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스펙 먼저'라는 생각, 이젠 바뀌었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스펙 먼저'라는 생각, 이젠 바뀌었어요"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⑥]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숙제"

'혁신학교'는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입되던 강의식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생 간 상호협력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등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장과 교사에게 학교 운영 및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 주체의 자발성을 통한 다양화·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 위로부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혁신학교 시행 1년,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강남 학부모가 다른 지역 혁신학교 입학을 위해 줄을 서고, 혁신학교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등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 역시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60여 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또는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은 두 차례에 걸쳐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직접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학부모-교사'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

- 학교 수업시간에 맨유를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
- "1년에 방학이 4번인 학교, 가능합니다"

저는 북서울 중학교 학부모 김지희입니다. 요즘 혁신학교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많은 분이 학부모 입장에서의 혁신학교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년간 제 아이가 겪은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려 합니다.

"아, 태양이 어머니시군요"

제 아들은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180㎝의 키에 몸무게도 넉넉히 나가는, 체격이 아주 좋은 녀석입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항상 눈에 띄는 신체조건이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장난을 쳐도 늘 선생님께 대표로 혼이 나고, 다른 아이들은 한두 마디 정도 듣고 끝날 일도 좀 과하게 혼나는 일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아 학교를 재미없어하게 되고 엄마인 제 입장에서도 되도록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있다 오라고 당부하면서 학교에 보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도 그냥 성적이나 관리하고 별 탈 없이 조용히 학교에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가 다니던 북서울 중학교가 지난해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혁신학교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솔직히 약간 불안했었습니다.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학생 중심의 협력수업과 모둠수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이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름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공부를 시키며 준비하던 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학교가 하는 일이니 좀 지켜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둠수업을 한다며 아이가 이것저것 과제들을 준비해 가더라고요. 그러다가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하러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만나는 학교 선생님들께서 저에게 먼저 "아, 태양이 어머니시군요"하고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뭔가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에 집에 돌아와 아이의 최근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언제부턴가 표정이 많이 밝아지고 아침에 신이 나서 학교에 가는 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너 요즘 학교 재미있니?" 하고 물었더니, "엄마, 모둠수업을 하면서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어쩐 일인가' 했더니 모둠수업을 하며 모둠(그룹)끼리 서로 도와서 과제를 토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외모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 같았습니다. 부족한 친구는 좀 배려하고 친구들이 귀찮아하는 일들을 나서서 하는 모습이 선생님과 아이들 눈에 보였던 거지요. 친구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알려주기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기쁨을 알게 되니까 공부도 더 꼼꼼히 하게 되고 학교생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게 되었습니다.

▲ 북서울 중학교 수업연구회 모습 ⓒ북서울 중학교

그중 제일 큰 변화는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 누구는 성격이 아주 좋아. 누구는 악기를 잘 다뤄. 누구는 노트 필기를 아주 잘해' 하면서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인 얘기들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혁신학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혁신 수업이라는 게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참 피곤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 중심의 모둠수업을 하다 보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 다 배려해야 하니까 수업진도가 늦어질 때도 있고, 아이들을 다루기도 쉽지 않고,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 바라본 혁신 수업은 선생님께서 아이들 하나하나의 특성과 재능을 파악할 수 있는 아주 긍정적인 수업 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기준으로 학급친구들을 구분하던 아이들이 각자 가진 장점들을 볼 수 있도록 변하고 같은 반 아이들끼리도 서로 관심이 생기며 끈끈한 유대감도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전에는 선생님들께 먼저 잘 다가가질 못했는데 작년에 제가 논술학원을 좀 보내야 하나 싶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 울 담임샘이 국어샘이야"라고 하면서 일 년 내내 독후감을 써서 첨삭지도를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아이가 한문을 싫어했는데 올해는 "엄마, 담임샘이 한문샘이야"라고 하면서 매일 한문 과제를 받아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대로만 계속하면 1년 안에 한자검정능력시험 4급을 딸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 무척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입니다.

선생님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뭔가를 함께한다는 즐거움을 알기 시작하면서 학교가 재미없다던 녀석이 학교를 좋아하게 되고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학교) 조용히 다녀라'라고 했던 아이가 어느새 동아리 리더도 하고 학급회장도 하더니, 올해는 전교 부회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모둠수업을 하면서 친구들 한명 한명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제 아이가 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스펙 먼저'라는 생각이 바뀌었다

혁신학교라고 하는 커다란 과제가 선생님들께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준비와 연구,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거기에 많은 시간투자와 체력까지 필요로 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아이와 같은 변화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혁신학교를 선택해 볼 만한 이유가 되지 아닐까요?

학부모로서 제가 생각하는 혁신학교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바로 소통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일 쉽지만 제일 어려운 것도 바로 소통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육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태는 선행학습과 스펙 갖추기가 우선이 되어 버린 것 같고, 저 역시 그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하던 학부모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제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적으로 뛰어난 인재보다는 리더십과 배려심이 함께 갖춰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경쟁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머릿속에 넣는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더불어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을 누리며 좀 느린 듯싶어도 결국엔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갈 수 있는 '배움 공동체, 혁신학교'. 결국 우리 교육이 가야 할 최선의 선택 아닐까요?

한발 뒤에서 아이 지켜보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문제를 빨리 잘 풀어내고 많이 암기해서 성적이 좋은 사람이 인정받는 각박한 경쟁 사회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각자 가진 재능으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금의 혁신학교가 풀어야 할 숙제도 많습니다. 성적과 인성 두 가지를 모두 지켜내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학업 수준도 떨어지지 않는 인재로 키워내야 하며, 또 학생 스스로의 자율 활동을 허용하는 것과 함께 엇나가지 않고 정도를 지킬 수 있도록 조절 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율하느냐' 하는 것도 앞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입니다.

또 각자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동안 혁신학교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치활동을 하고 다양한 진로체험학습을 경험하는 걸 보면서 그 어떤 교육 방법보다도 아이들 스스로가 변화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혁신학교가 그렇듯이 제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는 한발 뒤에서 아이 스스로 변해가며 자기 꿈을 찾아 가는 것을 지켜보는 현명한 엄마가 될 생각입니다.

학교폭력이니, 자살이니 사건 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저는 요즘 아이가 웃으며 학교 다니는 모습에 정말 더없이 행복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제게는 참 귀한 행복입니다. 제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혁신학교를 선택하고 노력해주신 북서울 중학교 교장 선생님과 혁신 수업을 위해 많은 수고를 감내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마음을 열어주신 담임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도록 키우는 것으로 선생님들의 노고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서툴고 두서없는 이야기라서 제 마음이 여러분께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세상 모든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육의 장이 열리기를 바라며 저는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혁신학교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울 아이는 혁신학교 다녀요"라는 제목으로 서울 혁신학교 블로그 '서울교육 e야기-꿈지락'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