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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북한인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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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가보안법과 북한인권법

한국역사연구회와 함께 하는 '역사시평' <7>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시대정신**

우리 사회의 상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말끝마다 민생과 개혁을 외치지만 입 따로 몸 따로 논다는 것은 어제오늘 겪은 일이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법사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일은 상식적으론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이 민생과 직결된 산적한 법안 심사와 화급한 예산안 의결을 제쳐두고, 국회를 농성장으로 만들 일인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대안을 내놓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풀어야 할 일이 아닌가. 안건 상정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대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면서 그 안건을 정쟁의 수단과 제물로 삼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소동은 올해 들어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전개된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의 대립이 바야흐로 개혁입법의 국회 심의를 앞두고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진보적인 시민ㆍ사회단체들은 진작부터 전면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들은 한반도 분단을 통해 탄생했고, 분단 상태의 지속을 전제로 한 그 법안의 정신이 6.15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점, 그 법안이 인권과 학문ㆍ사상의 자유를 침해해 왔으며, 역대 독재정권이 민주세력과 통일세력을 탄압하는 정치적 도구로 악용해 왔다는 점, 법률적 적용의 측면에서 자의성이 지나치게 심했던 점 등을 폐지 이유로 들고 있다.

국보법은 우리 사회에 여러 모로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폐해를 남겼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법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해왔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상과 학문이 국보법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순간 빨강 색과 그렇지 않은 색으로 구분되었고, 그 빨강의 광역대(光域帶)는 지나치게 넓어서 때로는 막걸리 색도 빨강 색이 되었다. 거기다 그 프리즘은 대단히 폭력적이라 빨강 색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색을 고춧가루와 물을 부어 적당히 빨강 색으로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국보법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한 연구자들은 프리즘을 통과해서 영롱하게 빛나는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을 모두 볼 수 없었고, 그럴 자유마저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국가보안법은 현실에서는 이미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국제인권단체나 심지어 유엔까지 폐지를 권고하는 법안이다. 올해 들어 국보법 폐지 문제가 부각된 것은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이 법이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를 위해 기능해왔고, 우리 사회의 발전에 질곡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법이 있어야만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을 수 없을 정도로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과 북의 경제력의 현격한 격차, 민주화의 진전과 국민들의 민주의식의 성숙,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해진 문화와 의식,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한 염원 등은 우리 사회가 국보법으로 상징되는 분단시대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징표이다.

***북한인권법의 정치적 의도**

남한 사회가 국보법의 인권침해 요소를 들어 국제사회로부터 그 법의 폐지를 권유받는 동안 미국은 2004년 가을 상ㆍ하 양원에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이 법은 2006 회계연도(2005. 7~2006. 6)부터 발효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천4백만 달러를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법안은 북한의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증진 프로그램을 육성하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에 해마다 2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대북 라디오 방송을 하루 12시간으로 늘이는 등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전파 촉진을 위해 매년 2백만 달러를 지출하며, 북한 이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단체 및 개인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2천만 달러를 지출할 것을 승인했다. 이 법은 북한 주민 인권보호,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북한 난민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그 핵심은 사실상의 탈북 유도ㆍ지원이다. 이 법에 따라 지출할 수 있는 매년 2400만 달러의 예산 가운데 2천만 달러가 여기에 할당된다.

한나라당은 이 법안에 호응해서 한국판 북한인권법으로 불리는 ‘탈북자ㆍ납북자 인권보장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적인 시민ㆍ사회단체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인권을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북한의 체제 변화 또는 붕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그 법의 제정 자체를 반대해왔다. 이 법안을 주도한 미국의 네오콘을 위주로 한 대북 강경파들은 이 법이 북한 붕괴 촉진용이고, 일방적이고 적대적인 선전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한 단체들은 북한인권대사로 유력시되고 있는 수잔 솔티가 관여하는 디펜스포럼, 허드슨연구소, 보수적 종교ㆍ인권단체들이 참여하는 북한자유연합, 보수적인 재미동포 기독교 단체들이다. 이들은 이미 2003년부터 ‘북한자유법’ 등 북한인권법의 전신이라고 할 만한 법안들을 의회에 상정해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미국 내 대표적인 네오콘 학자의 한 사람인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호로위츠는 미국이 제정한 북한인권법의 초안 작성을 주도했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를 주장하는 대표적 대북 강경파이면서 네오콘의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학자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김정일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며, 현재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다’라고 비난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인권법이 대북압박용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임을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두 개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는 6자회담의 형식을 취하는 대화 통로이고, 다른 하나는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체계적인 대북 인권공세를 통해 대북 군사행동의 명분을 쌓을 수도 있고, 북 내부의 붕괴를 노리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문제를 중심으로 한 북미협상에 인권이라는 인위적인 장애물이 추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남한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미국 네오콘들의 비판에 나타나듯이 남한도 이 법안의 구속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은 보여주고 있지만 북한인권법의 발효와 함께 개시될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선전활동은 남북의 화해협력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

얼마전 한 미국인과 북한에서 나온 경제이향민(탈북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다. 필자는 한국에 나와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미국인들이 수만 명에 달하는데 중국이 그들을 ‘탈미자’로 규정하고, 중국에 데려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일본 도쿄에는 유흥업소나 음식점 등에서 많은 한국 여성들이 여급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일본 당국으로부터 취업비자를 받고 합법적으로 일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불법으로 체류하며 일하는 여성들이 다수 있다고 한다. 만약 북한이 이들 불법체류자들을 북한으로 ‘기획입북’ 시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을 못했다. 탈북자들이건, 탈미자들이건, 탈남자들이건 그들은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북한인권법과 같은 법안들이 그들에게 적용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이 속했던 사회로부터 아마 ‘정치범’으로 취급받을 것이고, 그들의 ‘이향’(離鄕)은 영영 ‘이산’(離散)이 되고 말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인권의 이름으로 북한 출신 경제이향민들을 정치범으로 만드는 법이다. 만약 국제사회가 북한의 기아와 인권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이향민들을 유도하고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대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를 풀도록 권유하고, 관련국들이 상호 협력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북한인권법의 역사성**

한반도 주민들은 외부에서 주어진 이념과 기준에 의해 자신의 삶조차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질곡의 세월을 한 세기 이상 살고 있다. 올해 여름 MBC에서 방영한 '한국전쟁과 포로들'이라는 프로그램은 포로 출신 이향민들의 증언을 다수 보여주었다. 증언자들에 의하면 자동송환(강제송환)이 아니라 자원송환이라는 포로송환 원칙이 적용되는 순간 그들은 생존을 위해 ‘반공투사’나 ‘해방전사’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들에게 남과 북을 동시에 거부하고 제3국행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졌지만 남과 북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포로들 가운데 다수는 이념과 관계없이 농사꾼의 자식으로서 전쟁터로 불려 나왔겠지만 그들은 그러한 결정에 저항하거나 선택지를 스스로 제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산을 강요받았다. 북한인권법 통과 소식을 접하는 순간 머리를 스친 것은 그들의 한 맺힌 증언이었다. 그때나 이제나 일시적 이향을 영원한 이산으로 만드는 법이 과연 인도주의적일 수 있을까.

2004년 후반엔 남과 북이 모두 인권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국가보안법이 분단의 산물이었다면, 2004년 남녘의 국보법 폐지 요구는 불행했던 20세기 후반기 남과 북의 대결과 투쟁 상태를 종식시키고, 민족의 다른 한쪽인 북녘을 공존공영 해야 할 동족으로 품기 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개선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 내 대북강경파의 목소리가 반영된 북한붕괴 촉진방안이고, 그것은 남한의 대북포용정책도 부정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중관계에 긴장과 갈등의 소지를 조성하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더니, 중국은 한반도 유사시에 한반도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법적 근거를 가진 세 주체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다룬 국제적인 법적 장치의 하나로 휴전협정이 있는데, 중국은 북한, 유엔을 대표한 미국과 함께 휴전협정의 조인당사자였다. 중국은 19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갑자기 한반도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만 그 동안 그 사실에 눈길을 주지 못했을 뿐이지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사태의 주요한 상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관련된 단체들의 활동무대가 되고 있고, 중국 당국은 그 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나 남한이나 한때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쳤지만 미국은 1960년대 이후 인종차별 철폐운동, 민권운동의 고양 속에서 그것을 극복해갔다. 한국에서도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이 메카시즘을 극복하는 동력이 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색깔론’이 횡행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최근 들어 오히려 강화되는 외세의 제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그 목표를 온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 민족문제의 해결을 동시에 도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004년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 희망과 새로운 과제를 동시에 던져준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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