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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교육청, 교사가 ‘풀빵기계’인가”

[기고] 현장교사들이 ‘학력신장방안’ 반대하는 이유

사회가 독도문제로 들끓고 있는 동안 교육현장에서는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이 강행하고 있는 중1진단평가와 서술·논술형 평가 30% 반영 등 ‘학력신장방안’을 놓고 학기 초부터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시교육청은 이미 발표한 대로 초·중등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진단평가는 물론 서술·논술형 문제의 비율을 좀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고, 교사들은 “이미 자율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학교현장의 평가방법에 교육청이 끼어들면서 되레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최근의 교육계 갈등을 좀더 내밀히 살펴보기 위해 박혜성 전교조 서울지부 교육선전국장(경복고 교사)의 기고문을 싣는다. <프레시안>은 시교육청의 반론이 있을 경우 이도 게재해 교육주체 사이의 갈등해소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

***새 학기, 교사들은 ‘공문 융단폭격’에 시름하고 있다**

3월은 교사들에게 긴장의 연속이다. 새 아이들을 만나고, 새로 맡은 업무의 계획을 짜야하고, 1년 동안의 평가계획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조사하고 걷어야 할 일거리들은 좀 많은가. 가정환경조사서, 주소록 작성, 사진, 주민등록표 걷기, 학부모총회 안내…. 수업은 오히려 일하다가 가서 한 숨 돌리는 시간이 된다. 몸살을 한바탕 앓고 나서 4월이 되면 비로소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고 수업이 본궤도에 오른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힘겨운 3월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학생 학력신장 방안’을 추진하면서 학교 현장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개학하자마자 공문이 수도 없이 내려왔다. “중1진단평가를 실시하라” “서술·논술형 평가를 30% 이상 넣어서 평가 계획을 수립하라”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해 실시하라” 등등.

중1진단평가 실시를 두고 이미 학교 현장은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에는 문제만 개발해서 ‘알아서 사용하라’고 내려 주던 것을 올해는 반드시 인근학교와 날짜를 맞춰서 일제히 실시하라고 못을 박은 게 화근이었다. “학교 간 성적비교는 하지 않겠다” “부진아 지도 대책 수립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왜 동시에 실시해야 하는 지 교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담임협의회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시험 보는 날짜를 정하고 활용방법을 강구했던 학교들은 교육청과 교장으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16일 교육청은 100% 달성을 자랑하며 결과를 발표했다.

학부모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진단평가 본다는데 교사들이 왜 반대하지? 일하기 싫어서 그런가”. 교사들은 진단평가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일하기 싫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교육청에서 문제 다 만들어, 문제지까지 인쇄해줘 시험만 보면 되는데도 날짜 맞춰 보는 것에 반대한 것은 이미 지방에서 일어난 부작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결과를 놓고 ○○초등학교 출신들이 1~3등 석권!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은 6학년 담임들에게 “진단평가 신경쓰세요”라며 압박하고, 그러면 6학년 2학기 교육과정은 실종되고, 학원들은 겨울방학 때 중1진단평가 대비반을 편성할 것이 뻔하다. 이게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교육청의 방안인가?

***교사 의견 묻지도 않고 ‘지시’에 목매는 학교현장**

두 번째 ‘파도’는 서술·논술형 평가 강제로 밀려왔다. 사고력, 문제해결력 및 창의력 등 고등정신능력 배양을 위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에서 총 배점의 30%이상을 서술·논술형 평가로 실시하고, 나머지 70%에서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의 비율은 학교자율로 결정하라고 했다. 공문이 내려온 즉시 교장들은 관련교과 교사들에게 평가 계획을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한 국어 교사는 말했다. “국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종합적으로 보아야 하고, 도서실을 이용한 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느닷없이 논술만 30% 이상 넣으라고 하면 다른 활동들은 위축되어서 안돼요. 배점이 과합니다.”

영어 교사도 말했다. “영어에서 논술형을 내라니, 영작을 내란 말입니까? 해석하기를 내란 말입니까? 영작이나 독해는 사고력이나 문제해결력이나 창의력과 별로 관련도 없는데…. 그럼 영어지문 주고, 한글로 의견 쓰는 문제를 낼까요? 그건 국어하고 뭐가 다르죠?”

사회 교사도 반발했다. “이번 1학년에서 우리 마을 지도 만들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건 논술형이 아니라니, 별도로 논술까지 내려면 채점 부담이 너무 커요. 사실은 지도 만들기가 창의성과 문제해결력을 훨씬 더 키우는 것인데, 논술형 하나에 목을 매는 건 도대체 이해가 안가요.” 수학·과학 교사들도 할 말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화가 난 것은 교육청의 지시가 교사들의 전문성을 믿지 않고, 평가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미 선택형 지필평가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서술·논술형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평가 방법을 개발해 실시해왔으며, 또 교과협의회를 통해 반영비율과 세부기준까지 다 세우고 있는데 교육청이 지평을 열어주기는커녕 제한하려 드니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교육청, 과연 학교 현실 알고나 있는지 의문**

공정택 시교육감은 ‘학력신장 방안’을 발표하면서 “학력신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거 ‘선생’아니라고 본다”고 엄포를 놓았다. 학력신장에 반대하는 교사는 아무도 없다. 교육감의 엄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은 교사들의 기본적인 임무이고 고민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교육청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시키는 것이다. 교육청은 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지원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교육청은 ‘부진아 제로운동’을 추진한다면서 초등학교에 부진아 지도비가 아예 편성도 안 된 학교가 있는 것을 정녕 알고 있는가. 또, 초등선생님들이 학년모임을 통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창조적으로 작성한 교육과정이 학력평가 실시 계획에 의해 몽땅 부정되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가.

개개의 교사들이 못 미더우면 교사협의회, 성적관리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자치기구의 역할과 권한을 더 강화하라. 교육청은 학교장들이 의견수렴절차를 제대로 지키는지를 감시하라. 3월의 출발이 힘들긴 해도 새로운 각오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이 또다시 비 맞으며 교육청 앞에 항의하러 가는 일은 없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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