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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위안, 그리고 미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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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위안, 그리고 미국의 선택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2>

퀴즈 하나, 세계에서 자신이 생산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많이 소비해서 무역수지 적자가 세계 최고이고 외국자본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그래도 통화가치가 폭락하지 않는 나라는? 정답은 역시 미국이다.

현재의 미국 경제는 사상 최고의 무역수지 적자 그리고 최근 다시 심각해져가는 정부의 재정적자와 함께 쌍둥이 적자에 짓눌려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작부터 미국 정부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에 눈을 흘기고 압력을 가해왔다. 며칠 전 G7 재무장관 회담의 주요한 주제도 역시 위안화의 평가절상 등을 포함한 국제적인 환율 협력이었다. 언제나처럼 미국 정부는 중국에게 더욱 유연한 환율정책과 위안화의 절상을 도입하라고 소리높였고,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에 시장의 힘을 반영하고 유연성을 도입하겠지만 이는 장기적이고 점진적일 것이라고 대꾸했다.

여전히 미국경제의 사령탑인 그린스펀의 파워는 막강해서 최근의 달러화 약세로 인해 미국의 적자 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국제시장에서는 금새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심지어 G7 회담 이후에는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경제의 허약성과 유로 등 새로운 통화의 등장을 주목하며 달러의 폭락 혹은 미국발 통화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조차 존재한다. 과연 위안화가 절상되면 미국의 적자문제가 해결되고 세계경제가 안정을 되찾을 것인가, 미국의 달러 정책은 어디로 갈 것이고 환율을 둘러싼 공방 뒤에 숨겨진 쟁점은 무엇인가.

***순진한 혹은 무책임한?**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최고치나 기록을 좋아하지만 모든 것이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2004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약 6720억 달러, 재정적자는 약 4130억 달러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적자 신기록의 경신은 몇 년 연속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면 위안화의 절상을 바라는 논리도 이해할 만하다,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하므로 위안화가 평가절상되고 달러화가 평가절하되면 당연히 수지적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실제로 미국정부도 때때로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해서 달러화는 최근 상당히 가치가 떨어진 현실이다. 하지만 위안화의 약세가 미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무척이나 순진하거나 아니면 무책임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보도된 HSBC 은행의 수석경제학자 킹의 연구는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관한 오해들을 지적한다. 우선 무역량에 기초하여 무역상대국 통화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한 위안화의 가치는 90년대 중반에 비해 오히려 상승되어 위안화가 그렇게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닌 상태이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전체 적자의 20%가 넘지만 중국과의 무역이 미국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위안화의 절상이 전반적인 달러의 약화에 미칠 영향은 그리 크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사실 중국은 미국과는 흑자를 내고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와는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다. 중국의 수출이 증가할수록 그를 위한 수입이 증가하여 동아시아의 호황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인데, 중국의 수출품에서 차지하는 수입품의 비중이 클수록 위안화 절상의 효과는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엄청난 규모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며 달러화를 떠받치는 것을 볼 때 위안화가 절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중국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자본의 투자로 인해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급증하고 있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결국 위안화의 절상이나 환율압력으로는 미국의 심각한 적자문제가 해결되기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일본과 2000년대의 중국**

이러한 현실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의 상품들이 온 미국을 휩쓸고 분노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동자들이 도요타나 혼다의 차를 부수기도 했을 때, 미국 관료들은 일본 정부에 일본 업체들의 자발적 수출제한을 요구하는 것과 함께 엄청난 환율공세를 편 바 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미국 자본주의의 교리는 국제관계에서는 립서비스일 뿐이었고 실제로 1985년 이른바 플라자 합의와 함께 엔화의 가치는 몇 년 동안 수십 퍼센트나 폭등하였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불침항모였고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별반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환율하락으로 인한 가격상승 압력에 현지 생산이나 품질혁신 등으로 대응했으며 수출이나 수입이 가격에 반응하는 정도, 즉 가격탄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정작 일본경제가 90년대 내내 위기를 겪었던 것도 엔화 상승으로 인한 무역수지 문제와는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적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국내적 금융시스템의 변화로 인한 비생산적 부문에 대한 대출급증과 함께,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환율인하 압력에 대응하여 나타난 너무 확장적인 통화정책의 지속 그리고 그로 인한 버블과 붕괴였던 것이다.

어떻든 최근 한국의 예에도 볼 수 있듯이 환율하락이 꼭 수출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중국에 대한 압력은 경제적인 효과보다는 오히려 그 옛날 일본에게 그랬듯이 이번에는 중국 때리기(bashing China)라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만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인의 병**

다시 미국경제라는 거인의 건강상태를 들여다보자. 사상 최고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으로 언제나 떠받쳐지고 있다. 실은 이러한 미국으로의 외국자본 투자의 증대가 90년대 후반 신경제에 불을 붙인 주식시장 대호황에도 한몫을 하지 않았던가. 무역수지가 심각하게 적자라는 것은 미국인들이 자신이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출을 하고 정부도 세금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함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인들의 가처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이제 거의 제로에 가까운 실정이며 이러한 민간부문의 지출 확대가 90년대 후반 신경제의 기반으로 당시 재정흑자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무역수지의 적자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가처분소득에서 지출을 뺀 민간부문의 수지적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 이후 재정적자의 심화로 무역수지는 더욱 악화되어 80년대 초 쌍둥이 적자 시대와 쌍둥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은 흥청망청 지출하는 것이 몸에 배어 빚에 짓눌린 미국경제의 거시적 불균형이 지속불가능 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예를 들어 캠브리지 대학의 고들리 등 거시경제학자들은 부채와 재정적자의 증대, 해외자본에의 의존 등 미국 경제의 취약한 경제적 기반에 우려를 표명한다. 물론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특권과 전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최강대국으로서의 압도적인 지위로 인해 통화가치의 폭락이나 금융위기의 가능성은 낮은 현실이다.

그러나 심화되어만 가는 미국의 수지적자는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이를 지탱해주는 특수한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며 중국에 대한 압박이나 환율전쟁을 통해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전쟁과 감세로 적자를 더욱 심화시킨 부시 대통령이 걱정해야 할 것은 허울 좋은 세계평화가 아니라 정작 그 자신의 경제적 허약함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부시 정부의 정책을 가난한 자의 돈을 빼앗아서 부자에게 나눠주는 두니보르(dooh nibor: 로빈후드 robin hood를 거꾸로 한 것) 경제학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크루그만의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제적 협력과 미국의 선택**

물론 위안화의 가치는 보다 유연하게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다른 나라에 대한 심각한 수지 불균형도 어떻게든 교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중국의 초고속 성장은 다른 국가들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중국으로 인한 동남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는 이미 97년 경제위기의 한 요인이었으며 과열된 중국경제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다면 전세계에 엄청난 쇼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도 세계경제에서의 책임과 국내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을 인식하고 환율을 포함한 경제관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환율정책과 관련해서는 통화바스켓 제도 등 동아시아의 지역적 통화협력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역시 미국이 자국 내부의 문제는 간과한 채 중국에 대한 환율압력에만 매달리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오히려 중국의 환율정책은 대외적 압력보다는 미국의 달러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어 달러를 덜 선호하게 될 때 스스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은 전망한다. 그리고 미국의 수지적자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87년 루브르 합의에서처럼 미국은 지출을 억제하고 다른 나라들이 확장정책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미국 정부도 이제 약한 달러 정책을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관측도 제시된다. G7 회담에서 중국 측이 환율개혁 의지를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안화가 저평가되었다는 사실을 반박한 데 대해서 미국의 입장도 부드러워졌다고 보도된다. 존 스노 재무장관은 중국의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조용한 외교를 지지했으며 G7 회담에 참석했던 존 테일러 재무차관 역시 회담 전의 강경한 입장과는 달리 회담 직후에는 중국 측의 자세에 대해서 호의적인 코멘트를 날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환율 조정으로 적자가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국내지출의 억제와 저축 증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현재는 달러 약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며 미국 국채를 매집하는 것이 금리의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일단 시장에서 달러화가 급속히 하락하면 해외투자자들이 마침내 등을 돌려 투자자금을 회수하여 미국경제가 급속히 신뢰를 잃어갈 위험도 존재하므로 달러 급락을 마냥 부추기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최근 등장한 유로와 향후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협력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조차 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요동치는 국제금융시장은 미국조차도 관리하기 벅차며 워싱턴도 자본유출과 달러폭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80년대의 경험을 되돌아 볼 때 달러 약세는 적어도 다른 국가들이 환율안정을 위해 미국의 긴축과 동시에 자국의 내수부양에 합의하는 협조에 이를 때까지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국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적자를 외자로 메꾸는 쉽지만 불안한 길 대신 흥청망청 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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