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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분노가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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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분노가 능사는 아니다"

우수근의 아시아워치 <22> 중국 '의원 기자회견' 무산 사태를 보고

중국 정부의 한나라당 의원단 기자회견 저지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이 아전인수격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필자에게 있어 이 문제는 결국 일부 우리 정치인들 행태의 후진성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중국 정부의 과도한 대응방법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국 실정법을 위반하였다 해도 좀더 부드러운 대처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이‘대국’이라는 의식하에 행동하려 하고, 또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초강경 대응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측의 반응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를 곰곰 분석해 보자.

먼저 이번 사안은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민감한 것이었다. 탈북자 문제(인권문제와 연관하여)는 중국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존속과도 직결될 수 있는 <국가의 중대위기>에 속한 문제이다. 그런데 인권문제의 경우, 중국은 서방의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그 특유의 ‘당당함’으로 강경 반응을 보여 왔다. 다시 말해 이번에 보인 중국의 거친 행위는 상대가 한국이기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 한국을 무시하고 깔보는 오만함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속 깊은 곳에 내재한 중국에 대한 우리의 ‘불편함’ 등에서 기인한, 우리가 만들어 낸 울분이 아닐까. 실제로 현재의 중국은 한국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급속히 재편되는 동아시아 정세를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다.(필자의 지난 호 칼럼 참조).

둘째, 중국측은 일단 원만한 사태해결을 위해 나름대로의 성의는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법집행은 서방국가들보다 훨씬 과단한 특징을 띤다. 예를 들면 서방세계의 갖은 비난에도 불구, 마약사범에는 사형을, 공공위생에 반하는 범법자에게는 공개처형을, 매춘행위로 적발되면 외국인에게도 그 여권에 “호색한" 이라는 낙인을 찍는 등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중국이 이번의 경우, 사전허가 없이는 불법이라는 사전통지를 하였다 하질 않은가. 사실 법 집행에 있어 사전통지가 흔한 경우는 아니질 않은가. 즉 중국은 그래도 일국의 국회의원이므로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세째, 중국의 <외국기자 및 상주 외국언론 관리조례>의 자의적 해석과 적용의 애매모호함이 문제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악법도 법”이라 하질 않았던가. 하물며 중국은 우리와 많은 것이 너무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이다. 서방사회의 법치주의 요구도 있고 해서 법치주의로 이행 중에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치의 전통이 강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이함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도 아닌 일국의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상대 국가의 실정법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관철하려 하였으니 이를 과연 중국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외교가 비외교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면 외교가 아니라 분쟁이 된다”는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의 지적처럼, 상대방이 수용하기 힘든 것을 주장하며 들어주지 않는다고 강짜부리는 듯 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이는 일선에서 조용하지만 치열한 국익전쟁을 전개하고 있는 우리 외교관들에게도 오히려 해를 가져다 주기만 할 뿐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접한 바 있는 일본과 미국 의원들의 예를 보자.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려 할 경우 우선 외교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국 외교관들과 긴밀히 협의한다.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국의 외교관들에게 자신들의 의도와 행위를 설명하고, 그 추진방법을 협의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뿐 아니라 국익에도 모두 부합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익을 위해 정ㆍ관ㆍ민이 삼위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의원외교’의 실태는 과연 어떠했던가?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도 이번 방중 의원단의 행태가 과연 대한민국의 국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도움은 커녕, 어쩌면 오히려 해당부서의 외교노력에 재 뿌리는 격이 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탈북자 문제는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측면과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들과의 관계 등을 고려, 초당적으로 협력해 대처할 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외교부는 현재 이러한 방향으로 일을 지속시키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서운함을 토로한 외교부 당국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사태의 발단은 바로 우리의 일부 정치인들의 사려깊지 못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것이다.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련부처의 입장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철저히 비외교적이며 자기중심적 행동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차제에 외교행위에 있어 일부 정치인들의 국내외를 막론한 이와 같은 막무가내식 행위는 심각히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한편 이번 사태과 관련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한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좀더 냉철하게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해 '대국답게' 처신하라고 성토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인권을 모독하고 국가 주권을 침해했다”고 울분을 토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행위가 나오게 된 원인과 경위에 대해 냉철하게 자문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결과 만약 우리 측의 잘못이 더 크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정치인들을 더욱 엄히 질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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