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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글쓰기의 지옥과, 그 너머 단아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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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저, 글쓰기의 지옥과, 그 너머 단아의 표정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제2부 <8> `쟁이` 고종석

문태준 시 <맨발>은 2-3년 전 말 그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언어 흐름과 착상의 흐름이 유구하면서도 기발하여 더욱 신기하고 그 신기함이 곧장 고전적 품격을 얻은 명편이지만, `글씨는 자세`라는 밋밋한 제목의 산문으로 읽어도 감동이 섬짓하고 엄정하다. 전문이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를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그런데, 한 달에 한 편 쓰는 것도 아끼고 아껴서(우리나라 시인들의 `권장` 생산량이 대충 그렇다) 공들이고 다시 공들이고, 그것을 깎아내고 다시 뼈려서 `출산`하는 시인들이야, 그렇나?, 그렇네, 그렇구나… 그래야지, 하며 위 시의 감동에 스스로 동참하면 그만이지만, 소설가이자 신문기자이면서,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소위 `잡문`을 1주일에 여러 건씩, 한 달에 2-3백 매 씩(`잡문 2백매`는, 내 경험으로 볼 때, 신문소설 연재 2백 매보다 열 배 이상 어렵고, 원고료는 아무리 잘 받아도 1/5 이하다.) 꼬박 써내면서도, 바로 위 시의 글쓰기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고, 다시 위 시의 글쓰기 `성과`까지 끝내 담보하는 사람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인가? 그 자가 사람처럼 보일 것인가? 그거야 말로 `글의 지옥`을 헤매는 `저주받은 자`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글과 얼굴 표정과 몸의 표정이 끝내 단아하다면, 좋은 글쓰기 능력을 아에 잡아 먹는 것으로 호가 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별나게 호가 난 `칼럼`을 쓸 때도 그러하다면? 고종석이 바로 그런 사람이고, 그래서 `고종석`이란 이름 혹은 명명이 나는 측은하면서(이때 나는 김수영 산문의 그 짜증이 갑자기 엄살처럼 느껴진다. 지가 얼마나 썼다고?) 존경스럽다(이때 나는 내 글이 창피하다. 나는 어쩌자고 이리 마구잡이로 흐트러지는 거야, 도대체?). 우리나라는 명망가는 많아도 `쟁이`가 없어, 제대로 된 `쟁이`가,….술 취한 김민기(작곡가)가 인사불성의 경지로 돌입하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내뱉는(그래서 이만 술자리를 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결코 파하고 `싶지` 않은) 그 소리에 응답할 만한 참으로 희귀한 사례가 바로 그다. `딴따라` 쟁이 아닌 `글` 쟁이를 김민기가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 모양새는 그런 점을 흡사 미술화-반영한다. `훤칠`과 `대머리` 사이 절묘한 위치를 점한 이마는 그 안에 든 지식이 너무 무르익어 수박 같고(언젠가 술자리서 내 머리가 엉겁결에 그의 머리 대신 취객의 500cc 짜리 생맥주 잔을 버텨낸 적이 있는데, 재수없다기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수박`이라면 정말 깨져버렸을 테니까.), 그 아래 새하얀, 정말 지식인처럼 창백한 얼굴에는 고뇌와 비판 사이 개구장이 표정이 앙증맞은 채로 아슬아슬하다(왜냐면, 그도 가끔, 술이 취하면, 글 `밖에서` 신경질적이다). 어쨌거나, 비판에 비판을 거듭하다가 비판만을 거듭하고 심지어 비판만이 살 길이 된 언론판에서 기자로 오래 동안 밥을 벌어먹고 살면서, 원래 복수보다는 상처를 키워가면서 감동을 자아낼 밖에 없는 문학을 꿈꾸는 고종석의 숱한 글쓰기가 `망하지` 않는(나는, 작가지망생을 키우는 문학학교 운영자로서, 신입생들한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신문을 아주 꼼꼼하게, 1면 정치면부터 사회면, 문화면은 물론 주식시세를 거쳐 TV 프로그램 안내까지. 사실의 범위를 가늠하고 이야기의 이면을 상상하는 동시에 내용 반복과 딴말과 얕음을 1년 동안 치열하게 감당하면 둘 중 하나다. 미쳐서 망하거나, 상당한 문학적 적응력이 생기거나…) 든든하고 건장한 까닭 중 첫 째는, 매우 치열한 그의 언어학적 사고(그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언어학과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언어`가 제목에 들어간 산문집이 5권이다), 그리고 순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신=방법론`이다. 그는, 자칭 자유민주주의자고 내가 보기에 `아름다워서 무서운` 자유민주주의자지만,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인 나보다 더 솜씨 있게 구분하고 결합한다.

앞의 시 낭독을, 성우 혹은 연기자 뺨치게 잘 하길래 많이 해 본 솜씨 같다고 짐작했더니, `처음`이라고, 그래서, 설마 언론인이 되고 싶어했다가 (할 수 없이)문학도 겸한 것은 아니겠지, 그 거꾸로겠지,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문학에 별다른 뜻은 없었고, 대학 다닐 때 성적이 신통찮아 좋은 직장에 못 가고 시험으로 뽑는 곳은 고시나 신문사 밖에 없어 신문사를 택했다. 그리고, 신문기사 같은 역사 서술언어만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뭔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언어자체가 분절적이므로, 연속적인 세상을 재현하는 데는 본디 불완전한 도구지만, 소설이나 시 언어는 역사 서술 언어보다 섬세하다. 특히 시는 수 천 년 동안 한국의, 그리스의, 영국의 시인들이 벼려낸 언어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분명하게 들고, 마치 발이 근지러운데 구두 바깥을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언어 자체로 양말까지 다 벗을 수는 없겠지만, 구두라도 좀 벗어보자, 그래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실, 양말의 두께가 얇을수록, 좋은 작품이고, 두꺼울수록 좀 덜익은 작품 아닐까…날이 무더우니 양말 비유가 나왔겠으나, 이 비유는 워낙 깔끔해서 냄새와 멀다. 그리고 주로 시(읽기)에 집중된 그의 문학비평은 바로 그렇게, 운율 이야기가 좀 지루하다 싶으면 어느새 그의 언어학이 주관성을 벗은 언어미학의, 그리고 감동의 설득력이 튼튼한 시학의 미문에 달한다. 객관성이 지리함을 낳고, 미문이 주관성을 너무 쉽게 허락하는 것이 대세인 오늘날 문학비평 풍토에서 그의 글은 단연, 그가 좋아하는 말로 `아웃사이더`적이고, 참신함이 위협적이며 위협성이 참신하다.

그 전에, 자신의 첫 소설 <기자들>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위 `문청` 시절을 겪지 못했고 신문기자를 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정식 등단도 안한 처지에 민음사 친구(이영준)한테 연줄로 부탁하여 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소설인가 싶긴 하다. 이 책을 내기 한 달 전 쯤 프랑스 저널리즘 연수를 갔다가 외국기자들과 9월 정도 어울려 같이 취재 다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 반에다 거짓말 반을 보태어 썼고, 지금은 절판되었다…얼핏 들으면 무슨 재능 없는 작가 자비출판(연줄도 빚이고, 그러므로 돈이다) 작품의 말로를 보는 듯 하지만, 이 말에는 `고종석`의 오늘날 위치를 설명해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들어있다. 그는 문학에 대한 비이성적인 환상이 없으며, `잡지`보다 더 본격적인 전작 `출판`을 통해 제대로 등단했으므로 소위 `잡지 동인` 그룹의 혈연적 영향력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 최인훈 <광장>을 신화화했을 뿐 맥을 잇지 않았던, 그러므로 최인훈이 자신의 만년작 <화두>로써 이을 밖에 없었던 지식인소설의 맥을 오랫만에 되살리려는 노력의 소산이 바로 <기자들>이라는 것. (상업성과 문학성 판단에 두루 능통한 민음사가, 내가 보더라도 상업성과 무관한 책을, 더군다나 데뷔 장편을 제 이름 걸고 출판한 것은, 그만한 문학적 가치 때문 아니겠는가) 그리고,, 과연, 그 후 3년 만에 출판된 단편소설집 <제망매가>가 명작에 반열에 오르고, 2003년 출간된 단편소설집 <엘리야의 제야>의 세계는 그보다 더 나아가는 바로 그만큼 지식인적이며(그는 여전히 `기사로 기록되는 역사는 그물코가 크다. 나는 그 그물코에 걸리지 않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발언하지만), 한마디로, 고종석 류 지식인소설의 탄생을 알리고 있는데, 그곳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글의 지옥은 정말 끔찍하고, 바로 그만큼 그가 달한 `지식인 소설`의 경지는 (빡빡하거나 난삽하기는커녕 오히려) 눈물겨우며,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최소한 문학에서는 너무 정치적이다. 모든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 주류다)로서 `주류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주류보다 더 깊게 더 넓게 보기 위하여 아웃사이더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된다. 도대체, 어떤 글의 지옥을, 어떻게 헤쳐왔길래?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프랑스 바람이 들었고, 그곳에서 먹고 살아야 하므로 이런저런 원고를 써야 했는데, 반 정도는 신문 기사, 반 정도는 산문에 가까운 글이었고, 그러다가 IMF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환율이 두 배로 올라 할 수 없이 다시 들어왔다. 한국어로 한국어 매체에 투고하면서 이따금씩은 유럽 잡지들에 영어나 불어로 글을 썼는데, 외국어로 글을 쓰는게 워낙 힘들고 거리도 적어 수입에 별반 도움이 안 되던 터에 한국어 고료가 반으로 줄어든 셈이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애들이 한창 클 때라 더 있다가는 프랑스와 한국 사회 양쪽에 모두 적응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한 몫 하였다.

그게 98년이고, 그 후 2년을 더 글쓰기로 개기다가 그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취직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그 해 가장 기분 좋은 뉴스 5개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데, `출근 시간이 헐하여` 다닐 만 하다던 이 직장에서 그는 틈틈이 논설위원의 역할을 하는 것 외에, `오늘의 역사`를 매일매일 기록하는 `오늘`을 장장 4년 이상 계속 집필, 나를 아예 질리게 하고 만다. 질렸다는 것은, 양과 길이도 그렇지만, 기껏해야 숫자와 주로 정치적인 인물 이름과 사건의 별 의미없는 나열, 혹은 엉성한 조합에 머물렀던 `오늘의 소사`류가 그의 언어학적 문체를 입으며 진정한 역사 기록으로, 그리고 `역사와 오늘`이 절묘하게 뒤섞이는 일상의 아름다운 모뉴멘트로 바뀌어갔던 것이다. 지리한 뉴스의 나열보다 더 중요한, 일상의 `유현=모뉴멘탈라티`를 그때 나는 만났고, 뉴스와 그 모뉴멘탈리티의 만남이야말로 언론의, 특히 방송에 밀린 신문의 주요 사명이라는, 일 것이라는, 이어야한다는, 생각에 나날이 행복했다. 신문 안보기 훈련을, 마치 마약 중독 치료하듯 한 10개월 독하게 하여 마침내 성공했으나 `신문 없는 아침`이 너무 `원시적`이라는 마누라 하소연에 따라 내가 `구독 써비스`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돈을 내며 한국일보를 신청한 것이 장명수의 감성칼럼과 박래부의 문화칼럼, 그리고 고종석의 시사칼럼에 덧붙여 당시 성석제(소설가)가 매일 쓰던, 그 후 김영하(소설가)를 짧게 거쳐 이순원(역시 소설가)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쓰고 있는 `2.9매까지` 문학칼럼 `길 위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매일 그 정도 `좋은 글`을 읽는 것으로도, 언론의 지옥을 문학의 천국으로 매일 바꾸는 일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고종석의 `오늘`은 `언론=문학`의 천국을 `매일` 보여주었다고 할 만하다. `언론=문학`이라…특히 그가 `오늘`에서 다룬 `파리꼼뮌 대목은 탁월한 문학적 부고인 동시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객관성`이, 최소한 언론에서는, 허술하거나 나태하기는커녕 극한대로 엄정하며, 그 엄정함으로 자유주의 너머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설의 전범이다.

올 해 3월 `출근이 더 하기 싫어` 한국일보를 떠난 후 그는 같은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일 주일에 한 번 20매 짜리 시인론 `시인들의 공화국`을 연재하는 외에, 월급을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저곳에 더 많은 글을 써야할 팔자가 되었다. 물론 그는, 아주 역동적인, 화급을 요하는 직장 생활을 여러 차례 했고, 직장을 얻으려 전전긍긍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므로, 나와 같은 원초 실업자, `프로` 실업자, 바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해볼 필요도 없는, 그래서 진짜 시간이 많고 한가하고 심심한, 상대방이 무심코 `바빠요?` 물어도 무심코 `비쁘다`고 한 적이 없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 그런 거의 선천형 실업자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의 글 지옥은 나의 글 지옥과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나는 그가 앞으로 쓸 글들, 그리고 글 사이 관계들이 궁금하고 그 관계를 점치는 일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생방송이, `생`과 정반대인 갖은 사전 제약 때문에 더욱 생방송의 가상현실로 변하고, 신문기사가 지루한 반복과 딴소리 때문에 더욱 문학적 상상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고, 더 본질적으로, 상상의 신화와 불확정성의 양지 장 사이 현실이 위태로워 보이고, 문학예술의 눈이 정치-경제 및 시사의 그것보다 더 총체적으로 되어야 하는 지금, 그는 어느 쪽을 어떻게 파고 들며 자신의 `예술-언론` 현실의, 그물코 자체를 심화하려 할까?

편파적이지만, 공정하게 쓴다…유시민(국회의원)의 말을 빌어 그는 자신의 칼럼 태도를 그렇게 표현한다. 기계적인 중립은 없다. 대개 어느 한 쪽 편을, 소수자 편을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편의 장점과 상대 편의 결점을 더 들추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을 칭찬 할 때 감정이 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비판할 때는 아주 차갑게, 광물질 언어로 비판한다…하지만, 그것 만으로 양비론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그의 칼럼은 인민주의자들의 그것과 달리 `공분`(`천인공노할`이란 형용사가 따라 붙는)을 동원하는 법이 좀체 없다. 결국은 너무 자주 남발되어 방향과 의미를 잃는 그 공분에 비겁하게 자신을 떠맡기지 않고, 주장의 민감한, 혹은 지독한 핵심 앞에 거의 반드시 `내 생각에는`을 붙인다. 상처를 피해 공분을 동원하는 칼럼의 내용과 문체는 흔히 `폭력을 닮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 마련이지만, 상처에 맨 살을 디미는 그의 칼럼은 오히려 그 상처를 벗어나거나, 극복한다. 고종석 칼럼을 사이비 자유민주주의자, 혹은 양비론자들의 그것은 물론 그 숱한 `안티조선` 논자들의 그것과도 뚜렷이 구분해 주는 점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

옛날에 내가 활동하던 단체의 무용분과 연습실이 합정동에 있었는데 어느 날 춤꾼들 한테서 이상한 `보고`가 들어온다. 도저히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고 무슨 탈을 쓴 것 같은, 그러나 표정이 험악하지 않고 꽤나 착해 보이는 사람이, 실업자 같지는 않고, 분명 직장인 같은데, 매일 10시가 넘어서야, 하지만 대개는 같은 무렵에, 심하게 작취미성인 상태로, 세수도 안 했는지 머리칼 흐트린 채로 지나간다…보고에 구조 요청 기미는 전혀 없었지만, 어쨌거나 여자들만 연습하는 곳이라 모처럼 그 시간에 맞추어 연습실로 갔다가 피차 `가관`의 몰골로 처음 만난 이래, `문화부 기자` 고종석이 스스로, (내가 보기에 완벽한)자유민주주의자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내가 보기에 어설픈)사회주의자라는 것을 숨긴 적이 없지만, 대단한 토론 혹은 논쟁을 벌인 일도 없다. 그는 나를 안쓰러워했을 망정, 그가 가장 좋아하난 단어를 쓰자면 내가 `짠했을` 망정, 나를 불편하게 생각한 적이 없고, 나는 그를 `희한해`했을 망정, 또한 그가 불편했던 적은 없다. 그가 나를, 내가 그를 `술 먹자, 당장 나오라.`고 한 적은, 많지 않지만, 그의 강권을 내가 달가워하지 않은 적이 없고, 나의 강권을 그가 물리친 적도 없다. 딱 두 번 `시간에 쫓기는 일` 때문에 그가 물리쳤으나, 한 번은 이메일로 해명편지(?) 보내고 한 번은 며칠 후 지가 자리를 만들었으니 더 고마운 일이다. 그가 말했듯, 그의 `자유민주주의는 `개인`과 `자유`뿐 아니라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의지 혹은 욕망이다. 사회주의를 빙자하는 인민주의자와 만나는 일은,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일을 되돌아 보아야 하는 일로, 지리멸멸하며 살아온 생애가 갑자기 오늘의 어깨를 지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자유민주주의자를 빙자하는 극우와 만나는 일은,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젖는 일로, 발걸음의 남은 힘 전체가 후둘거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종석의 순정하고 능란한 자유민주주의 `내용=형식`은, 자유민주주의자와 더불어 자유민주주의 `너머`를 지향하는 일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정한, 그리고 가능한 진보`라는 점을 매우 명징하게 깨닫게 해준다. 자유민주주의 `이전`의 사회주의도, 진보도, 어불성설이라는 것. 어떤 명분이든 자유민주주의 이전으로 회귀를 허용에서는 안된다는 것(그가 `우익보다 더 우익적이며 좌익보다 더 좌익적`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그 점 만으로는 고종석을 만난 사회주의자는 행운을 만난 것이다.

현재 남한의 언론 풍토는 물론, 문단 풍토로 보더라도, 그의 입지는 매우 좁고 앞으로 한참 동안 그럴 듯 싶지만, 이것은 언론과 문단 풍토가 현재 무척 잘못되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 그럴 것 같다는 뜻이지, 그가 아웃사이더라는 얘기가 아니다. 고종석의 문학 창작과 비평, 그리고 언론 칼럼을 종합-확대-심화하면, 놀랍게도 거대한 밑바탕이, 느리다기보다는 끈질긴 지구전이 드러난다. 그것은 매우 소중한 우리 문학의 미래의 일부다.

Ps. 그리고 고종석 원군은 많았다. 강금실(변호사)과 김진석(철학자), 황인숙(시인) 등 평소 술친구들이 격려차 왔고, 강금실 보러 현기영(소설가)이, 현기영 따라 강형철(시인)과 김정헌(화가)이 왔으며, 후배기자 최윤필(문학 담당)과, 왠 `흐트러진 미인` (사회부 여기자 `상당한 미인`으로 호칭을 바꿨으나 본인이 `흐트러진`을 최고 찬사라고 여기므로 다시 바꾼다)가 선배 모시러 오고, 기타 사업으로 온 KBS TV 프로그램 <낭독의 발견> 담당 PD와 작가들, 그리고 <노찾사> 멤버까지 가담을 하니 학림다방 뒷풀이 자리가 삽시간에 뻑적지근하고, 사람을 줄여 자리를 옮긴 카페 마리안느에서는 <노찾사> 즉석 공연까지 이뤄지니, 무엇보다 주인(소설가이자 가수-작곡가 이제하>이 동업자로 반색하고…어이구 정말, 한국일보 기자들 짠하네. 한국일보 어렵다던데, 잘 되어야 할 텐데…<국어의 풍경들>(1999)에서 고종석이 `국어사전`을 편찬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거나 같이 하자 그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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