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해동의 여섯 용이 나시어, 행동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이 하신 일들과 부절(符節)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
뿌리 깊은 MB씨는 아무리 센 저항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니 알아서 줄이고 알아서 키웁니다 / 정권만세 깊은 충성심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니 그네만세 되어 재신임으로 흘러갑니다.
(원문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 /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고 솟아나므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니.)
옛날 박 씨 왕조 유일(唯一)왕이 부일(釜日)을 강탈하여 정수(正修)를 여시니 / 우리 재철은 호텔에 칩거하다 새 MBC를 연다 했습니다.
(원문 : 옛날 주나라 대왕이 빈곡(豳谷)에 사시어 제업을 여시니 / 우리 시조가 경흥(慶興)에 사시어 왕업을 여시니.)"
<야만의 언론, 노무현의 선택>(김성재·김상철 지음, 책으로보는세상 펴냄) 공저자인 김상철 씨가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를 패러디한 "재철판 용비어천가"의 일부이다. 김재철 MBC 사장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C의 새 역사를 쓰는 데 초석이 되고 싶다"고 말한 데 대한 풍자이다. 판소리에도 여러 가지 판본이 있듯이 "용비어천가"의 최신 판본인 셈이다. 용비어천가는 한글을 창제한 조선 세종 때 선조들의 '패업'을 칭송한 우리말 서사시이다. "재철판 용비어천가"는 김 사장의 '새 MBC 역사창조'에 대한 칭송이다.
MBC 노조가 사상 최장인 170일의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했으나, 아직도 삐걱거리고 있다. 파업 목표 중 하나였던 낙하산 사장 퇴출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김재철 사장은 임기를 마치겠다며 버티기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무용가 J씨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김 사장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J씨의 남편인 일본인 W 변호사가 불륜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김 사장은 "의처증 비슷한 게 생긴 것 같다"고 일축했다. 다시 W 변호사가 반박하면서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공영방송사 사장의 불륜 의혹이 국회에서 공론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치졸한 변명만 일삼고 있는 것이다. MBC의 이미지에 얼마나 타격을 입힐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하나도 없다. 과연 공영방송사 사장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동안 김 사장을 비호해왔던 이사 세 명을 연임시켰다. 8일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방송문화진흥회에서 김 사장을 퇴진시킬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마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김재철 살리기'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임기 말이 되어서도 이 대통령의 '먹통'이 지속되고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기에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파업이 징계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던 그의 발언은 '그저 해본 얘기'에 불과했던 것인가.
▲ '이명박근혜' 합성 사진 ⓒ트위터 |
김재철 사장은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업무에 복귀한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강경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노조간부들에 대한 해고는 물론이려니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중징계했다. 뒤이어 비판적 시사프로그램의 대명사인 <PD수첩> 구성작가 여섯 명 전원에 대한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해고했다. 이에 대항하여 시사교양 작가들이 <PD수첩> 집필을 거부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KBS, MBC, SBS, EBS 등 방송4사 구성작가협의회 및 외주제작사 등 시사교양작가 780명은 작가 6명에 대한 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대체작가 거부 의사를 밝혔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PD수첩> 집필 거부에 동참한 작가는 지난달 31일로 800명이 넘었다. 이들은 이번주 안으로 이금림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이 김재철 사장의 면담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편집자)
이들은 성명을 통해 "작가 전원해고는 그간 물리적 정신적 탄압 아래에서도 작가적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PD수첩> 작가들에 대한 치졸한 보복이며 이후에 대체되어 들어올 작가들을 향한 사전 경고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부당한 조치가 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협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며 "기존 작가들이 해고되고 새로 투입된 작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언론청문회는 열릴 기미조차 없다. 개원 국회는 3일로 끝나지만, 임시 국회 시기와 의사 일정을 놓고 입씨름만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 언론청문회 등을 위해서는 임시 국회를 4일부터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15일 이후로 열자며 의사일정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언론노조와 언론시민단체는 언론노동자 대투쟁의 직접 원인인 MB정권의 언론장악과 언론탄압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새누리당은 '쇠귀에 경 읽기' 형국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박근혜 의원의 대선가도에 흠집을 가져올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계산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국에 정상 방송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MBC 간판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내용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경악스럽다. MBC 노조는 지난달 27일 밤 방송된 <뉴스데스크>에서 "시청자들을 속인 방송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고 밝혔다. 3분가량 방송된 'MBC-구글 올림픽 SNS 현장중계' 꼭지는 영국 런던과 서울의 주요지점을 실시간 쌍방향으로 중계했다. 그런데 뉴스에 등장한 '서울의 한 기업체 사무실'이 실제론 MBC '뉴미디어 뉴스국 사무실'이었다는 것이다. 뉴미디어 뉴스국 직원들이 '올림픽을 응원하는 일반 시민으로 둔갑해 뉴스에 출연한 셈이다.
노조는 "조작방송 논란에 휘말린 <뉴스데스크>의 방송사고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재평가를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고 싶어 몸이 바짝 달아 있는 김재철 사장의 의중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게 조합의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런던올림픽 중계방송에서 MBC만 유독 방송사고가 속출했다. 개막식 중계방송에서 여성 MC는 영국 대표팀이 입장할 때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해 시청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또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를 열창하는 장면에서 방송이 중단됐다. 누리꾼은 "폴 매커트니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만든 유서 깊은 히트곡을 노래 시작 직후 잘라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MBC의 개막식 중계방송 시청률은 2.6%(AGB닐슨)에 불과했다.
▲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4초93으로 쑨양(왼쪽)과 공동 은메달을 차지한 박태환이 메달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가운데는 금메달을 차지한 프랑스의 야닉 아넬.. ⓒ연합뉴스 |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한때 실격 처리됐던 박태환 선수에 대한 인터뷰도 도마 위에 올랐다. 풀에서 빠져나와 실격당한 사실을 전해 듣고 어리둥절해하는 박 선수에게 "실격 처리된 걸로 아는데 어떻게 된 건가" 등의 질문을 던져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더구나 해설위원의 "실격 판정을 내린 심판이 중국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라는 무책임한 발언은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소지마저 안고 있다. 이 심판은 캐나다 국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MBC만 유독 방송사고가 잦은 이유는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올림픽 방송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파업 조합원들에 대한 보복에만 광분해 올림픽 방송에 노하우를 가진 경험 많은 제작과 취재 인력들을 현업 일선에서 배제하고 축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독보적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MBC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김 사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MBC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그는 "재철판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지적대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박근혜 의원 재신임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 만세 깊은 충성심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니 그네만세 되어 재신임으로 흘러갑니다." 공영방송 MBC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언론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최선이다. 우선 청문회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과 언론탄압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언론탄압 관련자는 단죄하고 공정방송를 구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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