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① 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 |
비정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관계는 부당한 사용자의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을 시작부터 어렵게 만든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더라도 사용자는 어김없이 재계약 거부, 계약해지, 배치전환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위협하여 탈퇴를 강요한다. 탄압을 통해서도 민주노조를 약화시키기 어려우면 아예 통째로 업체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집단적으로 해고한다. 우리 노조법에서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으나 법은 너무나 멀고 사용자의 권력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따라서 기업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더라도 사용자에게 지배되지 않는 자주적인 조직으로서 생존하고 유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의 산업별 연맹들은 산업별 노조로 조직을 전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경우에도 홍익대, 연세대, 고려대 등 대학 청소, 경비 노동자들을 산별노조로 조직하여 2011년 집단교섭 및 투쟁을 진행하였고, 청소노동자들에겐 숙명과 같았던 법정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면서 일궈오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권은 2011년 7월 이후 강제적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창구단일화제도는 기업별 교섭을 강제
ⓒ프레시안(김봉규) |
간접고용 노동자들,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사업장 노조와 창구단일화 해야하나?
파견, 용역회사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창구단일화제도의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다. 현실의 파견, 용역회사들은 원청의 인사노무관리 대행업체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노사관계는 원청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편 용역회사는 일반적으로 여러 원청과 노무공급계약을 체결하는데, 만약 용역회사를 기준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사업장 노조와 창구단일화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발생된다. 어렵게 단일화 절차를 거치더라도 만약 용역업체가 변경된다면 그때부터 다시 새롭게 변경된 용역업체에 있는 다른 노동조합들과 절차를 진행해야 하고, 혹시라도 창구단일화절차가 이미 진행되었다면 창구단일화 이후 설립된 신규노조와 같은 지위를 갖게 되어 교섭권과 쟁의권이 원천적으로 제한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전주대와 비전대의 청소노동자들의 사례이다. 전주대와 비전대의 청소, 경비 용역업체인 온리원에 소속된 청소, 경비 용역노동자 130명 중 113명은 지난해 6월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뒤 온리원 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7월 이후 용역업체 온리원이 행하는 전혀 다른 사업장인 천냥마트라는 전국 30여개 영업매장 판매원 등을 중심으로 온리원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그 노조가 다수파가 되었다는 이유로 공공운수노조와는 불성실한 교섭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교섭도 못해본 상황에서 작년 7월 이후 장기 파업과 40일이 넘는 지부장 단식투쟁이라는 장기간의 절박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용역업체 온리원은 대학 청소노동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전국 30여 곳의 천원상점 판매직노조가 다수파라는 이유로 청소노동자들과의 교섭에 불성실하게 응하고 있다. 사진은 전주오거리 부근에 위치한 천원상점 온리원 매장 앞에서 일인시위 중인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 ⓒ연정 |
너무나 복잡한 창구단일화 절차, 비정규 노동자들 법률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현행 노조법에 의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전에 각종 공고절차 등이 필요하다. 아무 문제없이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두 개 이상의 노조가 있다면 최초 교섭요구부터 빨라야 31일의 기간이 지나야만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노조나 사측의 각종 이의제기가 있다면 2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교섭조차도 시작하지 못할 수 있다. 힘의 불균형이 극심한 비정규 사업장에서 사용자에게 이와 같은 시간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도 유리한데, 엄청 복잡한 절차는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용자를 더욱 유리하게 만든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교섭을 하기 전에 먼저 어려운 노동법전을 달달 외워야만 하는 세상이 됐다.
소수노조나 신규노조에는 단체교섭권·쟁의권 보장 안 돼
비정규직은 일반적으로 소수인 경우가 많고, 다행히 다수파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불안정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용자의 탄압이 있을 경우 언제라도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이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신규노조라는 이유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사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노조를 소수파로 만들기 위하여 어용노조를 새롭게 만들거나, 또는 민주적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없는 공정대표의무제도나 부당노동행위제도와 같은 사후적 구제제도가 아니라, 조합원 수에 관계없이 비록 소수의 노동조합이라도 직접 교섭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투쟁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부족하나마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위원회, 월권적 행정지도 남발로 쟁의권 제한
작년 7월 이후, 노동위원회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쟁의조정신청을 행한 경우 쟁의조정 자체를 진행하지 않은 채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며 행정지도를 남발하고 있다. 최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들간에 단일한 교섭단위를 만들고 단체교섭 요구를 행하였으나, 사용자인 교육청이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서 교섭 자체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전국의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창구단일화를 먼저 진행했고, 사용자측의 책임있는 사유로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던 이번 경우에도 역시나 절차가 없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결정을 내리면서 쟁의권을 제한하였다.
사용자의 탄압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창구단일화 제도는 폐기해야
이상과 같은 이유로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새롭게 바뀐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 더욱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용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탄압이 '사용자에 의한 탄압'이라고 한다면, 기업단위로 교섭을 강제하고 소수노조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법제도에 의한 민주노조 탄압'이고 '사용자에 의한 탄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제도'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는 산업별, 지역별 교섭구조를 법·제도화하고, 강제적 창구단일화 제도가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법개정 이전이라도 노동행정기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초기업노조에 의한 단체교섭은 창구단일화 제도의 예외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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