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 9.8% 세계 1위, 2020년까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미국을 추월, 2040년에는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전망. 떠오르는, 아니 이미 거인이 되어버린 중국경제의 위용이다. 상하이에 가본 이들이 경탄하듯 중국은 바야흐르 경천동지의 발전을 구가하고 있어서 모든 이들이 이 거대한 나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전세계의 시각은, 우려와 기대, 비관과 낙관 사이를 오가는 듯하다. 세계 최강대국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과 함께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도 만만치는 않다. 실제로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의 GDP 약 9조 달러에 비해 1/10이 조금 넘는 수준이며, 중국이 전세계의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36%의 미국, 15%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약 4%의 프랑스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경제도 지난 20년동안 3%가 넘는 성장을 지속해왔고, 신경제나 기술혁명 덕에 생산성 상승은 더욱 가속화될 것인 반면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결국엔 일본처럼 한풀 꺾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게다가 전세계 소비량의 30%가 넘는 철강, 석탄을 먹어치우면서 생산성 상승 대신 자원의 동원과 투입에만 기초한 성장이라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란 목소리도 높다. 별 정확한 계산은 아니었지만 이미 크루그만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이 소련처럼 투입에만 기초한 성장이라 결국 파산을 맞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하지 않았던가.
결국 첨단기술이나 높은 소비수준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러화라는 기축통화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은 것이다. 하긴 세계은행의 <China 2020 보고서> 등 많은 연구에 따르면 2020년이 되어도 중국의 1인당 GDP는 겨우 중진국 수준에 이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시무시한 쪽수와 함께 나타나는 폭발적인 성장세는 무시할 수 없다. 이미 BRICs 경제권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골드만삭스는 2039년까지 중국이 달러화 기준으로 미국경제를 따라잡을 것이라 예측했고, 최근 “중국이 미국된다(Thunder From the East: Portrait of a Rising Asia)”라는 책을 펴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도 2040년에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경우 낙후된 농촌과 낮은 소비수준, 광활한 시장, 그리고 아직 낮은 3차산업의 비중 등으로 볼 때 고성장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분분하다. 중국정부도 향후 10년간은 7%가 넘는 성장을 하고 이후 성장률은 10년마다 1%포인트씩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의 인구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중국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겉으로는 폭주기관차처럼 성장하는 중국경제라 하더라도 정작 속은 곯아 있을지도 모르며 지금까지의 그 성장의 비밀에 대해서도 진지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없을까와 같은 술자리 안주같은 관심을 넘어서 이제 경제학자들도 중국을 들여다보고 또 배우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질문, 과연 중국은 어떻게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 그 비밀은 역시 폐쇄된 사회주의를 탈피하고 자본주의의 도입과 함께 개방과 개혁을 추진한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국제기구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전문적인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자유화와 시장주의의 도입, 그리고 경제개방을 통한 수출과 외국자본 유입의 증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한, 그러나 많은 문제점으로 호된 비판을 받았던 세계은행의 2002년 보고서는 중국과 베트남을 80년대 이후 세계화를 촉진한 나라(globalizer)의 대표선수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개방과 자유화, 시장과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라는 단순한 조언의 근거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물론 전세계를 주름잡는 중국산 제품과 중국으로 달려가는 외국기업들을 보면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국의 경험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진실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에 도입되었던 개혁은 서구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시장기능의 완전한 회복, 사적 소유권의 확립, 국가통제의 철폐와 시장개방과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우선 농업 부문에 전면적인 자유화가 아니라 제한적인 자유화를 도입하여, 농민들은 국가의 통제에 따른 의무를 수행한 나머지 부분만을 시장가격에 팔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소위 2중 개혁(dual-track reform)은 농민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자유화로 인한 정부의 어려움을 최소화하며 동시에 효율성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된다. 이후 이러한 시스템은 철강이나 석탄 그리고 노동시장에도 적용되어 개혁에 대한 반대와 사회적 부작용을 억제하고 개혁이 정치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소유권의 개혁과 관련해서도 토지와 국유기업의 전면적인 민영화가 아니라 토지에 대해 가구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과 향진기업(TVE: township and village enterprise)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1978년 인민공사의 해체 이후 등장한 향진기업은 소유권이 민간이 아니라 지역정부에 속해 있는데, 1990년대 초반 산업 부가가치의 약 절반이 넘을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하여 중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경제 전문가 퀴안은 이러한 독특한 소유와 지배구조가 전면적인 민영화로 인한 사적 소유보다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이었다고 보고한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독특한 ‘이행기 제도(transitional institutions)’의 발전이 중국 성장의 견인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버드대의 로드릭도 중국의 시장개혁은 서구의 경제학자들이 워싱턴 컨센서스에서 주장하는 완전한 자유화와 개방과는 다른 중국식의 개혁이었으며 자신의 실정에 맞는 지혜로운 개혁이 경제성장의 요체였다고 지적한다. 또한 스티글리츠는 ‘빅뱅’이란 이름 하에서 급속하게 전면적 자유화와 개방을 채택한 소련의 참혹한 실패와 비교하여 중국의 점진적인 개혁의 장점을 강조한다. 즉 개혁은 시장을 관리하며 조금씩 수행되어야지 시장에 경제와 사회를 전부 내던져버리는 방식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고도성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여전히 중국경제가 다른 개도국에 비해서 더욱 개방된 체제라고는 말하기 쉽지 않다. WTO에 가입하여 국제적인 자유무역체제에 편입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며, 직접투자에 관해서는 소유권이나 경영, 기술 등과 관련해서 남미에 비해서도 더 많은 규제와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업들이 중국으로 물밀 듯 달려가는 것은 역시 압도적인 시장규모와 저렴한 노동비용, 다른 후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노동력 등의 유혹 때문이었다. 중국정부는 이러한 자신감에 기초해서 외국기업의 기술과 경영을 최대한 스스로 흡수하여 자율적인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은행이 중국을 전면적 개방과 세계화의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좀은 낯간지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현재의 중국으로 돌아와 거인의 속을 들여다보자. 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초고속의 성장을 하고는 있다고 해도 중국경제에도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4대 국유은행의 부실채권이 25%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금융시스템의 부실 문제, 과다한 에너지 소비와 부동산 버블 가능성, 위안화 절상과 대외압력 등 여러 암초들이 중국호의 쾌속항진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최근 중국 내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는 역시 소득격차의 심화이다. 자본주의화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차이가 점점 늘어나고 도시와 농촌 그리고 해안과 내륙의 격차도 커져 중국 사회 내부가 말 그대로 균열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가장 부유한 선전 시의 일인당 소득은 가난한 꾸이저우 성의 15배에 이를 정도이며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격차는 평균 6배에 이른다. 또한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약 8배 이상, 지니계수도 1988년 0.38에서 90년대 중반 0.4를 넘어섰고 현재는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인 약 0.47로 높아져 심각한 소득분배의 악화를 보여준다. 사실 지니계수의 측정은 쉽지 않은데, 미국으로 추방된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이미 1994년 0.47, 2002년에는 0.56으로 남미 나라들보다도 중국의 소득분배가 나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전체 인구 13억 중 약 9억을 차지하는 농민의 소득은 여전히 늘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빈곤층 감소가 전세계 빈곤인구 감소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농민들의 불만은 여전한 듯하다. 90년대 개혁개방의 가속화와 함께 중국 농민의 평균소득은 1997년 1천2백67위안에서 2001년 1백1백65위안으로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2002년 12월 중국공산당은 “농촌에 더 주목하고, 농민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농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하라”는 소위 삼농 테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노동력 과잉과 농산품의 공급과잉이 WTO 가입과 경제개방 과정에서 더욱 심화될 것이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륙의 농촌에서 해안의 대도시로 수백만에 이르는 빈민들이 대이동을 하고 있어서 상하이 등에서는 이들을 막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고 그 대부분은 직업을 얻지 못해 실업자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 실업률도 90년대 초반에 비해 두 배로 급등했고 중국국무원조차 실질실업률은 10%가 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대도시는 그 시민들에게 매기는 세금이 높은 대신 교육 등의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외부인은 시민이 되는 것 자체가 어려우며, 대도시의 시민은 내륙의 농민과는 거의 다른 나라 사람의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칭화대학의 쑨리핑 교수는 ‘단절’이라는 저서에서 이런 양극화 현상에 대해 마라토너들이 레이스 도중에서 선두, 중간, 탈락 그룹으로 나눠지는 것과 유사한 ‘단절사회’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진전과 함께 사회가 분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심각한 사회 불안은 성장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개방개혁의 최대의 수혜자로 당, 정의 관료와 사영기업가를 들고 있으며 농민과 빈민들이 그 비용을 지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은 밑바닥의 불만이 언제 터져나올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제 중국 사회도 양극화와 사회갈등이라는 심각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을 이끌어 왔던 중국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으며 그 해결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이달 초 개최된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국정목표로 제시하고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노력을 선언했다. 양극화의 해소와 균형성장,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인 것도 같은데, 문제는 자유화와 개방 그리고 시장에만 맡기는 식으로는 사회갈등을 치료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중국식 개혁으로 성장에 성공했지만 성장과 함께 심화되는 내부 갈등에 직면한 중국경제, 심각해져가는 사회 균열에 대해 어떤 독특한 중국식의 대응이 나타날지 주의깊게 지켜볼 일이다.
중국의 경험과 현재 그리고 미래는,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도 자유화, 개방, 그리고 양극화와 불안정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남미의 실패와 경제위기 이후 이를 닮아가고 있어서 걱정인 우리의 현실에도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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