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석유보다 더 귀하게 여겨라’**
한국에서‘멘도사’라면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도 안데스 산맥의 중간지점에 높이 솟은 아메리카 대륙의 최고봉 ‘아콩까구아(6,962m)’라면 “아 그 만년설에 뒤덮인 아름다운 산” 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아콩까구아 산자락에 자리잡은 멘도사 시는 사막화 돼가는 지역을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길을 바로 잡아 남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가운데 하나로 바꾸어 놓은 기적의 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1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초가을, 포도가 익어가는 위쪽 저 멀리 안데스의 만년설이 보인다. @김영길
2.황량한 안데스 고원에 심겨진 포도 묘목, 물의 증발과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이프를 이용,포도 묘목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공급하고 있는 모습.
3.프랑크 로메로 다이 와인축제 전용극장의 무대, 남미전체의 민속예술의 진수를 선 보이고 있다. 무대 뒤는 안데스와 아콩가구아 산 모습에 거미줄처럼 얽힌 수로를 형상화 했다.
4.현지 유력 언론이 보도한 중국 CCTV 촬영팀 사진과 필자의 와인축제에 대한 평가, 이번 축제기간동안 유일한
동양인들인 필자와 중국 TV스탭들은 현지언론들의 집중적인 인터뷰공세를 받았다.
사진5 멘도사 전역에서 선발된 포도의 여왕 후보들이 관객들에게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이 축제에서 여왕으로
뽑히면 본인은 물론 가문 전체 최대의 영광이다.
멘도사 사람들의 물에 대한 생각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 그만큼 물을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두렵고 존경스럽게 여긴다는 이야기다. 물 관리에 관한 한 멘도사 주지사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며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기관인 물 관리위원회가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헛되이 허비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간주하여 법으로 엄하게 다스리고 있다.
멘도사주는 인구 1백65만명에 면적은 15만 평방킬로미터다. 이 넓은 지역에 거미줄 같은 수리시설을 건설하여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안데스 고원을 세계최고의 포도생산지로 가꾸어놓았다.
이들의 유일한 수원(水源)은 안데스 고산지대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이 물을 댐을 막아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손실을 최소화하여 주 전역에 효율적으로 공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헛되이 땅밑으로 스며들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로(水路)는 콘크리트로 만들거나 대형파이프를 통해 흐르도록 설계를 해놓았다는 이야기다.
주민들 또한 집안에서 사용하는 물 외에는 철저한 통제와 구역별로 사용시간을 엄수해야만 한다.
이렇게 아끼고 아껴 모아진 피 같은 물은 공업용수 혹은 포도밭으로 공급이 되는데 이 또한 철저하게 사용한 물의 양에 따라 아주 비싼 물값을 주정부에 지불을 해야만 한다. 멘도사주의 물 관리위원회는 한마디로 아르헨티나판 봉이 김선달인 셈이다.
안데스의 만년설 물을 가두고 관리하는 주정부의 한 관리는”만일 눈이 적게 내리거나 녹아 내리는 물의 양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매년 눈의 적설량과 물의 사용량을 체크해서 대비책을 마련하지만 항상 5년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비상 저장 댐을 완비하고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또”여름에는 비가 잘 오지 않은 멘도사주는 이상하게도 겨울철이 되면 몇 미터 정도의 눈이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우리의 수자원은 항상 넉넉하게 안데스정상에 쌓여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멘도사주는 겨울철에는 혹독한 추위로 눈이 녹아 내리지 않지만 농업용수의 사용이 줄어 들어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해 봄이 되어 농사가 시작되면 안데스정상에 겨울내 쌓인 만년설이 다시 녹아 내리기 시작해 사용이 늘어난 물을 보충해주는 천혜의 혜택을 입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포도의 여왕은 멘도사가 누리는 행운의 상징’**
아르헨티나의 다른 주들에 비해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멘도사 사람들은 자연의 힘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멘도사주 곳곳에는 엄청난 량의 천연광물과 석유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풍요로운 수확의 혜택과 각종 자원이 주는 부를 인간이 이룬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 또는 신의 축복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고마움을 표시할 대상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주민들은 지난 1936년부터 그 지역에서 가장 정숙하고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 여왕으로 추대를 하고 1년 동안 섬기는 것을 전통으로 삼아왔다.
초창기에 뽑힌 포도의 여왕은 다분히 성 처녀 혹은 땅의 어머니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타민족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천주교적인 의식은 퇴색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각 지역주민대표들과 포도주 생산공장 대표, 축제현장에서 선발된 시민대표단, 그리고 아르헨 국내 유수언론사 기자단이 선출하는 포도의 여왕은 공식석상에서 ‘여왕폐하’로 불리며 주지사도 주의 공식축제나 행사에서 형식적이지만 여왕대접을 해주고 있다. 멘도사주 포도의 여왕은 멘도사 주민전체의 행운의 상징이라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멘도사 주민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가문에서 포도의 여왕이 탄생하는 것을 일생일대 최고의 영광으로 여겨 해가 갈수록 그 열기가 더해가고 있다.
올해로 69회째를 맞는 멘도사의 와인축제는 이제 범 남미축제로 자리를 잡았으며 여왕을 뽑는 이 와인축제만을 위해 수용인원 3만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공연무대 또한 8백여명의 무용수들이 동시에 공연을 할 정도로 크고 호화롭게 설계를 해놓았다.
그러나 매년 이 화려한 축제의 현장에 입장을 못한 지역주민들의 원성이 높아가자 주정부는 극장주변의 야산을 깎아 2만5천명 정도의 인원이 장외에서 구경을 하도록 하고 주변에 대형화면까지 설치를 해놓았다. 하지만 이 자리마저도 서로 차지하려고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서 산을 올라가는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멘도사 주민들의 와인축제에 대한 열기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또한 자신들의 여왕이 될 후보를 선보이는 시가행렬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여서 여왕후보들의 시녀로 분한 도시 처녀들이 선물로 던져주는 와인이나 참외, 포도, 수박 등 과일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관중들이 속출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아우성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여왕후보가 던져주는 선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는 굳은 믿음을 보는 듯했다.
금년에는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 볼리비아, 페루의 전통무용수들이 대거 참여, 명실공히 남미 전체의 축제임을 대내에 과시하기도 했으며 남미 전통예술의 진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이번 2005 멘도사 와인축제의 최대 화제거리는 단연 중국 국영CCTV 촬영 팀의 좌충우돌 식의 막무가내 축제 취재였다. 이들은 한국의 인기 TV프로그램인 ‘도전 지구탐험대’를 벤치마킹 해 미녀탤런트를 출연시켜 축제의 각종이벤트에 도전하는 연출기법으로 축제분위기에 들뜬 순진한 멘도사 지역주민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남미최대의 와인축제로 평가받고 있는 ‘2005 멘도사 포도축제’에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과 부통령, 각국의 외교사절들이 대거 참석하여 풍성한 수확과 포도의 여왕탄생을 축하해주었으며 이 축제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 3백여명의 내외신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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