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① 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 ② 대학청소노조한테 천냥마트노조와 창구단일화하라고? |
노사관계에서 정부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정부는 때때로 '공정한 법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잘 지켜야 하며, 때로는 노사자치주의가 본연의 의미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공공기관 등에서는 스스로가 '모범적 사용자'로 행동하며 사기업의 노사관계에 일종의 '롤 모델'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면서 이런 '착한 정부'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지만, 최근 정부의 모습은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어떻게 합의하든지, 상관없거든?"
복수노조 도입 이후, 노사관계를 지배하는 코란은 무엇일까. 노조법도, 시행령도 아닌 '노동부 업무매뉴얼'이다. 2010년 12월 마련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업무매뉴얼'은 복수노조와 관련된 모든 법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해석해, 이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다. 노사자치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도발이다. 강행규정은 행위의 반도덕성과 반윤리성 등을 이유로 행위 자체를 금지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섭의 방식과 절차는 원칙적으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대체 교섭절차에 대한 노사합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떤 위해를 끼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복수노조 관련 노조법 내용은 '임의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노사자치주의에도 걸맞다.
노동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대해 '강행규정으로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함(노동부매뉴얼, 8쪽)'이라고 정하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개별교섭 동의기한은 강행규정에 해당하여 교섭요구 노동조합이 확정된 경우에만 사용자의 개별교섭 동의가 허용(노동부매뉴얼, 19쪽)'된다고 해석하고 있으며, '따라서 해당 기한 외에 노사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하지 않고 개별교섭 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효력이 없음(노동부매뉴얼, 20쪽)'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 지난달 29일 민주노총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갖고, 8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이런 노동부 해석을 따를 경우, 교섭방식에 대한 노사합의는 휴짓조각이 된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개별교섭'에 합의한 경우, 다음 교섭시기가 되면 이 단협 규정에 따라 교섭을 개시한다. 그러나 만일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노동위원회 조정절차를 밟게 되면, 황당한 답을 듣게 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지 않아 조정을 할 수 없으니, 다시 절차를 밟아오라'는 대답이다. 전국의 많은 사업장에서 같은 대답을 들어야 했다. 노사가 교섭절차에 대해 어떻게 합의를 이뤘든 상관없다는 게 정부의 태도다.
노동부 매뉴얼에 따라 신규노조는 아예 교섭권을 갖지 못하게 됐다. 노동부는 '개별교섭 동의에 의해 사용자가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은 '확정된 교섭요구 노동조합'이므로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 이후에 신설된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교섭의무는 없음(노동부매뉴얼, 20쪽)을 규정하는 등, 신규노조의 일체 권한을 박탈한다. 즉 노동부 주장에 따를 경우,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직후 설립된 신규노조는 앞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3년을 '무(無)단협' 상태로 지내게 되며, 이는 사실상 노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의 노사현실에서 단협 없이 노조가 생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법은 '사용자 편의 위주'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 행사도 노동부의 벽에 막혀 있다.
노동부는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정의와 관련해 '해당 사업(장)의 사용자와 직접적인 사용종속관계에 있지 않은 근로자로 조직된 노동조합은 그 사용자에 대하여 교섭을 요구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할 수 없음(노동부매뉴얼, 9쪽)'을 정하고 있다. 노동부의 이와 같은 입장은 '사용종속 관계'에 대한 노동부의 기존 해석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을 더해 볼 때, 사실상 불법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원청 사용자 상대 교섭권을 복수노조 시행 이후에도 가로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2007두8881)에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원청업체도 부당노동행위의 사용자'라고 규정한 것에 비춰보면, 노동부의 행정지침은 구시대적이고 사용자 편의 위주라는 혐의를 벗을 수가 없다.
타임오프 적용대상, 노조 활동 전체?
복수노조와 함께 도입돼 올 7월로 시행 2년 차를 맞는 이른바 '타임오프 제도' 역시 노조활동을 가로막기 위한 노동부의 월권행위가 노골적인 제도 중 하나다.
지난 6월 18일 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은 기아자동차 사측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에 단체협약 시정권고를 내렸다. 노사간에 체결한 단체협약 중 '노조사무실의 관리유지비를 회사가 부담하며, 회사 내의 필요한 시설, 비품, 집기사용을 제공한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운영비 원조를 금지한 노조법 위반이라는 것이며, '조합 활동을 위하여 일하지 못한 시간에 대해 회사의 동의를 얻은 경우 근무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 역시 위 노조법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물질적 지원, 시간 할애 모두 다 위법이니, 시정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5월 17일 광주지방노동청은 엠코테크놀로지 사측과 금속노조ATK 지회에 노사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 중 '노조 간부들에게 분기별 24시간씩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 노조법이 위반이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고용노동부는 노조 전임자의 타임오프 한도 초과 여부뿐만 아니라 노조활동 전반에 대한 감시를 통해 회사가 지원하고 있는 것은 모두 시정지시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노동부가 타임오프 제도를 빌미로, 그 적용대상을 전임자에게 국한하지 않고 노조활동 전체로 보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타임오프 총량 속에는 노조 전임자 활동시간뿐만 아니라 노사 간에 합의한 단체협약에 의해 보장되어 온 교섭위원 활동, 노동안전 활동, 간부 활동 시간뿐만 아니라 조합원 교육이나 총회, 산업안전활동 등 기존 단협이나 다른 법에서 보장한 유급 활동시간까지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단체협약에 의해 노사 간에 합의되어 시행되고 있는 컴퓨터 등 편의시설 제공까지 운영비 원조로 보아 시정지시를 남발하고 있다. 이것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와 함께 타임오프 제도가 노동기본권과 노조활동의 자유를 후퇴, 축소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천지법은 '노조법상 전임자 급여금지 규정은 전임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비전임자로서 임시상근자, 선거관리위원장, 임원 입후보자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그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상실된 증거도 없으므로 부당노동행위도 아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복수노조가 생겼을 때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 총량을 나눠서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에 존재하는 노조 외에 복수노조가 생겼을 경우, 타임오프 한도의 적용시기, 배정문제를 매개로 한 노조 무력화 공작이 진행될 수 있다. 반대로 소수노조가 새로 생겼을 경우에도 타임오프 적용이 아닌 배정의 문제로 제기되 사실상 단결권이 제약된다. 실제로 금속노조 센트랄지회의 경우 2012년 1월에 확정된 조합원 수를 통해 타임오프를 적용(전임 3명+사무보조 합의)해 왔으나 친 기업노조 설립으로 타임오프를 재 산정해야 한다고 통보하고 사업장으로 복귀명령을 내린 바가 있다.
노동부, 노동현장 헤집고 다니며 방해
정부는 타임오프 제도를 무기로 한 노조활동 제약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부 본부-지방관서별 '전임자-복수노조 이행 점검단'을 구성하여 현장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이 지난 4월 13일 점검사업장 63개소에 보낸 지도점검 계획을 보면 준비서류로 '노조 조직도, 기존-현행 전임자 명단, 각종 노사공동 위원회 회의일지, 자판기-매점-차량 계약서, 근로자 임금 및 근태내역 등' 세부적인 자료까지 요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노동안전 실태, 불법파견 실태조사에 대해서는 인력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던 고용노동부가 타임오프 이행 관련해서 만큼은 저인망식 조사를 하고 시정지시를 남발하는 넘치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모양새는 고용노동부라는 국가기관이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고, 시정지시를 남발하여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복수노조 도입의 취지는 '노동3권의 확대'에 있다. 그러나 각각 시행 1년과 2년 차를 맞은 복수노조-타임오프 제도의 효과는 오히려 노동권을 억압하고 축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부가 초법적 잣대와 자의적 행정권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노사 교섭방식과 노조 전임자 숫자, 비전임 노조활동시간, 노조활동 지원 등은 모두 사업장의 특성에 기반해 노사자율로 정할 내용이지,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자치주의에 대한 부정과 자주적 노조활동에 대한 타임오프의 강제적용을 그만두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죽하면 '노동부만 없어도 현장 노사문제가 잘 풀릴 것'이란 푸념이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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