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잇딴 설화(舌禍)를 낳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26일 노 대통령의 말에 '옳다구나' 하며 "대통령이 하야가 빠를수록 경제회생이 빨라진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루 전에는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는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에 있다"고 대통령을 감쌌다가 '국민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두 정치인은 뒤늦게 '말 거두기'에 진력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한구 "대통령 본인이 하야 원한다고 하니깐…" **
이한구 의원은 2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고 알려진 것을 해명하는 데에 부심했다.
이 의원은 "나는 하야를 요구한 게 아니고 본인이 정권을 내놓겠다고 하면, 그러면 한국의 경제회생 가능성이 한결 높아지고 빨라진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경제운영 실적이나 또 경제운영을 하는 태도나 책임의식을 봐서는 오히려 그만 두는 것이 경제회생에 도움은 될 수 있다"면서 '소신'을 굽히진 않았지만, "본인이 특히 원한다고 그러니까"라고 덧붙이며 연정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주장임을 강조했다.
이에 손석희 앵커가 "한나라당에서 아예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어떻냐, 차라리 정권인수에 나서는 것이 어떠냐"고 다소 공세적으로 묻자, 이 의원은 "본인이 물러나겠다고 하고, 확실하게 물러나면 저절로 법에 의해 선거를 하게 되는 것"이라며 오히려 "선거에서 국민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야지 국민 지지도 확인하지 않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내놓으라 말라 요구할 자격이 있나"고 되물어 '하야'란 격한 단어를 선택한 전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의원이 이처럼 몸을 낮춘 것은 '하야 발언' 직후 쏟아진 열린우리당과 여론의 비난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의 개인 홈페이지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는 '정치를 지저분하게 하지 마라', '다시 탄핵하려고 분위기 잡는 거냐', '국민의 이름을 싸게 팔지 마라' 등 네티즌의 비난 댓글이 봇물을 이뤘다. 열린우리당 역시 "하야 발언은 제2의 탄핵발언"이라며 강공으로 맞서고 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 의원이 오버한 것"이란 기류가 강하다.
이 의원은 정책위의장 직에 있었던 지난해에도 "대통령 탄핵 사유가 누적되고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조기숙 "정부와 국민 간 의사소통 안된다는 얘기" **
조기숙 수석도 상황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조 수석은 지난 2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이 장기적인 혁신을 하려고 하는데 국민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며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는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에 있다"는 발언을 한 뒤 파문이 일자, 26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서둘러 해명했다.
조 수석은 "국민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21세기형 정치를 해달라고 뽑았는데, 주변의 상황들이 권위주의 때의 폭로정치, 음모정치, 음습한 정치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고 있어 그런 면에서 정부와 국민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조 수석은 그러나 "대통령은 21세기형 정치를 하려고 술수를 사용하지 않고 투명하게 하려고 하는데 야당은 독재시대처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폭로정치를 하고, 언론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써주고 있다"며 "언론은 사실확인의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문제를 다시 '야당'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조 수석의 발언은 아직도 남아 있는 독재시대의 문화에 국민이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지 국민을 모독하고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내놓는 정책상품을 국민에게 파는 홍보책임자가 조기숙 홍보수석인데, 바로 그 대통령 홍보책임자가 어제 국민과 야당을 향해 '멍청한 것들!'이라는 의미로 막말을 해댔다"며 "조기숙 수석, 당신 참 잘났다"고 비난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조 수석을 비난하는 의견이 쇄도하고 있다. 아이디가 imhb218인 네티즌은 "내용의 옳고 그름, 사실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며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용관 씨는 "우리 국민을 어찌 보고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치는 감성이나 욕심으로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도 "기본적으로 공복이란 의식을 가져야 할 청와대가 '우리가 잘났고 국민이 못 알아듣는다'식의 푸념을 하는 것은 국민을 모욕한다는 비난을 들을 만 했다"고 비판하는 등 여당의 시선조차 곱지 않아 조 수석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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