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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경제학: 친절한, 그러나 복수하는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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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경제학: 친절한, 그러나 복수하는 금자씨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10>

세상은 여전히 어지러우며 세계경제의 소용돌이와 그 속의 한국의 경제적 현실이야 더욱 복잡한 듯만 하다. 가끔은 머리를 식혀서 영화라도 한편 보고 싶은 날씨, 오늘은 기분전환으로 여기서도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며칠 전 박찬욱 감독의'친절한 금자씨'를 보았다. 이쁘장한 이영애의 얼굴 너머로 이글거리는 복수의 일념 그리고 처절한 결말. 영화는 죄 지으면 벌 받는다는 단순한 교훈을 넘어서 보복하는 이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 또는 세상 그 복잡한 면면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영화에 비하자면 사람들의 경제적 행위를 분석한다는 경제학은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제학자인지, 이 영화는 내게 내내 사람들의 행동 그 자체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기주의적 인간 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학, 더 정확히 말해서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교과서들은 모두 인간은'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련히 기억나시겠지만 언제나 경제주체는 누구나 뭔가를 '극대화'하지 않던가.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 즉 효용을 극대화하고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등 이런 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먼저 경제주체가 과연 교과서의 수학과 그래프대로 무언가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또는 극대화하기는 하는지 의문스럽다. 이런저런 정보가 부족하니 그 가능성은 둘째치고라도, 사실 사람들이란 극대화가 아니라 대충 만족하고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사람들이 과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과연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불리듯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일까?

영화의 금자씨는 십년을 넘게 감옥에서 썩다가 마침내 그녀에게 불행을 안겨준 살인자에게 처참한 방식으로 복수한다. 이런 건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한 것이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없고 손해 보는 일만 있더라도 상대에게 보복하기도 한다. 때로는 단지 불공평하다는 이유만으로. 신기하게도 경제주체는 자주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이 다른 모습이 인간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게임 그리고 실험경제학**

경제학자들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며 최근의 경제학은 사람들에 대한 실험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이 복잡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게임상황을 피실험자에게 제시하여 그 결과를 해석하며 행동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라 불리는 실험이다. 무서운 그 이름과는 달리 이 실험은, 인간의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흔한 가정과는 사뭇 다르며 이타적이거나 또는 보복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주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실험은 먼저 두 사람의 피실험자, 예를 들어 철수와 영희를 무작위로 고른 후 그 중 한명을 또 무작위로 고른다. 철수가 선택되면 철수에게 얼마의 돈을 제시하고, 이 돈을 철수로 하여금 영희와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제안을 영희에게 제시하게 한다. 그리고 철수의 제안을 영희가 받아들인다면 그 공돈은 철수의 제안대로 서로 나눠가지게 되고 만약 영희가 거부한다면 둘 모두의 돈은 그냥 날아가버린다.

1982년 독일의 베르너 구스(Werner Güth), 롤프 슈미트버거(Rolf Schmittber), 베른트 슈바르츠(Berndt Schwarze) 세 사람에 의해 처음 고안된 이 실험의 결과는 과연 어땠을까. 자, 만약 운좋게 당신이 선택된다면 상대에게 얼마를 제시할 것이고 얼마면 거부하겠는가? 돈이야 어차피 공돈이지만 당신은 상대의 반응도 고려해야만 한다. 9대1 혹은 5대5?

***최후통첩, 그리고 호혜적 인간**

결정하셨는지? 재미있게도 실험의 결과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꽤나 공평한, 즉 5대5 혹은 6대4 정도에 가까운 제안을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대는 7대3 이상의 불공평해 보이는 제안은 대부분 거절하고 말았다. 이런 행위는 과연 이기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것일까?

답은 역시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정말로 이기적이라면 어차피 공돈을 가지고 하는 이 게임에서는 9대1의 불공평한 제안도 상대는 받아들여야 하며, 이걸 예상한다면 가능한 자기가 몫을 많이 가지는 제안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작더라도 어차피 공짜로 생기는 돈을 거부하진 않을 것 아닌가. 따라서 이 결과는 인간의 행위는 이기적인 성질을 넘어서서 뭔가 다른 측면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 결과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고? 그 이후 수십여 차례 실시된 이 실험의 결과는 놀랍게도 세계 어느 지역 그리고 문화권, 심지어 부족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미개 정글의 부락도 포함해서, 그리고 돈의 액수에도 상관없이 상당히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결과를 인간의 이타적인 성향 그리고 보복하는 성질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상대가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독재자' 게임에서조차 사람들이 상대에게 일정몫을 나누어주는 제안을 제시하는 걸 보면 인간의 행위에는 과연 '공평성'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모양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은 상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보복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이익을 해쳐가면서라도 나쁜 인간에게는 복수하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 했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덤비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그리고 사회의 진화**

이러한 인간의 특징은 호모 리시프로칸(Homo Reciprocan), 우리말로는 호혜적 인간으로 불린다. 인간은 역시 인간관계의 그물 속에서 상대방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관계적 동물인 것이다. 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이러한 특징이 사회가 폭발하지 않고 잘 굴러가도록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됨을 역설한다.

많은 이들이 우려해 왔듯 인간의 사회는 사익과 공익이 언제나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물론 아담 스미스식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이 종국에는 아름답게 사회 전체의 이득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아무런 규칙 없이 사익만을 추구한다면 사회는 유지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규제하는 룰들이 생겨났고 이는 국가를 포함한 여러 촘촘한 제도의 망으로 발전해 왔다. 일찍이 로크나 홉스 등 근대를 연 사회사상가들의 질문도 바로 인간의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게임이론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매(hawk)와 이와 대조되는 평화로운 비둘기(dove)로 대표되는 행위자를 내세운 매-비둘기 게임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과 진화를 분석하곤 한다. 이 게임에서는 매와 비둘기가 개별적으로 만나면 매가 이기지만 매끼리는 서로 싸우며 상처를 입히므로 사회 전체에서 한 종류의 수가 많아질수록 다른 쪽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둘 모두 섞여있는 구성이 안정적 균형이 된다. 물론 매 집단과 비둘기 집단이 서로 경쟁하면 더 협조를 잘하는 비둘기 집단이 이길 수 있겠지만.

***호혜성 혹은 복수의 미덕**

흥미로운 것은 매를 만나면 호전적인 매처럼 행동하고 비둘기를 만나면 평화로운 비둘기처럼 행동하는 보복자 전략이 안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이렇게 복수하는 행위자가 무뢰한인 매가 득세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미 수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러한 보복전략이 주요한 역할을 하며, 게임이론의 실험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 전략이 가장 강력한 전략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잘해주는 상대에게 잘해주고 나쁜 상대를 보복하는 인간들이 무임승차자를 응징하고 이기적 행동의 극단이 사회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른바 '공공재 게임'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사익만을 추구하는 행위자를 응징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협조와 응징이 함께하는 사회가 역시 집단간의 경쟁에서는 더 우월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분석은 공동체의 형성과 작동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호혜적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예를 들어 계약이 불완전한 노동시장에서는 기업가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최소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들은 더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선물교환과 같은 윈-윈 게임이 흔히 나타난다. 학자들은 사실은 많은 시장의 계약들이 이처럼 불완전하므로 호혜적인 인간의 존재 자체가 시장도 더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라 지적한다.

여전히 많이 모자라지만 이제 사회과학도 공평함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복수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분발중인 듯하다. 특히 호모 리시프로칸에 대한 분석은 사회의 형성과 진화를 분석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복수하는 인간들이 사회의 규범을 수호하고 사회를 유지하며 세상이 돌아가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처절하게 복수하는 금자씨를 보고 마음이 불편하던 이들에게도 조금은 안도가 될 수 있을까.

p.s. 최근 이론의 발전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최정규 저,'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이파리)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책은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세계화의 두 경제학'(후마니타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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