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정답'에 대한 '강박'입니다. 창의성의 대원칙이 '자기 주장 펼치기'인데, 좀 틀릴 것 같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기 나름의 주장을 해보는 학생이 드물죠. 그런 태도는 글쓰기센터에서 가르친다고 가르쳐지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입니다."
서울대 글쓰기센터는 2003년 4월 설립 당시 세간의 관심을 모았었다. 학생들의 기초교육 강화와 글쓰기 능력 향상이라는 설립 목적은 "이제 대학의 역할은 지식 전수가 아닌 창조"라는 정운찬 총장의 모토와 궤를 함께 했고, 정 총장의 이와 같은 '대학 개혁'은 입시에서의 '논술 강화' 움직임과도 일맥상통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대학의 '논술 강화' 흐름은 인정하되, 다만 이것이 사교육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5일 "독서프로그램, 토론학습, NIE 교육 등 정규수업만 받아도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이 길러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수ㆍ학습 자료를 개발해 보급할 것"이라고 밝히며 "8월 말 논술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좀 더 구체적인 '수업 혁신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합교과형 논술 논란 당시 서울대에 쏟아진 비판 중 하나는 "인재 뽑을 궁리만 하지 말고 제대로 교육시킬 노력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우수 학생을 독점해 온 서울대의 '인재양성 능력'엔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이다.
2년 전 서울대가 야심차게 시작한 '글쓰기 교육'의 성과는 과연 어떤 것인지 서울대 글쓰기센터 연구원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말을 들었보았다. 왜 사회적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는지, 대학내 글쓰기 교육은 얼마나 잘 이뤄지는지, 학생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이들의 고민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글쓰기, '과제'엔 '정답' 있다는 생각 버려야 잘돼"**
이 글쓰기 센터에서 5학기째 상담해 온 김태환 선임연구원은 '잘쓴 글'에 대한 많은 학생들의 오해부터 짚었다. 자기 스스로 뭔가 의미있는 주장을 하고 논증하는 것이 글쓰기의 처음이자 끝인데 많은 학생들이 과제에는 정답이 있다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리포트를 위해 자료를 베낀다거나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를 쓰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는 "상식의 반대 방향에서 생각해보거나 틀릴 위험을 감수하는 학생은 드물다"며 "물론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주장해줘야 글이 된다는 기본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지희 연구원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게 생각을 자극하는 게 중요한데, 기존의 지식을 잘 정리하고 틀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게 잘 쓴 글이라고 오해한다"며 "게다가 글쓰기를 부수적이고 도구적으로 보는 인식마저 있다"고 '학생들이 글쓰기를 경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도 2005년도 1학기에만 글쓰기센터를 이용한 학생은 500여명. 처음 설립 당시 300명에 비해 대폭 늘었다.
***"'정답' 말해야 하는 고등학교 때 관성 버리기 힘들어"**
'거의 모든 리포트를 상담받았다'는 신규호(사범대 1학년, 19)씨는 "아무래도 단답형 정답을 찾는 중고교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답이 빨리 나오는 게 속시원하다"며 "글쓰기는 추상적인 문제에서 구체적인 것을 이끌어내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과정인데, 인터넷 뒤지면 쉽게 많은 정보가 나오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글쓰기에 특별한 관심을 둘 이유를 못 찾는 것 같다"고 평했다.
글쓰기센터의 '리포트 작성 10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김보현(생활과학대 4학년, 23)씨 또한 "자기 생각은 말과 글로 표현 않는 한 구현될 수 없는데 지식의 근본에 대한 탐구나 의문이 허용되지 않는 고등학교 과정 자체가 사고력의 진전을 가로막는 것 같다"며 "이렇게 특정 지식의 생산 과정을 본 적도 없고 외우기만 했던 관성이 대학 때도 계속된다. 이 결과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정답이 없는 상태', 즉 학설이 대립한다든가 최종적이지 않은 진실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자신이 글쓰기센터에 '참여'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3학년이 되어서야 어느 순간, 지식을 채워넣고 시험을 치르는 공부는 잘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들을 정말 내가 아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수천년간 쌓여 온 지식의 권위에 눌려 외우기만 하고 그 지식의 생산과정에 한 치의 의문도 없었던 과정에 뭔가 문제를 느낀 김씨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지식의 틀을 짜는 기초 교육에 목말랐고, 이를 위해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
그간 내키는 대로 글을 써 온 자신을 반성했다는 김씨는 "내게 글쓰기는 '수렴'과 '확산'의 과정이었다"고 상징적으로 설명했다. 기존의 권위있는 지식을 수렴하면서 스스로가 생각한 연결고리로 사고의 진전을 이뤄 '확산'하는 과정이 글쓰기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사고력을 기르고 균형감각을 갖추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학 수업도 고등학교 때의 '강의식 수업'과 차이 없다"**
대학 1학년인 신규호 씨는 "학생들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학교육'에 대해 "학교에서는 글쓰기 전담 조교가 있는 '핵심교양' 수업을 만들었지만 굉장히 형식적이고 내실이 없다"고 불평했다.
교수들에 대해서도 "대학교 들어와도 고등학교 때와 같은 '일방적인 강의' 방식엔 큰 차이가 없다"며 "학생과 교수의 유일한 소통 통로인 과제물마저 피드백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제 내면 학점 받고 끝"이라고 말했다.
'글쓰기센터'를 따로 만들면 뭐 하느냐는 얘기였다. 정작 '본게임'인 수업에서는 교수와의 특별한 피드백이 없어 학생들의 '글쓰기'와 이로 인한 실력 배양이 힘들다는 것이다.
김보현 씨도 "한마디로 글쓰기를 요하는 수업이 없다"며 신규호 씨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대학 수업은 내가 이런 얘길 들어봤다는 의미 정도일 뿐 내가 어떤 평가를 받아도 교수에게 따로 피드백을 요청하지 않는 한 학생에게 글쓰기 배양을 위한 어떤 동기부여와 계기도 없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대의 '글쓰기 능력' 향상 작업은 이렇게 일정 정도의 성과를 내면서 또 다시 새로운 과제를 확인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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