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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국가' 프랑스, 그 나르시시즘적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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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국가' 프랑스, 그 나르시시즘적 이중성"

[신간] '똘레랑스의 이면' 파헤친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입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금과옥조처럼 거론되는 게 바칼로레아 시험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와 같은 알쏭달쏭한 문제를 이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에 출제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사데팡(Ça depends.)'이다.

***관점, 그 까다로운 개성**

"무슨 음식을 좋아해?"
"사데팡."

"영화를 보려 하는데 어떤 게 좋을까?"
"사데팡."

이는 관용적으로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이 말은 대상이나 목적, 방법, 장소, 시간, 취향에 따라 여러가지 관점이 가능하다는, 상대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란 없으므로 '나'가 주축이 된 '내 생활'에서 '나의 선택'은 모두가 존중해줘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프랑스 사회에서는 보편적이다. 정의의 개념 또한 곧바로 법을 향하거나 위에서 강압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늘 인간 주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들은 규율만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비인간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피치 못할 사정을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훨씬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불변하는 규정보다 특정 상황 속의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태도다.

규율에는 늘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융퉁적인 사고방식의 문화는 집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라도 집주인이 겨울(11월 1일~3월 15일)에는 쫓아낼 수 없다는 식의 법을 만드는 토대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이와 같은 규율 위반을 예외로 받아들여달라는 요청이 많으며 재고를 호소하는 부차적 법도 많다.

***"넌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은 다른데…"의 나라**

프랑스 사람들은 다소곳하게 남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표현하는 데에 더 익숙하다. "넌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은 다른데…"라고 이어지는 대화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 표현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교육의 산물.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 교사들은 힘들다. 보편적 진리를 논하는데 '그런 게 어딨느냐'며 '사데팡'이라고 대꾸하는 학생을 상상해보라.

나와 생각이 다른 이에게 관용을 보이는 똘레랑스 역시 상대적 진리를 인정하는 사데팡식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이와 같이 인간을 규율의 틀 속에 가두는 게 아니라 규율을 늘 다시 고려해볼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꼭 장점만 가지고 있을까.

14년간 프랑스에 거주하며 '월간 말', '한겨레 21'에 기고해 온 자유기고가 이선주씨가 프랑스인들의 내면 세계를 촘촘히 관찰한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민연)를 펴냈다.

서문에서 "우리의 외국관은 그간 우리의 단점을 지적하기 위해 무작정 선진국과 우열을 따지는 콤플렉스로 가득차 있었다"고 꼬집은 저자답게 그는 똘레랑스 같이 찬양받는 가치의 이면을 파헤치며 프랑스를 '있는 그대로 보자'고 요청한다.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똘레랑스는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게 아니라 '넌 그렇게 생각하라. 난 이렇게 생각하련다'는 정도의 앙상한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관을 벗어나 상대적 진리를 인정하고 포용하자는 똘레랑스의 원래 거창한 의미보다는 개인의 선택사항에 타인이나 사회가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이 오히려 이 '무늬만 똘레랑스'를 유지하는 토대라는 것.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 왜냐면 나랑 상관없으니까"**

'사데팡'이라는 상대적인 태도가 개인주의와 병행되면서 "내가 원하는 게 곧 진리"라는 식으로 복수의 진리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각자 따로,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나와 다른 것이나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개인주의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 결과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서로 비켜가며 끼리끼리 뭉쳐 꼭꼭 문을 닫아버리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아예 무관심해져 버리는 것이 오늘날 프랑스인의 모습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무늬만 똘레랑스'의 속살엔 무관심과 고립이 또아리잡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똘레랑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를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나는 그들을 존중하다. 왜냐하면… 내 문제가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없으니까" 혹은 "나는 적어도 인종차별자는 아니니까…"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개인이 왕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보니 자살, 안락사, 인간복제 같은 수많은 사회적 이슈가 결부될 때, 이에 대해서도 '사데팡'이라고 외치며 끝낼 것인지, 과연 어떻게 똘레랑스를 발휘할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근 일부 석학들은 '과연 똘레랑스는 미덕인가'라는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한때 미국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를 '정의의 화신'인 것처럼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프랑스는 '농(NON)!'의 나라다. 그들의 '농'은 거리 곳곳에서 연금, 세제, 실업,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인권수호와 전쟁 반대를 위해 울린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거리의 농(NON) 행렬'이 오늘로 불충분하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 프랑스 국민들의 농은 '이라크전 반대'와 '반미'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프랑스의 반미가 애초 인권 차원의 의도만 갖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외교를 모르는 소리다. 프랑스는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후기 식민주의 정치를 펼치며 2004년에는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편에 가담해 싸운 알제리인들의 '프랑스를 위한 노고'를 치하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다."

이쯤 되면 충분히 헷갈릴만 하다. 프랑스의 진짜 얼굴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이 책은 프랑스에 대한 정답을 제공하기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우리와 다른 사회를 이해시키려는 놀이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얼굴은 읽는 독자에게 달렸다. "사데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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