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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 <도가니>를 되풀이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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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 <도가니>를 되풀이 할 텐가?

[남재희 칼럼]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레 품위 있게 다뤄야

50여 년 전 제2공화국 때 이야기다. 당시 국회(민의원•참의원 양원제) 민의원에는 그때는 진보정당이 아니고 혁신정당이라고 호칭했던 통일사회당의 의원이 5명쯤 있었다. P 의원(당시는 비례대표가 없었다)은 국방위에 소속해 있었는데, 군 출신인 신민당(집권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야당) K 의원으로부터 통사당 의원은 '위험인물(security-risk)'이므로 국방위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괴롭힘을 당했다.

흰 토끼를 붉은 토끼라고 몰아 포수가 쫓고 있으니 흰 토끼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P 의원은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민의원 본회의, 국방위의 속기록이나 그때의 언론에 아마 남아 있을 것이다. P 의원은 그 후 한때 김영삼 지지 보수파로 움직였고 지금은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정당은 통사당(서상일), 혁신당(장건상), 사대당(김달호), 사회당(최근우) 등 몇 개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혁신진영의 통일운동체는 민족자주통일연맹(민자통) 하나로 뭉쳐 있었다. 매우 역동적인 조직이었다. 거기에도 통합진보당에서의 경기동부연합을 둘러싼 것과 비슷한 분파 간의 대립이 심했다. 결국 '남북협상파'와 '중립화파'로 분열, 통사당측은 민자통에서 탈퇴하여 중립화통일연맹을 만들게 된다. 그때 서로 간의 논쟁은 독기가 서려 남북협상파에 대해 "김일성 장군 서울 입경 환영대회를 하겠다는 것이냐"(고정훈 통사당 선전국장)라는 극언까지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북이 남보다 경제가 훨씬 앞섰었다.)

곧 이어 5.16 쿠데타가 일어나 양쪽 모두들 옥고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남북협상파였던 사회당에서는 사형수가 한 명 나오기까지 하였다(당수는 옥중 사망). 혁신계라고 사형된 민족일보 사장은 몇 년 전 대법원 판결로 억울함이 신원되어 보상까지 받았는데, 사회당 사형수의 경우는 뒤에 아무런 속보가 없다.

▲ 지난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폭행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데자부(déjà-vu)라는 표현을 문화계에서 자주 쓰는데 그 데자부 같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번역.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연합측 국회의원 비례당선자 가운데 경선에 부정이 있는 사람은 사퇴해야 한다는 당내의 주장이 있고, 그 다음 그것이 확산되어 타당에서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여론화도 되고 있다. 또한 보도를 보면 그런 의원들은 위험인물들인데 중요한 국가기밀을 다루는 국방위나 외무통일위에 둘 수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도 더러 나온다.

그리고 지난날 민자통이 노선대립으로 분열되었듯이 통합진보당에 비상대책위가 두 개가 생겨나 분당까지 갈 낌새를 보이고 있다. 데자부. 설마하니 수난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겠지.

경기동부연합의 '종북'이 북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다만 그들 스스로의 민족자주노선에 따른 생각인지는 일반국민으로는 잘 모를 일이다. 제2공화국 때도 그랬다. 북한과의 연결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국법 위반이고, 그 점을 밝혀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정부수사당국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수사당국이 밝혀내어 발표하기 전까지 일반국민은 판단을 일단 보류할 수밖에 없다.

다만 어쨌건 그들의 노선이 과오임은 분명하다. 나도 그들의 노선이 잘못되었다고 거듭 지적해 왔다. 민족자주의 주장이 한마디로 순진하다, 나이브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볼 때 '1990년 이전'적이라 할 것이다. (전에 <진보정치>에 나왔던 그쪽 진영 필자의 글로 볼 때 그렇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깨우쳐 노선을 전환하는 것이다. 한편 그러한 급진사상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 민주정치가 그만큼 폭이 넓고 자신이 있으며 안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제까지의 진보운동은 그런 끊임없는 자기수정의 과정을 거쳐왔다. 그리고 요즘은 대체로 흔히 말하는 유럽모델이라고 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이론으로 귀결되어 왔다. 분단한국에서는 얼마간 다름이 있겠지만 말이다.

경기동부연합 문제는 솔직히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아직도 모르는 부분, 궁금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언론에서의 '여론재판'이 아니라 사직당국에 의한 분명한 판단이 빨리 있었으면 한다.

말하는 데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사실 그 문제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도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 같다. 이념의 문제, 정신세계의 문제는 고도로 세밀한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검찰이 정당내부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주의와 자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정당은 생동하는 생명체와 같다. 정당이 내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그들의 정치력이며 생명력이다. 거기에 메스를 잘못 들이대면 그 생명체에 큰 상처,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고, 그 결과는 민주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사법권행사를 빙자하여 야당의 김영삼 당권을 빼앗아 정운갑 당권을 만들려 한 경우였다.

물론 정당이라고 치외법권의 영역은 아니다. 위법사태가 현존하고도 위험한 상태일 때, 또는 그 정당의 공식요청이 있을 때는 개입이 있을 수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민주통합당측에서도 그런 지적을 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 소동을 벌여야 할 만한 일이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새누리당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원의 축출 운운은 '아연실색' 그대로의 어이없는 망언이다. 아직 '여론재판'일뿐 사직당국에 의한 조사발표도 안 나왔다. 더구나 사법부의 판결은 그 후의 일로 아직 멀었다. 어떤 최종 심판이 내릴지 아직 모른다. 지금 성급하게 축출운운을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마녀사냥'이다.

공지영 소설가의 <도가니>가 영화화도 되는 등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는데, 17세기말 영국 식민지시절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Salem)에서 있은 '마녀재판'을 다룬,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아더 밀러의 희곡 <도가니(The Crucible)>도 그때 마침 미국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히스테리칼하게 불던 때라 그것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어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세일럼의 마녀사냥은 유명하지만 교수형은 16명.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뒤에 가서 뉘우쳤다는 것이 더욱 역사에 남게 했다. 거기에 비해 유럽에서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워 수천 명이 화형(火刑)당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50년 전보다 민주정치에 커다란 진전을 이룩했다.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그 민주정치의 바로미터일 것이다. 현명하게 성숙한 자세로 다루느냐, 즉흥적으로 히스테리칼하게 반응하느냐는 대응의 차이이다.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는데, 정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감출 수도 없는 일이며, 뚜렷하게 모든 증거가 남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서둘게 없다. 정말 매카시즘과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세일럼의 '마녀재판'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냉정하고, 침착하고, 성숙한 민주정치의 국민답게, 선진된 사법국가의 시민답게 처신하여야겠다. 누군가가 <도가니(The Crucible)>를 다시 쓰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지금의 검찰 수사는 부정투표 문제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당내 폭력도 다루어진다. 당원명부가 압수되었으니 거기에서 정당 가입이 금지된 공무원, 교원 등이 적발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과의 연계 문제다. 수사당국은 그 책무이기도 하여 전부터 그 점을 추적해 왔을 것이고, 이번에도 관심을 갖고 살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기동부연합의 문제에 있어서 부정투표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관심은 일부 언론이 연일 문제삼고 있는 그 북한 연계 여부이다. 그 문제가 핵심이기에 궁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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