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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교과서, 수업 혁신으로 돌파!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 ⑦] 한울중 수업만들기 모임…"국어 교사와 함께 준비하는 과학 수업"

'혁신학교'는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입되던 강의식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생 간 상호협력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등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장과 교사에게 학교 운영 및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 주체의 자발성을 통한 다양화·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 위로부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혁신학교 시행 1년,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강남 학부모가 다른 지역 혁신학교 입학을 위해 줄을 서고, 혁신학교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등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 역시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60여 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또는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은 두 차례에 걸쳐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직접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학부모-교사'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

- 학교 수업시간에 맨유를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
- "1년에 방학이 4번인 학교, 가능합니다"

한울중학교 회의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간 4시경. 과학, 수학, 국어, 사회, 기술, 음악, 영어 등 여러 교과 10여 명의 선생님들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과학 수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박수영(국어): 교과서를 딱 보니까 숨이 막혔어요.
박민경(국어): 좀 재밌게 해. 과학 싫어하지 않게. 이래서 과학이 싫구나. 과학이 너무 어려워. 수학보다 과학이 더 싫어.
남경민(과학): 선생님에게 뭐가 어려워요? 어떤 부분이?
박민경(국어):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 그렇게 정의는 알지만 느낌이 안 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금속! 원소! 금속의 원소? 이게 어려운 거야. 용어 자체가. 원소라는 말을 쓰지 말고 해야 되겠어.
박수영(국어): 네. 그런데 저걸 막 보면서 시험 볼 거 생각하니까 숨이 탁 막혀요. (하하하)
박민경(국어): 그러니까 우리 같으면 그냥 외우는 거야. 외우다 보니까 재미가 없고.

왜 과학 수업을 국어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준비하고 있을까?

수업만들기 모임

우리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30분에 수업만들기 모임이 열린다. 여러 교과로 구성된 10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서 2~3시간씩 수업에 대해 논의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전체공개수업 준비뿐만 아니라 각자의 일상수업에 대한 것들까지 함께 준비를 계획하고 진행과정에 대한 조언을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수업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찾고 있다.

수업 이야기 나눔

이 모임에서는 한 주 동안 진행한 자기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배운다.

홍영수(과학) : 3학년은 강의식 수업을 하니까 자는 애들이 많았어요. 고민스러워서 모둠별 활동을 해봤어요. 아이들이 할 때까지 자연스럽게 기다려 주었지요. 그랬더니 자는 애들은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 설명하면 또 자요.
이서은(수학) : 저는 토론할 가치가 있는 상황에서 세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첫 번째는 산발적으로 애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정리를 잘 못 해요. 두 번째는 애들이 논리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할 때 저만 어렴풋이 짐작해서 이해하고 애들은 이해를 못 해서, 아이의 좋은 아이디어가 소통되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는 거예요. 세 번째는 정말 제가 이해를 못 하는 말을 할 때예요. 오늘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아이의 답이 맞았는데 순간적으로 판단이 어려워서 토론으로 진행을 못 했어요.
전경미(과학) : 오늘 수업 중에 동영상을 볼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 후 활동지 할 때에는 학원 다닌 애들은 원소표랑 비교도 안 해보고 선행 학습한 내용으로 그냥 했어요. 수업에서 의도한 것을 하지 않고 자기 아는 대로만 하는 거예요.
백하성(영어) : 오히려 2-2에서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대화를 읽고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어로 써보라고 했는데 한 문제에 대한 답을 서너 명이 발표했는데, 같은 내용인데도 문장 구조가 너무 다른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이 정도로 아이들이 문장을 만드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다 받아 쓰고 애들한테 "이 문장들이 다 옳은 문장인지, 아니면 뭔가 아쉬운 문장인지 이야기해 보자"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의견이 막 나오는 거예요. 다 또 썼어요. 노란색 분필로 막…….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옳은 문장을 찾는 활동을 생각보다 길게 한 거예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는데,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아이들이 더 많이 참여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이거는 이래서 틀렸고, 그다음에는 뭐가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저쪽에서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러면서 막 또 이야기하고, 그런 의견 교환의 과정과 그런 시간 굉장히 아주 진짜 그 시간은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수업을 돌아보기도 하고, 모범 사례는 배우기도 하고, 안 풀리던 나의 고민과 같은 지점을 발견하고는 해결 방법에 대해서 이어서 논의하기도 한다.

전체공개수업 준비

작년부터 매월 1회씩 진행하고 있는 전체공개수업을 하는데, 이때에는 전체 교사들이 수업을 참관하고 10분 쉬었다가 다시 1시간 이상 참관한 수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또한 전문 컨설턴터로부터 컨설팅을 듣는다. 이 공개수업을 수업 만들기 모임에서 함께 준비하는데 사실상 이것이 우리 학교가 수업 혁신을 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전체공개수업 교사는 공개일 1~2주 전에 정해진다. 공개수업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들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다 보니 미리 정하지 못해 왔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13번을 했는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우리의 수업 혁신을 지켜내려는 여러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다.

공개수업 교사가 정해지면 수업 만들기 모임에서 의견을 나눈다. 서두에 기술한 것과 같이 그 수업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활동지까지 함께 만든다. 요즘에는 공개 차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개 차시의 앞과 뒤를 포함하는 단원 전체를 함께 만드는 경우도 있다. 토론은 하루에 마무리되지 않는데, 그러면 다른 요일에도 계속 만나서 논의한다. 이렇게 활동지가 만들어지면 다른 학급에서 미리 수업을 해 보는데, 이때에는 모임 선생님들이 들어가서 참관을 한다. 참관 후에는 또 만나서 활동지가 아이들에게 맞도록 잘 구성되었는지, 수업 진행은 학생들의 배움 중심으로 잘 디자인되었는지 등을 논의하며 수정한다. 이렇게 10여 일을 정신없이 지내고 공개 수업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일상의 수업을 다 함께 만들고 준비하고 공개하는 과정에서 수업교사와 참관교사가 같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막상 공개수업에서는 수업 교사는 수업 공개가 자연스러워지며 여러 번 검토를 거친 수업이므로 수업을 부담 없이 자신 있게 해 나간다.

이렇게 수업을 함께 만들면서 참관하는 것은 우리의 수업을 바꾸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 수업 참관 시에는 특정 활동을 계획할 때의 의도가 학생들에게 잘 들어맞는지를 보게 되는데, 마치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과학자의 마음처럼 궁금하고 설레기도 한다. 이런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은 수업 교사나 참관 교사가 같다.

그리고 이렇게 전체공개수업을 함께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은 서로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모여서 수업을 만드는 것이 같은 교과 선생님들끼리만 모여서 만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과학 수업을 만들 때 국어 교사는 과학 교사보다 교실 속 학생들의 입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 내용이 어렵다거나 재미없다는 등 다른 교과 선생님을 통해서 나오는 의견을 어떤 식으로든 수업에 알맞게 반영하여 보다 아이들의 입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일상의 수업으로부터 배우기

2년 차인 올해를 시작하면서 수업을 함께 만들고 참관하고 배우는 전체공개수업에서의 경험을 일상의 수업으로까지 확대해 보자는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한 사람이 미친 척하고 수업에 들어와서 보라고 하고, 또 다른 수업을 보러 들어가자"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우리가 미적지근하게 학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새로 오신 한 선생님이 논문을 써야 한다면서 수업에 들어가서 봐도 되느냐고 물으시고는 저돌적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참관한 내용과 배운 점을 수업 만들기 모임에서 소개했다. 3월부터 5월까지 거의 3달 동안을 그러셨다.

이런 일이 있자 다른 선생님들도 고무되어 과목과 상관없이 팀을 짜서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고 의견을 나누는 선생님들이 생겼고, 또 같은 학년,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활동지를 함께 만들고 서로의 수업에 들어가서 참관하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에 더해서 2학년 모임에서는 매월 한 개 학급의 수업을 참관하고 학년모임에서 참관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실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따라서 일상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서로 배우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수업 활동지 만들기이다. 5월 초에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시험 후에 수업할 부분의 활동지를 모임에서 같이 만들었으면 하는 선생님들이 몇 분 있었다. 그래서 수업모임이 아닌 날에도 만나서 국어과 논설문 부분 4차 시 정도를 논의했고, 기술과의 발명 단원 8차 시 정도를 논의하여 함께 만들었고, 수학과의 부등식 단원 5차 시 정도도 논의하여 함께 만들었다. 또한 사회과 고려 말 대외 관계 수업은 2학년 학급 관찰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수업모임에서 활동지를 함께 만들어서 수업하고 참관하기도 했다.

이제는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는 수업모임을 하는 같은 교과 또는 다른 교과 선생님들과 함께 수업모임 이외의 날에라도 만나서 수업을 만드는 일도 또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같은 교과 선생님들끼리만 만나서 활동지를 만들 때에는 다른 교과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셔서 의견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업 혁신의 확산을 위한 노력

전체공개수업을 제외한 수업 혁신을 위한 노력들은 수업 만들기 모임 선생님들 중에서도 약 10여 명의 선생님들 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이런 수업 문화가 학교 전체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일을 더 진행했다.

하나는 4월부터 수업만들기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그곳에 수시로 수업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소통하기로 했다. 그 사이트에 수업 일기도, 도움을 요청하는 활동지 초안도, 수업 참관 후 피드백에 해당하는 글도 써 올렸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사이트는 전체 선생님들께 공개하였다. 다음은 수학 선생님의 부등식 단원 수업 중 "부등식 상황 만들어 오기" 숙제에 대한 수업 일기이다.

"그런데 오늘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8반에 들어갔는데, 송태식, 송재우, 윤희준, 오예성 등이 숙제를 해왔다. 이들이 서서 발표를 했고, 그 발표 내용을 내가 적어서 식으로 써보게 되었다.
윤희준이 발표하길 "너무나 멋진 재용이는 하루에 5개씩 여자애들 번호를 딴다. 전화번호부에 110개가 있는데, 200개가 되려면 며칠이 걸리겠는가?"
송태식이 발표하길 "희준이 머리카락은 1년에 5cm씩 자란다. 지금 30cm인데 50cm가 되려면 몇 년 걸리겠는가?"
송재우가 발표하길 "오준이는 ***게임의 ***레벨이 9이다.(오락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하루에 레벨 9씩 올린다면 레벨이 99까지 되려면 며칠 걸리겠는가?"
김소은이 발표하길 "미현이는 숙제로 25문제를 풀려고 한다. 그런데 한 문제 당 30초가 걸린다. 총 걸리는 시간은?"

이것들을 식으로 바꾸어 보았는데, 이때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발표하니, 잘하는 한준우가 그 정도면 나도 3초면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제야 만들려고 했다. 또한 소정이가 답은 낼 수 있는데 식을 못 세우겠다고 하면서 일단 답이라도 내보겠다고 계산을 시도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수업이었다. 8반 수업 분위기가 좋아지는 중...ㅎㅎ"


▲ 5월 수업만들기 회보 ⓒ한울중
또한 두 번째는 <수업만들기 회보>이다. 올 1학기의 시작을 앞두고 지난해의 수업 모임 활동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좋은 내용을 전체 선생님들과 안정적으로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이 생각은 2월 말에 '월 1회 수업 만들기 회보를 제작하여 공유하자'는 방법으로 구체화 되었다.

회보는 현재까지 3월, 4월, 5월호가 제작되어 배포되었다. 그 속에는 전체공개수업을 만드는 과정, 수업 컨설팅 내용, 수업 교사 후기, 학생들 수업 소감, 참관 교사의 소감, 그리고 수업 일기, 수업만들기 모임 논의 내용, 학년 연구모임 결과 등이 실려 있다.

수업 혁신의 길

우리 학교에서는 기존의 교과서 위주의 강의식,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활동하고 협동하고 표현함으로써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업 혁신을 우리 학교 혁신의 첫 번째 목표로 정하였다. 그리고 작년부터 이를 추진해 왔으니, 위에서 소개한 수업 혁신 사례들을 이루어 내는 데, 1년 반이 걸린 것이다. 그것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매우 많은 노력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소개한 수업 혁신 사례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전체 교사로 보면 소수이다. 게다가 이 소수의 분들도 수업 혁신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업이나 학생 생활 지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각종 공문 처리나 행정 업무들이 그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2명의 행정보조원을 두고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을 추진하고 있어서, 과거보다는 한결 수업 준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충분한 실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업 혁신은 즐거운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학습목표를 스스로 궁금해 하며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길이고, 교사로서 우리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길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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