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갈 것인가?'…선택의 기로에서**
요즘 선택의 기로에서 쉽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2학년 2학기가 되니 대학 진학 여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나의 시간표가 필수 이수 과목들로만 빡빡하게 채워지고 고등학교 생활이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꼭 대학을 갈 필요가 있을까. 대학을 가지 않고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텐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길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알지 못하는 길을 선택한다는 데에 대한 불안으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이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나의 삶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지금 결정에 따라 내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의 눈과 생각을 넓혀 주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의 절반이 남은 시점에서 나의 토대가 된 지난 1년 하고도 반년을 생각해본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눈을 떠가며…**
먼저 여름의 초록이 점점 선명해지던 지난 6월 친구들과 아빠와 함께 학교에서 떠난 주제별 통합기행이 생각난다. 나는 '환경과 경영'이라는 조금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결합된 주제로 기행을 떠났다. 나와 친구들은 양평, 가평, 춘천을 다니며 유기농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 생협을 꾸리고 있는 분, 생태건축가, 그리고 농촌마을을 생태적으로 컨설팅 하는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외롭게 시작한 유기농업에 점차 마을 전체가 동참하게 되었고 생산자인 마을 농민들과 도시의 소비자가 함께 소규모 생협을 만들어 바른 먹거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모습.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생태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 이렇게 대안적인 삶을 실제로 보고 들으면서 공기 좋고 산 좋던 강원도에서 나는 조금은 나의 삶의 방향과 생각이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만난 분들은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고 자신의 삶의 신념과 가치를 정말 삶 속에서, 자신의 일 속에서 실천하고 계셨다. 나는 앎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나도 그러한 힘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합기행을 마치고 '생태 운동'을 나의 진로로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이 '운동'이라는 것이 곧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작년 겨울에는 해외통합기행을 떠났었다. 일본, 인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의 나라들을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방문했다. 나는 군부의 독재 아래 있는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러 태국과 버마의 국경지역인 '메솟'에 갔다.
사실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한 나라이지만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시아는 일본, 중국, 동북아시아가 고작이었다. 우리는 홍수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거나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뉴스를 통해서만 가끔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나는 작년에 용인이주노동자 센터에서의 NGO활동을 계기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남들이 나에게 아시아 전체에 대한 관심을 싹틔워 주었다.
메솟 방문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세계라는 사회 속에서의 나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다.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자유를 얻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나라에 가지도 못하고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타국에서 힘쓰고 계시는 분들. 나는 한 단어라도 더 알아듣기 위해 하루 종일 귀를 쫑긋 세우고, 현재 민주화 운동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열심히 얘기하면서 '아, 또 하나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일을 무시하지 않게 되고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버마이주노동자 한 분의 난민 신청이 정부에서 거절당해 강제 출국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이때 버마이주노동자 강제 출국 반대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교 밖', 또 하나의 세상과 만나다**
지난 1년 반 동안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경험 또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작년 겨울 나는 친구를 통해 '민들레'에서 주최했던 '대안교육 한마당'이라는 행사의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는 민들레가 지금의 위치로 이사하기 전이었는데, 사무실은 일반 가정집이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손때가 묻은 책들이 서재를 가득 메운 그곳은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전국의 대안학교들이 함께 모여 즐기고 나누는 자리였는데 내가 이때까지는 해본 적 없는 큰 규모의 행사였다. 처음엔 막막하고 우리가 이걸 할 수 있기는 할 것일까 의문이었지만 의외로 하나하나 작게,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행사가 마련되어 갔다.
나는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기뻤던 참가자였다. 평소에는 다른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대안교육 한마당을 통해 다른 학교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속한 사회가 더 넓게 다가왔다.
행사 자체보다도 이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을 만난 것이 가장 뜻 깊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가지 않은 또 하나의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지속적인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서로의 삶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또 학교 외의 공간으로 나는 '수유+너머'와 '공간 플러스'라는 곳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곳에 대해 설명하자면 자유로운 연구공간이며 새롭고 살아 있는 지식을 나누는 곳인 것 같다. 공간 플러스에 개설된 '생명, 생물학, 여성'이라는 강좌와 '대동여지도' 강좌를 들었는데, 내 느낌은 '와, 이거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여성 생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본 생물학, 여성 생물학자들이 가진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 여성 생물학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배우는 생물학이 정말 재미있었다. 또 지도라면 따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고지도를 해석할 줄 알게 되고, 대동여지도 속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우리 땅을 바라보던 관점을 알게 되면서 신기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강의를 듣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학교가 아니더라도 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을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또 배우는 기쁨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 같다. 교과서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책 속에 담긴 글자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 내 삶과 호흡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계기로 다양한 공간과 강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되었다.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런 것을 해봐야지. 저런 것도 공부해 보고…' 하는 새롭게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차서 참 즐거웠다.
***'지각방지위원회'…스스로, 그리고 즐겁게 생활을 만들어가다**
그런데 이런 저런 것을 경험해보면서 모든 것이 시작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새로운 앎의 즐거움도 그것을 내가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나가지 못하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학교생활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생활면에서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 학교도 기숙학교가 아니다 보니 학교에서는 학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부분 자녀가 한 명 또는 두 명인 핵가족화 된 가정에서 우리는 대부분 귀하게(?) 자라 왔기 때문에 생활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경험과 습관이 부족하다. 중학교까지의 제도권 교육 아래에서 자율적인 생활을 배우지 못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데에 지켜야 할 약속과 규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자치회의나 학급회의에서 청소나 지각, 교실의 불을 끄고 다니지 않는 것 등의 생활규칙 위반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하려는 노력들도 제시된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회의에서 아무리 결의를 하고 이런저런 방안을 내놓아도 결국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뿐인 회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회의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많고 심화되면 만성둔감증과 패배주의가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의 문제를 함께, 즐겁게 해결해 나간 경험은 '아,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즐겁게 풀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각을 자주 하는 친구를 위해 '지각방지위원회(?)'를 만들어 모닝콜 하는 사람, 지각하지 않으면 칭찬해주는 사람, 격려해주는 사람을 정해서 친구가 지각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경험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아직은 낯설고 두렵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난다"**
나는 점차 나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단기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 꾸준히 해나가고 일상 속에서의 나와 다른 이의 권리를 생각해보고 일상 속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은 항상 반복되는 나에게 너무나도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학교와 나에 대해 정리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학교를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장'이라고 했었다. 해보고 싶은 것을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들어 할 수도 있고, 학부모님들과 함께 할 수도 있다. 학교를 통해 만나는 다양한 내용들과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게끔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우학교에 다니면서 일반학교에서는 누릴 수 없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얻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학교에서의 또는 학교 밖에서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평생을 고민해야 할 질문에 점점 더 깊이 있게 다가가게 된다.
다시 현실의 내 고민으로 돌아온다. 생각해보면 지난 18년 동안 정말 내 의지대로 온전히 선택한 것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어렵고 아직 낯설기도 하고 두렵다. 이제 앞으로 나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다 장단점이 있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고민해서 선택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즐겁게 해내고 싶다.
이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의 지난 경험들과 지금이 앞으로 내 삶의 어려운 순간들에 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나의 고민을 함께 해주는 부모님, 친구들, 선생님들, 또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오늘도 나의 고민을 들어주시기 위해 저녁까지 거르신 선생님께 내일은 맛있는 것을 들고 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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