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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일만의 학교설립, '날치기'(?)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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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74일만의 학교설립, '날치기'(?)의 기적

[현장] '희망의 우리학교' 문 열던 날

"오늘은 제가 자퇴를 결심하고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을 촉구하면서 1인 시위에 나선지 정확히 74일 되는 날입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74일 만에 학교를 설립한 '날치기' 학교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희망의 우리 학교 여는 날' 행사가 지난 12일 오후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최훈민 군은 '희망의 우리 학교' 대표 학생으로 학교 설립 주창자이기도 하다.

최 군은 지난 2월 29일, 고등학교 자퇴와 동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3류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린 학교, 하루 평균 106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정상적 교육을 비판하며 '학생이 주인인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후 3월 11일 뜻을 같이하는 학생과 시민 등 70여 명과 학교 설립을 위한 첫 준비모임이 가졌다. 그렇게 74일 만에 최 군의 말대로 '기적 같은 꿈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관련 기사 : <조선>이 칭찬한 'IT 영재'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희망의 우리 학교'가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최훈민 군은 '74일의 기적'이라고 이름 지었다. 혼자 꾸던 꿈을 지금은 1300여 명(온라인 카페 가입 회원 수)이 함께 하고 있다. 최 군은 "학생들의 통쾌한 반란은 이미 시작됐다"며 "이제 학벌, 경쟁, 스펙을 위한 삶을 거부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희망의 우리 학교' 첫 입학생은 최훈민 군을 포함해 모두 15명이다.

▲ 15명의 학생이 지난 12일 '희망의 우리학교'에 입학했다. ⓒ프레시안(이명선)

  1. 이날 행사에는 오종남 종로구의회 의장,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 황인국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센터장, 이부영 한국교육복지포럼 상임대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해 축하 인사말을 했다. 정세균 민주당 국회의원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 외 전현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전하진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김재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 하승수 녹색당 사무처장,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등이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배움나라 학생공화국 개국

    '희망의 우리 학교' 입학식은 여느 학교와 달랐다. '배움나라 공화국' 입국 심사를 거쳐야 입학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배움나라 관계자들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참석자 한 명, 한 명에게 물었다.

    "'입시경쟁교육 거부의 의무'를 약속하시겠습니까?"
    "'학벌사회 타파의 의무'를 이행하시겠습니까?"
    "'희망의 우리학교 후원의 의무'를 다하시겠습니까?"


    입국 심사를 담당한 정유진(17) 양은 "국가를 다시 세운다는 의미로 '개국'이라는 콘셉트를 정했다"고 말했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만의 시민의식을 갖고 싶었다는 것. 정 양은 후원금도 "시민이 낸 세금"이라며 의미를 달리했다. 결국, 이날 입국 심사를 통과한 참석자들은 새로운 여권을 받고, 배움나라 시민이 됐다.
▲ '희망의 배움나라 학생공화국' 여권 ⓒ프레시안(이명선)

'희망의 우리학교'는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꿨다. 최훈민 군은 학교 소개 프레젠테이션에서 "세상이 학교다"라며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 시설을 자랑했다. 이순신 동상이 서 있는 광장(광화문 광장)과 멋진 잔디로 뒤덮인 광장(서울 광장), 50여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관(정독 도서관, 서울시 종로구 화동 소재)이 그것. 배움나라 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최 군은 이어 "시민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시민의 의무를 잘 수행해주면 대한민국 교육이 희망으로 바뀔 것"이라고 당부했다.

'희망의 우리학교'는 교육 방식도 남다르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고, 멘토와 멘티만 있다. 학교의 취지를 이해하는 외부 전문가가 멘토가 되기도 하지만, 학생들 간에도 멘토-멘티 관계가 형성된다. 제과제빵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정유진 양과 정유서 양(18)는 조계사 제안으로 '그루터기(가칭)'라는 카페 운영을 계획 중이다. 이들이 곧, 창업 프로젝트 멘토이다. 또 '소상공인 위한 통합시스템, 매장관리 앱 cookPan'을 개발한 최훈민 군은 IT 프로젝트의 멘토가 되는 셈이다.

▲ '희망의 우리학교' 커리큘럼

최훈민 군과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같이 했던 이수호 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학생이 어리다고 하는데 '희망의 우리학교'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인격체"라며 "기가 막힌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교에서도 이런 주체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억압만 한다"라며 "학생들이 자퇴하고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는 교육을 만든 어른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입학식에 참석한 한 학부모(57,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 거주)는 "하루에 100여 명씩 자퇴한다. 자퇴하는 학생들을 보고 '문제아'라고 하는데, 그건 어른들의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만 해도 '문제아'는 없다"면서 "다만, '문제' 학부모와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진이 이야기 "성적만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마세요"

'설탕공예가'가 꿈인 정유진 양은 이날 행사에서 배움나라 입국심사를 담당했다. 정 양은 경남 양산에 살다가 올해 초 서울 송파구 영파여고로 전학 왔다. 정 양의 고등학교 입학 성적은 상위 7퍼센트,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설탕공예를 하는 데는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물 흐르듯, 남들 가듯 고등학교를 따라가게 됐다". 서울로 전학 온 뒤에는 더 힘들었다는 정 양. 친구들은 학원 다니기에 바빴다. 외로웠다. 자퇴 생각이 들었다. 정 양은 신문에서 최훈민 군의 1인 시위를 보고 '희망의 우리학교'에 참여하게 됐다. 그렇게 4월 말 학교를 그만뒀다.

정 양은 "비교적 자신을 믿어주는 선생님과 부모님 덕에 어렵지 않게 원하는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며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오히려 '뭘 해도 잘할 것'이라며 주위에서 늘 믿어줬다고 한다. 정 양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제과제빵 공부를 하면, '넌 공부를 못하니 그거라도 해라'라는 식이다.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성적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사회적 인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동현이 이야기 "학교를 피하려고 온 것 아니예요"

"(학교 다닐 때) 잘 나갔죠"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김동현 군(19)은 "입시교육 위주의 학교생활에 흥미를 못 느꼈다"고 했다. 성적이 잘 나와도 개인적인 성취도는 높지 않았다고. 김 군이 '희망의 우리학교'에 온 이유는 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다. 김 군은 "학교를 피하고 싶어 온 게 아니"라며, "학교 자체는 다닐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입시교육 외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김 군은 이날 입학식에는 유일하게 꽃다발을 받았다. 이모가 부모님을 대신해 참석하며 선물한 것. 김 군의 이모는 "처음 언니에게 (조카)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며 "언니도 말하기 어려워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제도권 안에서 공부하면 좋겠지만, 조카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주변에서 하는 대로 아이를 키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대여섯 살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내게 됐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흥식이 이야기 "'자퇴한다'고 낙인찍지 마세요"

조흥식 군(19)은 이날 '희망의 우리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군은 '희망의 우리학교' 설립 첫 준비모임 때부터 줄곧 참여하고 있다. 조 군은 당시 "학벌과 스펙이 아닌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학교는 대기업에서 노동하는 노예를 찍어내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관련 기사 : "입시가 꿈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학교, 함께 만들어요")

조 군은 '희망의 우리학교'에 입학하려면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자퇴해야 하는데, 그 이유만으로 "'쟤는 공부를 못하니까'라는 낙인이 찍힌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에 가야 한다'며 현재의 입시경쟁 제도를 그대로 따라가려"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배제되고 소외된다"는 것. 결국, 자퇴하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게 되는 셈이다.

조 군은 "대학을 가고 싶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를 잡게 하는 것 또한 문제"라며, "'희망의 우리학교는 대학을 가지 말자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조 군은 또 지금까지 '희망의 우리학교'를 외곽에서 응원했듯 "나중에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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