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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교육비 줄이느니 출산을 조절한다"

[토론회]'출산율 1.16명' 시대, 어떻게 극복하나

한국 사회는 최근 1.16명이라는 사상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바야흐로 '저출산 대책'을 둘러싼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언론과 각계 전문가들은 "선진국보다도 급속히 진행되는 우리 사회의 저출산 경향은 가히 재앙 수준"이라며 정부 정책을 주문하고 나섰고, 정부 역시 출산율 제고 정책을 두고 부심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여성계가 "현재 정부 정책 기조나 저출산 논의의 초점이 '숫자확보(인구대체수준 2.1명)전쟁', 즉 출산율 제고라는 인구학적 틀에만 맞춰져 있다"며 "여성의 관점을 담아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지 않는다면 과거 '산아제한'처럼 여성을 일방적인 정책 대상자로만 파악하게 되고 결국 해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여성단체연합과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는 31일 서울 YWCA에서 '저출산과 가족정책, 새로운 출구를 찾자'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열고 현재 우리 사회의 저출산 원인과 대책을 짚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저출산을 부른다?**

박수미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및 고령화 위기가 고조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도처에 깔려 있다"며 "우리 사회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질수록 사회의 출산율도 낮아진다는 오래된 신화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신화'를 단호히 반박한다. 개발국가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에서는 반대로 성평등 수준이 높고 여성들에게 '일이냐 가족이냐'라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OECD 국가중 출산율 하위 국가는 우리나라와 이태리를 포함한 남부유럽 등 가족주의적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 차지하고 있다.

장 연구위원은 "저출산의 원인은, 사회는 여성의 임금노동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데 비해 출산과 양육은 여전히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는 현실"이라며 "OECD 국가에서도 고용 평등 수준이 높고, 가사분담율등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교육비 줄이느니 출산을 조절한다"**

그렇다고 여성만 출산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곤두박칠 치는 출산율은 남성들과의 '합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출산율 저하는 1997년 말 외환위기와 그 뒤 경기불황 시기와 겹친다. 고용 불안정, 주택 마련의 어려움 심화, 치솟는 교육비 등은 생계부양을 요구받는 남성들의 혼인과 출산의 연기를 초래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여봉 강남대 교수는 저출산의 원인으로 끝없이 치솟는 양육·교육비를 지적했다. 실제로 공교육이 약화되고 사교육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상태에서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녀의 계층적 지위가 결정되다보니 교육열이 남다른 한국 사람들은 일단 낳은 후에 교육투자를 조절하느니 출산아 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대책에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최대한 차별받지 않고 사회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전폭적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과 여성의 양육,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수당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수당 지급 중심의 출산율 제고책은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전업주부화와 성별분업의 심화를 촉진시켰을 뿐"이라고 혹평하며 "그나마 국가가 지불하는 보상이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밖에 없어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남성도 '양육 책임' 지지 않는 한 해결 요원"**

이에 김혜경 전북대 교수는 "수당 지급이 아닌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중시한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도 복지 서비스 공급은 늘 부족했고, 여성들은 늘 돌봄노동의 부담을 떨쳐내지 못한 2류 노동자의 상태에 있었다"며 "두 방식에 다 한계를 느낀 서구사회에서는 최근에 '여성적 노동패턴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노동할 권리'와 '부모 될 권리'을 지닌 '자녀양육자'이자 '임금노동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양육·돌봄을 가족 내 한 개인이나 사회가 100% 감당할 수 없다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아이의 성장과 노인 돌봄이라는 가족 과제에 따라 양육과 임노동 사이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육아 휴직 의무화 같은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는 출산을 과연 얼마나 '축복'하나?**

김 교수는 지난 7월 말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게재된 한 주부의 '임신 체험' 사례를 소개했다. 임신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출산 백수'가 된 여성의 생생한 '죄책감과 불안감'은 출산할 권리도 출산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표상한다.

이 주부는 "임신 4~5개월쯤 회사를 그만두고 문득 주어진 '백수'의 자리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계획한 일이 미뤄지고 어쩌다 낮잠 자거나 인터넷 뒤지기로 하루를 보낸 날은 얼마나 스스로를 질책했는지 모른다. 일하고 있지 않을 때는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옥죄었다. 많은 직장 여성들이 임신 탓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야근, 출장 마다않는 심정과 비슷했다. 왜 임신이 사회적으로 배려의 상황이 아닌 핑계거리로 비치게 됐을까. 사회도, 당당하지 못했던 나도 원망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왜 하나는 낳는데, 둘은 안 낳을까**

이여봉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막대한 시간과 양육비, 교육비 그리고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을 의미한다"며 "그런 '오랜 경제적 의무'의 대가는 정서적 가치인데, 그 효용이 1명보다 2명이 크다는 게 확실치 않은 이상 두 명을 낳을 유인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수미 연구위원은 "서구의 경우 가족 내 가사분담 등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둘째 아이를 낳는 경향이 뚜렷한데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그런 경향이 없었다"며 "그러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출산으로 인한 취업 단절과 양육의 100% 책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독신 유지, 비출산, 한 명 출산으로 드러나고 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정책의 키워드는 '아이를 낳지 않게 만든' 원인 제거와 '아이를 낳고 싶어지게 하는' 여건 조성에 있다. 얼마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파티쉐라는 자기 직업에 애착을 보이는 주인공의 결말이 결혼이 아닌 것에 왜 그리 많은 여성들이 열광했는지 정책입안자들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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