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매카시 광풍'과 한국의 '종북 주사파 사냥'에서 나타난 언론의 행태를 보면, 한국의 보수 언론이 얼마나 몰상식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미국에서는 언론들이 앞 다퉈 한 상원의원의 '빨갱이 사냥' 발언을 확대 보도했다. 어디까지나 수동적 위치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보수 언론이 '종북 주사파 사냥'을 주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를 '종북 주사파'로 몰아붙이고 이에 뒤질세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여당이 따라오고 대통령까지 공식 라디오 연설에서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라며 거들고 나섰다. 보수 언론이 선두에서 부르짖자 너도나도 따라나서는 모양새다.
잘 알려졌다시피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는 지난 4.11총선을 앞두고 치러진 당내 비례대표 경선과정의 부정논란에서 비롯됐다. 진보세력의 해묵은 논란인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노선싸움에서 불거진 것이기도 하다. 비례대표 선정을 둘러싼 논란은 어느 정당에서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도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났다. 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혐의로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만큼 편법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지적도 받아왔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 통합진보당 김재연, 이석기 의원 ⓒ연합 |
출발은 통합진보당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비례대표 후보 경선과정의 부실·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가 한 달여 이어지면서 이제는 '종북 주사파' 척결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보수언론들이 사안마다 이념적 색채를 덧씌워 통합진보당을 '종북주의 당'으로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 반대한다'고 결코 말 않는 이석기", "종북 좌파는 진보 아니다", "종북 성향 의원들, 극비 외교전략·전시작전계획 다 본다", "민혁당 사건 판결문 '이, 김일성 생일축하 유인물 배포'" 등의 기사는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진보'는 순식간에 '종북 주사파'나 '빨갱이'로 둔갑해버렸다.
보수 언론들은 구당권파의 과거 전력을 들춰내며 빨간색 덧씌우기에 여념이 없다. 아예 빨갱이로 단정 짓는다.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에서 '매카시 광풍'을 불러일으켰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처럼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과거에 국가보안업 위반 전력이 있었던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여권 인사들과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김정일-김정은 'X새끼냐'란 질문에 'X새끼'라고 하면 종북세력이 아니고, 대답을 못하고 피한다면 종북세력"이라는 전원책 변호사의 이분법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뿐이다.
보수 언론들의 '종북 주사파 사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연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예비후보들까지 끌어들였다. <동아일보>의 "'대한민국에 빨갱이는 없다'던 안철수의 긴 침묵"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전임 노무현 정부까지 끌어들인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이석기 당선자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게 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 그의 국가보안법 전과를 특별사면해줬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 민주통합당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은 "민주당은 주사파 세력이 자신들이 깔아준 양탄자를 밟고 국회에 진출해 신변 보장을 받으며 대한민국 체제 전복 활동을 벌이게 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보수 언론의 이러한 색깔공세는 <한겨레> 지적대로 '보수 재집권 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은 당권파로 불리는 정치적 분파의 패권주의와 당내 선거에서 드러난 이들의 비민주적 행태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과거 민족해방 성향의 운동권 출신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인다거나, 이들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보수언론이 특정 정치인의 과거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이유이다.
보수 언론이 색깔론으로 치고 나서자 드디어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보수 단체의 고발에 따라 업무방해와 폭력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통합진보당의 '심장'이랄 수 있는 20여만 명의 당원 명부를 압수해간 것이다. 검찰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대로 "정치 지형을 보수 우파의 독점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포괄되는 사람들의 사상과 정치적 신조, 나아가 정치적 친교관계까지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부 보수언론은 당원명부를 '간첩명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검찰에 이어 새누리당이 나섰다. 새누리당은 '색깔론'을 앞세워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주역인 이석기·김재연의 국회 입성을 저지하려 했다. 국회 상임위는 국가기밀을 다루는 만큼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법을 개정해서라도 외통위나 국방위 정보위 등 국가기밀을 다루는 상임위에는 교섭단체가 아닌 정당 소속 의원은 위원으로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흡사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박근혜의 '사당'(私黨)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이 '유신공주'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의도는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이 19대 국회 개원일인 지난 30일 일제히 보여준 논조에서도 재확인된다. 이들 신문은 "종북·주사파 국회의원이 탄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은 "'종북 보좌관' 50명이 채용돼 국회로 들어갈 우려가 있다"고 개탄했다. <중앙>과 <동아>도 "국회의원은 정부의 모든 부처를 상대로 자료를 요구할 수 있어 국가 안보와 관련한 정보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보수신문들에게는 "이들이 국가 기밀을 빼내서 북한에 전달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회 간첩단 사건'이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새누리당은 더 나아가 이들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들고 나왔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출당을 시킨다고 그 사람들이 국회의원직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속한 해결 방법은 제명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법에는 이들을 제명시킬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새누리당이 뻔한 정치 공세를 되풀이하려는 속셈은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수 언론의 색깔 공세에 맞춰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종북 주사파' 의원으로 낙인찍어 '안보 상업주의'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인 1986년의 '국시론' 파동과 닮아 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유성환 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아 의원직을 제명한 사건이다. 여당인 민정당은 "유 의원의 발언이 우리의 국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반국가단체의 노선과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사전에 보도진에 배부했다는 이유로 그를 구속하게 했다. 유 의원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대법원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는 '가카'가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 세력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의 색깔 공세에 대통령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그동안 측근 비리나 언론사 파업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 대통령이 뜬금없이 '종북 주사파 사냥'을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실정과 비리를 덮고 색깔론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것은 대통령답지 않은 얘기"라는 민주통합당의 반격을 자초했다. 민주당은 "검찰이 대통령의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공안정국으로 몰아간다면 민주통합당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종북 주사파 사냥'은 60년 전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빨갱이 사냥'을 연상시킨다. 이른바 '매카시 광풍'이다. '매카시 광풍'은 미국 지성사에서 씻지 못할 치욕으로 남아 있다. 미국 지식인들은 지금도 이를 떠올리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1954년 6월 9일 청문회에 나선 조셉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 ⓒ네이버 자료사진 |
1946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조셉 매카시(Josep Raymond McCarthy)는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선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여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경력위조, 명예훼손, 금품수수, 음주추태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던 매카시의 충격요법이었다. 당시 언론은 아무런 검증 없이 매카시의 발언을 옮기는 데 급급했다. 자칫하면 자신도 '빨갱이'로 몰려 숙청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게 작용했다. 신문사는 엄청나게 팔려나가는 신문 덕분에 돈방석에 앉았다.
사건이 크게 부각되자 상원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매카시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무책임한 폭로를 멈추지 않았다. 신문들도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1면 헤드라인으로 선정적 제목을 뽑아 '빨갱이 사냥'에 앞장섰다.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매카시는 미국을 구할 구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했다. 수만 명의 무고한 미국인이 고발당하여 조사당하고 심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력을 망쳤으며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소된 인사들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카시 광풍'은 미국 공화당이 민주당의 장기 집권에 대항할 무기로 악용한 것이다. 1952년 공화당이 오랜 민주당 정권을 뒤집고 집권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집권에 성공하면서 매카시가 점점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양심 선언을 통해 "독재자의 방법으로 자유를 지켜서는 안된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국가 안보보다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매카시 광풍'이 한 명의 국회의원이 주도하고 언론이 편승하여 여론을 확산시킨 반면, 우리의 '종북 주사파 사냥'은 보수 언론이 의제설정을 주도하고 여당과 정부, 대통령까지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국민 의식을 감싸고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안보 상업주의'를 악용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 언론이 권력화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보수 언론의 여론 지배력이 대통령의 권력보다 강한 것일까. 아니면 '권언동맹'을 구축한 보수 세력의 역할 분담이 교묘하게 이뤄져 보수 재집권을 통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총집결하고 있는 양상이라고나 할까.
4년여 동안 미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매카시 광풍'은 미국의 전설적 언론인에 의해 사라져갔다. 미국 CBS TV 앵커였던 에드워드 R 머로는 <시 잇 나우(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여론은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이를 통해 사상의 자유를 반공주의로 억압하는 매카시즘의 공포로 인해 억눌려 있던 미국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매카시는 머로가 공산당에 가입했었다고 주장하며 역전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이러한 참 언론인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까 방송사 연쇄 파업이 벌써 5달째로 들어섰다. '참 언론'을 꿈꾸는 기자들은 파업 현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겠구나.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연합한 '보수동맹'은 언론 파업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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