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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합수부, 직속상관 계엄사령관을 총격 연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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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두환 합수부, 직속상관 계엄사령관을 총격 연행하다

[박정희 권력의 DNA]<6> 하나회의 반인륜적 하극상 반란

반란세력의 정승화 계엄사령관 납치 작전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경 육군본부 당직상황실.
국방전화 벨이 울리고 당번병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초, 총장님 공관인데요. 크, 큰일 났어요. 총장님을 사복차림 대령 둘이 와서 끌고 갔습니다."

급보는 즉각 주번총사령인 병참감 이종민 소장(종합 23기)에게 보고됐다. 이 소장은 이를 윤성민 참모차장에게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계속 통화중. 이때 윤성민은 납치된 정승화 총장의 부인 신유경 여사로부터 숨 가쁜 전화연락을 받고 있었다. 잠시 후 육본 당직실로부터 윤 차장에게 긴급상황이 보고된다.

"보안사 소속의 사복차림 대령 두 명. 이 중 한 명은 진급이 안 돼 섭섭하다고 했으며 다른 한 명은 녹음할 것이 있으니 어디로 가자고 요구. 둘이 정 총장의 양팔을 끼다가 총격전 발생. 총장부관 이재천 대위와 공관경호대장 김인선 대위 부상. 합수부 헌병들이 공관을 포위. 이 합수부 헌병들을 다시 공관 경비병력인 해병대가 포위. 보안사 대령 둘이서 타고 온 승용차는 일제 슈퍼살롱200 검은색…."

이날 저녁 정승화 총장은 처남 신대진 대령이 준장 진급자로 발표된 날이어서 모처럼 인사차 처가를 방문할 참이었다. 2층 거실에서 아내와 함께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불렀을 때 그가 왔다 가면서 보안사 정보처장을 보내 보고할 사항이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정 총장은 아내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응접실로 내려갔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 얼굴을 아는 우경윤 대령과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보안사 허 대령입니다."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였다. 그런데 전두환이 낮에 정보처장으로 예고해 놓았기 때문에 정 총장과 공관요원들은 찾아온 사람을 정보처장(당시 권정달 대령)이라고 생각했다. 우경윤이 허삼수와 함께 소파에 앉으며 서두를 뗐다.

"총장님, 이번에는 꼭 진급될 줄 알았는데 안 됐습니다."

이때 차를 가져온 당번병은 이 말에 분위기가 어색하다고 생각돼 두 대령의 수작에 귀를 기울였다.
우 대령은 육사 13기로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과 동기이고 같은 헌병병과였는데 진급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그래 일 년 더 열심히 해봐. 내년에 기회가 되겠지."

정 총장도 당사자로부터 인사 얘기를 듣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돼 간단히 대꾸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보고하겠다는 게 뭐야?"

허삼수가 앞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김재규가 재판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장님의 증언이 있어야 재판진행이 되겠습니다."
"증언이라니…."

박정희의 촌지, 육참총장보다 보안사령관에게 훨씬 크게

이때 합수부에 파견 나가 있던 우경윤이 거들었다.

"수사 중에 김재규가 총장님에게 거액의 돈을 주었다고 여러 차례 진술했습니다."
"무어라고, 돈…?."
"정확한 액수는 기억할 수 없으나 수백만 원대라는 겁니다."

당시는 추석이나 연말연시 때면 박정희가 막료들과 근위부대 등에 하사금을 내려주었고, 중앙정보부장도 막대한 정보비 중에서 일부를 떼어 군 간부 등에게 촌지로 나눠주었다. 그러나 중정부장의 촌지는 육군총장보다 보안사령관에게 주는 것이 훨씬 큰 액수였다. 그것을 김재규의 대통령 살해음모와 관련지어 증언하라니…. 정 총장은 크게 불쾌했다.

"이 사람들아, 돈은 무슨 돈을 받아. 몇 번 식사를 같이 한 것밖에 없는데…."
"돈을 받지 않았다면 안 받았다고 확실하게 증언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야기는 수사관과 혐의자 간의 대화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말하지. 그렇게 쓰면 될 것 아닌가."
"총장님 여기서는 곤란합니다. 녹음시설도 필요하고 저희 사무실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러자 정 총장의 안면근육이 실룩거렸다.

"도대체 자네들 어디서 누구 지시로 왔나? 내가 지금 계엄사령관이야. 너희들이 계엄사령관을 데리고 어디로 가겠다고?"

정 총장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두 대령은 정 총장의 좌우에 달라붙어 각기 겨드랑이를 끼었다. 수사관의 범인 체포 자세 그대로였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계엄사 휘하의 합수부가 직속상관인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겠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국방장관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 12.12 군사반란의 타깃으로 총격 체포된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1979년 12월 말경 군사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법정에서도 그의 손목에 채워진 철제 수갑이 엄혹한 반란과 권력 투쟁을 말해 준다. 정 총장의 구금은 전두환의 군권장악과 향후 정권 찬탈을 예고했다.

"총장님, 잠깐만 다녀오시면 되는데요."
"경비병!, 경비병 없나?"

정 총장의 고함에 밖에서 네 명의 경비병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유리창 너머에서 권총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사이 우경윤이 풀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허삼수는 권총을 뽑아 정 총장의 머리에 갖다 대고 소리쳤다.

"꼼짝 마라. 움직이면 쏘아버리겠다."

정 총장은 '사격중지'를 외쳤다.

한편,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대비한 이른바 '후보계획'을 담당한 성환옥 대령(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합수부 파견)과 최석립 중령(수경사 33헌병대대장, 합수부 파견)은 정 총장을 연행해 나오기로 돼 있는 예정시간에서 30분 이상이 지났는데도 허삼수가 나오지 않자 행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합수부 헌병 1개 소대와 함께 공관 안으로 진입했다가 최석립만 허삼수를 호위해 밖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해병대 경비병들에게 포위돼버렸다.

이때 총장공관 평정 임무를 부여받은 수경사의 헌병특공대를 이끌고 신윤희 중령이 공관 앞에 도착했으며, 이윽고 포위된 성환옥 대령과 후보계획조를 구출하기 위해 33경비단장 김진영 대령이 나타났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부터 임무를 받은 신 중령은 여기서 김진영을 만나 내막을 처음 알게 된다.

비상시 수경사 실병력 핵심 지휘관들 모두 하나회
30단장 장세동 ‧ 33단장 김진영 경복궁 반란음모 가담


육군본부 지하벙커 상황실.
윤성민 참모차장은 치안본부와 서울시경에 정 총장 납치범과 차량 체포령을 내렸다. 비상계엄이기 때문에 경찰지휘권도 계엄사인 육본이 갖고 있었다. 그는 계엄사령관 납치가 일단 10.26사건에 뒤이은 최대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전군에 비상, 진돗개 하나. 모든 지휘관은 정 위치에서 이상 유무를 보고하라."

한편, 1979년 12월 12일 저녁 전두환의 유인책에 걸려 연희동 비밀요정에 잠시 정신을 앗긴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일행은 김진기 헌병감 부관의 전화를 받고서야 육참총장 공관이 총격을 받은 사태를 알았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즉각 총장공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 속에서는 응대도 제대로 못하고 신음소리만 들려오는 게 아닌가.

"나, 수경사령관이다. 부관 바꿔라."
"… 앰뷸런스, 앰뷸런스… 아아."

앰뷸런스 구조요청을 하던 신음소리마저 이내 끊겼다. 전화선 두절이었다. 어안이 없어 이맛살을 잔뜩 찡그린 장 사령관 앞에 전속부관 천연우 대위가 뛰어들었다.

"사령관님, 부대에서 무전이 왔는데 총장님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돼 누구 소행인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총장님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태랍니다."

천 대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국이 어수선한 비상계엄 때인지라 요정 사람들을 통해 시중에 루머가 떠도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김진기 헌병감은 이미 밖으로 나갔고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요정에 오느라 사복 차림인 세 장성은 각기 차로 뛰었다. 김 헌병감은 육본 헌병대로, 정 사령관은 특전사령부로, 장 사령관은 필동의 수경사령부로 각기 숨가쁘게 차를 몰았다.

장 사령관이 차에 오르자 조홍 헌병단장도 말없이 뒤따라 탔다. 장 사령관은 우선 부대상황실을 무전으로 호출하라고 지시하고 사태를 헤아려보았다.

오늘이 준장 진급 발표일이라서 정승화 총장 주변의 진급 탈락자 중 과격한 자가 술김에 난동을 부린 건 아닐까. 이번 인사를 보니 정 총장의 측근 중에서는 처남인 신대진 대령 외에는 진급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신 대령의 경우 비하나회이면서 육사 15기의 대표화랑 출신 선두주자로 누가 보아도 정실이 작용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 총장을 가까이서 모셨던 사람들은 아무도 혜택을 받은 사람이 없어, 기대를 가졌다면 오히려 불만이 터져 나올 소지도 있었다. 지난 2월 1일 취임한 정 총장은 처음 치르는 장성 진급인사여서 봐줘야 할 측근을 봐주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됐다.

장태완은 혹시 쿠데타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10.26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아직 군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국은 불안하고 군내에 파벌 움직임도 있었다. 어떤 세력이 섣불리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장군만 손아귀에 넣거나 제거하면 실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경거망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문득 옆자리의 조 대령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 대령은 조금 머뭇거렸다. 그는 혼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일이 무언가 계획대로 순조롭지 않게 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글쎄요. 무장간첩 소행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대통령 살해사건 후 어수선해 보이니…."

부대 상황실에서는 상황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정 사령관은 달리는 차 속에서 다급한 마음에 작전지시를 내렸다.

"우선 에이피시(경장갑차) 한 대와 헌병특공대 1개 소대를 총장공관에 보내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긴급사태에 대처하도록 하라. 전 예하부대에 비상을 발령하고 모든 지휘관과 참모들은 상황실에 집합하라."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태완은 사령부에 도착 즉시 지하의 상황실로 직행했다. 수경사의 주요 실 병력 지휘관은 30경비단장, 33경비단장, 헌병단장, 야포단장, 방공포단장 등이다.

그 중 상황실에 대기해 있는 지휘관은 갑종 출신인 황동환 방공포단장 1명뿐이었고, 30경비단장 장세동 대령과 33경비단장 김진영 대령은 보이지 않았다.

"30단장과 33단장에게 연락했나? 지금 비상계엄이야, 이 친구들 어디 갔나? 그리고 헌병단장 어디 있어?"

"검정색 일제 수퍼살롱200을 잡아라"

사령부까지 차를 함께 타고 온 조홍 헌병단장도 아무 말 없이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는 참모장 김기택 준장에게 지시했다.

"단장들을 빨리 소집하시오. 서울 외곽 모든 검문소에 검문검색을 강화하도록 하고 수상한 군 병력 이동이나 차량 출입은 일단 제지한 뒤 사령부의 지침에 따르도록 해요."

비상조치를 해놓은 뒤 그는 2층 집무실로 올라가 사복을 벗고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총장공관에 전화를 걸었다. 계속 통신두절 상태다. 육군본부와 국방부에 물어봐도 상황파악이 안 된 채였다.

10여 분이 지나 다시 상황실로 내려가 보았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상황실장은 작전참모 보좌관인 김진선 중령(후에 2군사령관)이었다. 육사생도 시절 유명한 럭비선수였다는 그는 충복 괴산 출신으로 하나회와의 관계가 분명치 않아 보였다. 이 날 그는 직속상관인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을 통해 내려오는 사령관의 작전명령과 상황조치를 전달하고 확인하는 실무책임자였다.

장태완은 더 이상 상황실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 총장공관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그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사령부 내의 헌병단 뿐이다. 헌병 1개 소대, 전차 1대, 경장갑차 1대, 2.5톤 트럭 1대, 사이드카 2대, 앰뷸런스 1대로 특수임무조를 편성했다. 지휘관으로 헌병단의 최고책임자를 찾으니 부단장 신윤희 중령이 남아 있었다.

신윤희가 특수임무조를 이끌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총장공관에서 간헐적인 위협사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별달리 손쓸 방도가 없어 병력을 한남동 고가도로 주변에 배치해 놓고 공관 내부 동향을 지켜봤다.

장태완은 신윤희의 보고를 기다렸으나 30여 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정보참모 박웅 대령과 전속부관 천 대위만을 대동하고 직접 현장으로 향했다. 차가 막 장충단 고개를 오르는데 무전기가 울린다. 육군참모차장 윤성민 중장이 장 사령관을 찾았다.

"여보 장 장군, 지금 어디 있소? 보안사의 권정달 대령과 허삼수 대령이 총장님을 납치해 어디로 가버렸다는 거요. 육본 지휘부도 지금 수경사로 옮겨왔는데 빨리 돌아와서 수습책을 강구합시다."

이날 총장공관에는 보안사 정보처장이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어서 별 의심 없이 권 대령 일행의 면담에 응한 것인데, 총장을 납치한 것이다. 공관 위병소로부터 이들이 타고 온 승용차를 확인한 계엄사는 수경사 및 경찰에 급히 명령을 내렸다.

"일제 슈퍼살롱 200, 검정색 승용차를 모두 검색하라. 범인이 불응하면 사격해도 좋다."

이날 밤 9시경이 돼서야 계엄사인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에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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