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재계는 물론 정계.학계.언론계.정계.정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삼성공화국'이 군림하고 있다는 비판적 토론회까지 열린 시점에서 실제로 이같은 '삼성공화국' 현상을 연상케 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모 재벌그룹과 모 중앙일간지, 그리고 정부기관이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른바 '이상호 기자의 X파일'과 관련해 MBC 보도국 간부진이 잠정적으로 이를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기자들과 기자회, 노조 등은 '보도불가' 판정이 사실로 굳어질 경우 이에 적극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간부진, 법률자문 뒤 '보도불가'로 입장 정리**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MBC 보도국은 지난 16일 국장 이하 부장급 간부들을 소집, 이상호 기자의 미국 출장취재 내용의 보도여부를 놓고 회의를 가진 결과 "현 상태로선 보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핵심인 녹취 테이프의 경우 모 정보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 또한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이에 따라 보도국은 이 기자의 미국 출장 이후 특별취재팀을 가동해 녹취내용과 관련한 사실확인 등 보강취재를 진행해 왔으나 16일 회의에서는 '보도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보도불가'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녹취테이프 공개와 관련한 법적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도국은 애초 사내업무팀의 추천을 받은 2인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보도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었지만 나중에 비공식적 자문을 추가한 결과, 관련 테이프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심각하게 저촉된다는 지적이 있어 입장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보도국은 이 과정에서 검찰과 김&장 법률사무소에도 의견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검찰로부터는 "테이프를 공개할 경우 구속사유가 된다"는 의견이, 김&장 법률사무소에서는 "민사소송에서도 패소가 유력하다"는 의견이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기자 "애초 보도 의사 없었다" 반발**
그러나 MBC 보도국, 보도제작국 일부 기자들은 이러한 간부진의 행보에 대해 여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기자는 "간부진은 보강취재를 지시하는 등 이번 사건의 보도를 위해 애를 쓴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특별취재팀이라는 것도 주니어급 기자 2명을 붙여주는 것에 불과했다"며 "이는 애초부터 보도의사가 없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B기자는 "간부진이 4개월여 동안 보도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보도내용은 이미 언론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모두 알려진 상태"라며 "언론사로서의 이미지 손상까지 감수해 가며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간부진의 성향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C기자는 "알려진 바로는 이번 X파일의 중요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 재벌그룹과 검찰의 커넥션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검찰에 법률자문을 구하고, 또 사설 법률사무소에 해당 자료를 넘겨준 행위는 적과의 동침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또 "이상호 기자 개인은 미국 취재길에 오르면서 홈페이지에 유서에 다름 아닌 글을 남길 정도로 비장한 각오를 했지만 정작 보도국 간부진과 회사 고위 간부진들은 이를 뭉개고 난도질하기에만 급급해 하는 형국"이라며 "이렇게 된 이상 이상호 기자의 보다 확고한 의지표명과 함께 MBC를 벗어난 사회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도국 간부진의 '보도불가' 결정이 내려진 이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20일 보도국장에게 비공식 항의서한을 전달했으며, MBC기자회도 같은 날 운영회의를 연 뒤 21일 보도국장에게 구두로 항의입장을 전달하는 등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조 한 관계자는 "이른바 X파일의 보도여부는 우선 보도국이 결정해야할 사안이기에 노조 또한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며 "이미 내부회의를 통해 나름의 입장을 정리한 상태이지만 이에 덧붙여 안팎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으며 조만간 대외적으로 이를 알리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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