케인이며, 다시 이 가운데 6개는 대형 허리케인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콜로라도 주립대의 기상전문가 필립 클로츠바흐도 "지금까지 우리가 목격한 매우 왕성한 허리케인 시즌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예측이 잇따르자 카트리나 피해복구는커녕 약탈·성범죄·총격전의 대혼란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있는 미 연방정부와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중이다. 또 매년 허리케인에 몸살을 앓아 온 남부 해안지역 주민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늑장 대응' 비난 여론 들끓어**
한편 여전히 5만 명 이상이 고립된 것으로 보이는 뉴올리언즈가 "시가전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심각한 혼돈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허리케인에 대한 미 행정부의 사전 대비 및 사후 대처 태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2일자 칼럼에서 9.11 테러 전 연방방재청(FEMA)에서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피해를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며 미 행정부를 '무능 정부(can't-do government)라고 비난했다.
크루그먼은 '구호물자와 주 방위군이 왜 그렇게 늦게 도착했는가' '사전 조치는 왜 이뤄지지 않았나' '행정부가 연방방재청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 것은 아닌가'라는 세 가지 의문을 제기하며 부시 행정부를 통렬히 비난했다.
그는 '제방 붕괴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1일 발언을 거론하며 그같은 경고는 수없이 있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는 '지도자를 기다리며'라는 1일자 사설에서도 "대통령은 나서야 할 때보다 하루 늦게 나타나고도 '얼음과 담요, 발전기 등이 재해 지역에 전달되고 있다'는 식목일에나 할 한가한 연설을 했다"고 꼬집으며 "지금은 수재 지역 구호가 최우선이지만 조만간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왜 그렇게 부적절하게 방치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CNN>도 "연방 정부가 필요한 병력과 물, 식량 등 구호물자를 신속하게 보내지 못했다"는 뉴올리언스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라크에 군대만 보내지 않았어도…"**
이라크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번 참사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원성도 끊이질 않는다.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인 미시시피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각각 3800명, 3000명의 주 방위군이 이라크에 파견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인재(人災)'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허리케인이 오기 전에 주방위군들이 동원됐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일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에서 2001년 이후 허리케인 대비 예산이 1억4700만 달러에서 8200만 달러로 대폭 삭감됐다고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는 올해도 루이지애나 주의 허리케인·홍수 방지를 위한 내년 연방기금을 7100만 달러로 삭감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는 나라는…"**
또 이번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국 사회의 인종분열 구조와 미국인들의 행동 양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일 뉴올리언스에서의 혼돈이 미국사회에 내재된 뿌리깊은 분열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구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 구호품 공급 실패 등의 혼란에 세계인들이 놀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올리언스는 미국에서 흑인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도시로 인구의 67%가 흑인들이다. 현재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잔류자의 대다수는 이들 흑인들로 해수면보다 낮은 뉴올리언스 시내에서도 가장 저지대에 있는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
사태를 다루는 미국 언론들의 태도 역시 이같은 분열상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태 초기 정부의 늑장 대응에 입을 모아 비난하던 몇몇 언론들이 약탈·강간 등 사태가 폭력적 양상으로 변모하자 백인들의 약탈 행위에 대해서는 '생필품 확보 시도'로 보도하는 반면 흑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폭동'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또 이번 사태가 지난해 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몰려 있는 남아시아를 덮쳤던 지진해일 '쓰나미'의 참상과 대비된다면서 특히 그 대응에 있어서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고 전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한 시민은 "쓰나미 때는 삶의 모두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피해자들을 도우려고 나섰고, 단 한사람의 관광객도 피해자들에게 강탈당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했다는 미국에서 우리는 그같은 강탈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비꼬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작은 정부'의 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위스콘신주 메디슨시의 전 시장인 폴 소글리는 이번 사태가 커진 것은 카트리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자유방임적인 연방 정부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공공 지출을 축소시키는 우파 정부에 뉴올리언스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한 룩셈부르크 외교장관은 이번 재앙은 빈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보면 21세기에도 국가가, 그것도 아주 잘 작동하는 국가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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