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그는 일본이 2차대전 패전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을 획책하고 있다. 그가 오랜 기간 주장해 온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 부결 가능성이 짙어지자 중의원 해산, 총리 사퇴와 더불어 그에 따른 내친 김의 화풀이격 야스쿠니 행을 감행하려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그에 대한 일본정계의 수식어는 냉랭하다. 정치 명문 가문출신에 후생대신, 우정대신 등을 역임한 10선을 자랑하는 중견정치인이지만 일본의 정치'틀'에 어긋나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인해 그의 별명은 "헨진(變人)". 또한 정계진출과 더불어 파벌에 입문해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파벌을 만들려 하는 일본의 정치관행에서 벗어나 파벌이나 모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만 걸어온 그를 빗대 얻어진 또 하나의 별명 "한마리 외로운 늑대". 그런데 이 두 개의 별명이 곧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치역정이었으며 현재는 그를 사면초가로 내몰고 있기도 하다.
먼저 고이즈미의 헨진성(變人性). 그는 확실히 여러 모로 기존의 일본 정치인들과는 '다른(變)'면모, 즉 기인성을 지닌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귀한 소신은 추앙받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지만 천박한 소신은 추앙은커녕, 걷잡을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의회나 위원회로 번역되는"council"이라는 단어 속에는 "to debate", "to fight"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여기서도 유추할 수 있듯,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은 신랄한 논쟁 속에서도 때로는 양보하며 겸허히 타인의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더욱 나은 길을 모색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 정계의 구태의연함에 환멸을 느낀 일본인들은 변화를 향한 그들의 열망을 고이즈미의 남다른 면모에 걸어보며 총리직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그 기인성은 더 이상의 추앙과 기대는 고사하고 일본과 주변국의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정치권력의 달콤함에 변질되며 눈과 귀를 틀어 막아버린 기인의 예측된 말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고이즈미의 '한 마리 외로운 늑대'성.
일본 열도는 이미 1960년대에 한창이던 안보파동 이후 급속도로 보수화되었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부를 달성한 터이다. 그러니 더 이상 골치 아픈'정치와 사회문제'같은 일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인들은 조용히 자기 삶을 즐기며 주변 일에만 신경쓰고자 하는 개인주의와 보수주의 기조에 별다른 저항없이 젖어들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강산이 4번이나 바뀔 수 있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 그동안 곪을대로 곪은 정계의 부정부패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40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일본인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집권 부패당에 속해 있으면서도'안부낙도(安富樂道)'를 거부하며 오히려 자민당의 대개혁을 주장한 한 마리 늑대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그나마 정계 개혁을 기대할 만한 사람으로 비춰졌으니 그의 내각 총리 등극도 바로 이와 같은 그의 한 마리 늑대성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한 줄기 희망을 등에 업고 등장한 그는 집권기간동안 일본호를 어디로 어떻게 리드해 왔는가? 물론 그의 비타협적이며 막무가내식 드라이브는 일본 국내적으로는 다양한 저항세력에 굴하지 않고 견지해 온 실험적 경제정책의 결실 덕에 장기침체에서 허덕이던 일본경제에 서광을 비쳐주기도 하였다. 미동이나마 일본정계를 움찔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이 21세기 초반, 호불호를 떠나 일본이라는 국가가 과연 그 자신만을 생각하며 지낼 수 있는 국가란 말인가.
일본 국내에서의 정치 경제적 작은 공로 덕에 얻게 된 일시적 인기는 고이즈미를 정치권력이라는 마약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쳐버린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날이 독불장군식 안하무인에 심취되어 버린 그는 결국 일본의 한계와 모순 심화 및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기에 이른다.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참담하기 그지없는 왜곡 역사교과서의 등장, 양식있는 일본인 학자라면 다 알만한 독도문제 및 얄팍한 헌법개정 동향 등은 바로 막강한 정치권력에 의해 눈 귀 가려진 그의 기인성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일본은 외로운 한마리 늑대의 천박한 소신에 의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욱 많게 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출현으로 인해 일본 내부적으로는 부정부패로 맺힌 고름을 다소 도려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외 관계에서 치유해야 할 대승적 상처는 오히려 더욱 악화된 채 고이즈미는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더 더욱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 국내 상황을 보면 고이즈미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중인 우정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중의원을 해산한 그는 이번 8월 15일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을 감행하려 할 것이다. "가는 마당에 나중 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빚어질 일본과 일본인들의 소외, 심리적 괴리 심화….
고이즈미여,
일본병의 악화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며 정계를 일갈해 온 당신이 아니었던가. 일본은 결코 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며 '외로이' 투쟁해 온 당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일본이, 이제 당신의 사리분별 못하는 천박한 소신으로 인해 전후 최대의 고립 위기를 맞고 있다. 당신은 줄곧 '때'를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때를 놓칠수록 국가와 사회에 폐만 끼칠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이즈미여, 각성하라! 당신은 이미 그 때를 한참 놓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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