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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아부 그라이브 '관타나모'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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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아부 그라이브 '관타나모'의 두 얼굴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

지난 1970년대 영국령 북아일랜드 알스터 지역에서는 삼엄하기로 악명 높은 임시수용소가 하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쟁취하려는 아이레공화군(IRA) 테러에 관련된 혐의자들을 가둬두는 수용소였다. 그곳에선 IRA 활동분자들이 길게는 2년 가까이 재판도 받지 않은 채 갇혀 지냈다. 수용소 안의 처우는 영국이 의회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랄했다. 그 수용소는 반영(反英) 바람의 진원지가 됐고, IRA로 하여금 새로운 피를 쉽게 수혈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북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그 임시수용소 얘기를 듣고 분노한 나머지, IRA 대원이 되거나 협력자가 됐다.

IRA 수용소가 반영 바람을 일으켰던 것처럼, 오늘의 관타나모는 전세계 이슬람 교도들의 반미 바람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우방국인 영국의 석방요구로 풀려난 영국 국적의 수감자들이 관타나모에서의 학대를 증언하면서 그동안 관타나모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 새삼스런 얘긴는 아니게 됐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관타나모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은 지난 5월말 펴낸 '2005년 인권상황 보고서'에서 관타나모 수용소를 일컬어 "우리 시대의 굴라그(gulag)'라 규정했다. (굴라그는 옛소련 시절 정치범들을 가둬 강제노동을 시켰던 수용소로, 특히 스탈린 치하에서 악명 높았다).

관타나모는 21세기 패권국가 미국의 오만과 횡포를 상징하는 곳이 돼버렸다. 국제법학자들은 관타나모를 가리켜 '국제법이 실종된 블랙 홀'(black hole)이라고 비난한다. 수감자들은 2년반 넘게 재판이나 변호사 접견도 없이 갇혀 지내왔다(2005년7월 현재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수감자는 40여개 국적에 약 540명. 한때는 700명 넘게 수용돼 있었지만, 200명 가량이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갔다).

***"국제법이 실종된 블랙 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의 이름은 '엑스레이 기지'(Camp X-ray). 이 해군기지는 펜타곤의 서류엔 GTMO로도 표기된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관련 혐의를 받는 포로들을 격리시킨 별도의 삼엄한 수용소는 '델타 기지'(Camp Delta)와 '에코 기지'(Camp Echo)다. 대부분의 수감자는 '델타'에 머물고, '에코'엔 필요에 따라 수감자를 가둬둔다. 탈레반, 알-카에다 관련 혐의자들이 관타나모 기지에 닿은 것은 2002년 1월. 그때 관타나모 현장에서 수감자들이 닿는 장면을 취재한 기자는 없다. 지구촌 안방 뉴스를 차지했던 관타나모 초기 사진은 펜타곤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손발을 쇠사슬에 묶인 채 땅에 쭈그리고 앉은 알카에다 포로들, 손발이 묶인 포로가 짐수레 위에 실린 채 두 미군이 앞뒤에서 짐수레를 밀고 가는 모습들이었다.

미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 대장은 그 무렵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포로들의 손발을 그토록 꽁꽁 묶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주장했다. "그들은 매우 위험한 인물들이며,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움직일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비행기(관타나모로 포로들을 실어날랐던 C-17 수송기)의 수도관을 이빨로 물어뜯어 격추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진들이 큰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펜타곤 간부들도 미처 생각을 못했다. 전세계 이슬람교도들은 "우리 이슬람 형제들을 모욕했다"며 반미시위를 벌였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펜타곤 간부들은 "그런 사진을 배포하지 말고 차라리 커튼 뒤에 가려놓았어야 했다"며 뒤늦게 후회했다고 알려진다.

***엄한 규율, 일상적인 폭력**

관타나모의 규율은 매우 엄하다. 모두 13개 사항으로 된 규칙은 영어의 'will(또는 will not)'이란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다음 사항을 지키지 않는 자는 미 경비병들로부터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제1항), "수감자는 미 경비병에게 불손하게 행동해선 안된다."(제3항), "수감자는 언제라도 미 경비병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제4항), "수감자는 언제라도 수색을 당할 수 있다."(제5항). "수감자는 경비병을 만지거나, 경비병을 향해 침을 뱉거나 물건을 던져선 안된다.'(제7항)

관타나모 수용소를 보는 미 부시행정부의 시각은 세 가지가 겹쳐 있다. 하나는 9.11에 대한 징벌, 다른 하나는 이들이 지닌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미국시민들을 보호, 셋째는 이들로부터 정보를 캐냄으로써 반미테러집단들의 뿌리 뽑기다. 부시행정부가 9.11 뒤 미군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붙잡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조직 관련 혐의자들은 '새로운 전쟁' 또는 '전혀 다른 전쟁'의 포로들이다. 그 전쟁은 곧 '테러와의 전쟁'이며, 여기서 붙잡힌 포로는 곧 테러리스트들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전쟁의 패러다임은 제네바협정(1949년)과 같은 고전적인 전쟁포로(POW) 개념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2002년 1월 관타나모 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전쟁포로가 아니라는 점에는 조금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선언했다. "탈레반 정권이 다스렸던 아프가니스탄은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다. 아프간 영토의 상당부분은 정부가 아닌, 무장집단들이 폭력적으로 다스려 왔다. 탈레반 정권의 군대도 근대국가의 군대가 지닌 지휘명령체계, 계급을 나타내는 통일된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 따라서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따를 수 없다"(2002년 1월 필자가 아프간 현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탈레반 군은 머리에 두른 검은 터번으로 상하간의 계급을 나타냈고, 엄격한 지휘명령 체계 아래 놓여 있었다).

국제법의 사각지대에서 관타나모 수감자들은 변호사조차 만날 수 없었다. 관타나모의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는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받는 전쟁포로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제네바협정을 비롯한 보편적인 인권보호에 관한 국제법을 무시한 채 재판절차도 없이 정치범 성격이 강한 수감자들을 오랫동안 가둬놓으려는 미국의 태도는 전세계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2004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이 수감자들의 법적 권리를 법률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실망스럽게도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검토작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국제 인권단체들과 유럽 언론들은 그동안 수용소 폐쇄론을 펴 왔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9.11 테러사건 뒤 미국에 불어닥친 애국주의 바람 탓에 관타나모 문제에 관한 한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그런 미 언론들조차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한 대표사설에서 "워싱턴 당국은 국가적 수치(shame)인 관타나모를 하루빨리 폐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시간을 끌 경우 관타나모는 적의 선전도구로 계속 활용될 뿐 아니라, 우방국들에겐 당혹스런 사안으로 남고, 미국 법체계를 손상하며,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미래의 테러리스트들을 충원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남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관타나모는 미국적 예외주의의 산물?**

관타나모가 문을 닫으면, 수감자들 처리는 어떻게 될까.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알-카에다 핵심에 관련된 일부 수감자들은 미 국내법에 따른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핵심분자 몇을 빼고 대부분은 풀려나게 될 것이다. 이미 조금씩 그래왔듯, 미 부시행정부는 수감자들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본국으로 돌려보내려 들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그것은 일부 수감자들에겐 죽음을 뜻한다"며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우즈베키스탄 출신 수감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면, 그 나라에서 15년째 독재권력을 휘둘러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분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들 게 뻔하다. 이집트나 예멘, 시리아, 알제리와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들은 이슬람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 세속적인 지도자들이 독재를 펴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이래저래 관타나모는 21세기 국제정치의 '뜨거운 감자'다.

미국의 오만과 위선을 비판하는 국제정치학자들은 흔히 미 외교정책의 3대 특징으로 ▷미국적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우월주의 ▷일방주의를 꼽는다. "미국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 태생부터가 유럽의 낡은 국가들과는 다르며, 인권과 종교자유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독재국가들과는 다르다"는 예외주의, "미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정치제도나 사법제도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낫다"는 우월주의, "미국은 예외이고 다른 나라들보다 낫기에, 자유민주라는 미국적 가치를 퍼뜨리고 독재국가의 인권침해를 바로잡기 위해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합의절차를 무시해도 좋다"는 일방주의다.

2003년 3월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치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만 홀로 "해외 파병 미군의 범죄를 미국 관할로 해야 한다"고 독단을 부린 것이나, 2005년 2월부터 발효돼 지구촌 환경문제가 걸린 교토의정서 비준 자체를 미국이 거부하고 있는 사례들도 앞에서 살펴본 미 외교정책의 3대 특징들에 비춰보면 그 배경이 이해될 듯하다.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충격적인 인권침해도 미국적 예외주의와 우월의식에서 비롯된 전쟁범죄 사례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사진)쿠바군 관할 고지에서 바라본 관타나모 포로수용소(@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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