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연일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농성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원로언론인들의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민주통합당과 통합민주당도 언론청문회 개최를 약속했다. 이를 위해 두 야당과 시민사회 및 언론단체는 공동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구체적 방안의 논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19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과 언론탄압의 진상, 언론사찰 등 민간인 불법사찰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와 국정조사 실시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 지난달 20일 MBC는 "시너지 효과를 위한 개편"이라며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이에 MBC노조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조직개편을 비판하는 행동극을 취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작 4.11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던 일부 의원들도 선거가 '과반 승리'로 끝나자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박 위원장은 넉 달째 계속되는 언론사 파업 사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의 사장 연임 저지 파업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을 정도이다. 박근혜의 '사당화'(私黨化)로 치닫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돈 위원 등 일부 비대위원들의 개인적 언급은 있었으나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대선 때까지 언론파업 사태가 이어진다면 총선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 유리한 방송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선 행보를 앞두고 박 위원장이 언제까지나 침묵하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 많다. 박 위원장은 최시중 전 위원장의 구속으로 레임덕이 급진전된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을 위해서라도 언론파업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19대 국회 개원일이 다가오면서 야당과 언론·시민단체의 압박강도가 강해지면 '침묵 모드'만으론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청문회가 19대 국회 개원 즉시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언론사찰과 방송장악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설혹 박 위원장이 정권을 재창출하더라도 언론청문회는 반드시 열릴 수밖에 없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학살을 규명하기 위한 언론청문회도 그의 후계자인 노태우 정권 시절 열렸다. 청문회 이후 전두환은 백담사로 유배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역사의 순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빨리 털고 나가는 것이 최상의 비책일지도 모른다.
국회의 언론청문회는 현재까지 단 한 차례 열렸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전의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 언론기본법 및 '보도지침'과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에 의한 언론통제 등 언론학살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난 뒤 그의 후계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인 1988년 10월이었다. 70여 시간 동안 45명의 증인이 동원됐다. 5.18 광주항쟁, 전두환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청문회와 함께 열렸다. 3개 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되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의 쇼'로 불리기도 했다. 날카로운 질문과 증거 제시 등으로 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국회의원은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5공 비리 청문회'에서 명패를 내던지며 비리를 집요하게 추궁했던 노무현 의원은 후일 대통령으로 부상할 만큼 국민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당시 11월 21일부터 12월 3일까지 5차례에 걸쳐 열린 언론청문회에는 허문도(전 중앙정보부 비서실장), 이상재(전 국군보안사령부 언론담당관), 이광표·이원홍·이진희(전 문화공보부장관), 김만기(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회정화위원장) 등 언론학살 책임자와 언론정책 책임자들이 주요 증인으로 불려 나왔다. 방우영(조선일보) 김상만(동아일보) 장강재(한국일보) 이종기(중앙일보) 이진희(경향 MBC) 이원홍(KBS) 등 주요 언론사 대표들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제로 해직당한 언론인들도 참고인으로 나섰다. 필자도 청문회에 나가 보도지침의 전달과정 및 언론인 사찰 등에 관해 증언했다.
청문회에서는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등 언론학살이 1980년 보안사령부 언론대책반에서 작성한 '건전언론 육성방안'에 따라 강제로 이루어졌으며 통폐합과 해직 기준도 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작성됐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대외적으로는 언론사 자율에 의한 것처럼 치밀하게 위장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보도지침' 작성경위와 집행과정이 드러난 점 또한 커다란 수확이었다. 언론학살 주도자들은 권력 장악 초기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면피성 답변으로 일관했다. 다만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설파한 허문도는 전두환을 '삭풍의 광야에 내몰린 그분'으로 지칭하여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이 전두환 정권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비판여론을 봉쇄하기 위해 출범 초기부터 방송장악에 몰두했다. 임기가 남아 있는 KBS 사장과 언론재단 등 언론단체 임원들을 강제로 축출하고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들 대리인을 통해 시사프로그램을 축출하고 비판적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도록 했다. 대리인들은 비판적 기자나 PD들을 해고하거나 중징계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들은 아직도 방송사 사장직에 머무르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불법사찰도 저질렀다. 사찰을 통해 대리인들이 방송사를 제대로 장악하도록 감시하거나 조언하고 비판언론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도 번뜩였다. 최근 KBS 새노조가 공개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에는 청와대가 KBS YTN MBC 등 방송사 사장 및 임원 인사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방송사 장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건의'했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과 동맹관계를 맺은 보수신문들에게 선물로 준 종합편성채널은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과 궤를 같이 한다. 종편사업자 무더기 선정은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논리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광고시장의 포화상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특정 신문사만 선정하면 다른 신문사들을 적으로 만들어 공격을 당할 우려가 크다는 정치적 이유가 작용했던 셈이다. 더 나아가 종편 채널들을 위해 케이블방송 의무전송, 직접광고 영업 등 특혜를 챙겨주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 검찰은 지난달 30일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사건과 관련해 금품수수 혐의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뉴시스 |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의 선봉에는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종편 선정과 특혜 부여도 모두 최 전 위원장이 주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그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공영방송사 사장에 '충성스런 내 사람'을 심는 데 착수했다. 임기가 남은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감사원과 교육부 국세청 등 정부기관을 총동원해 용의주도한 공작을 벌였다. 결국 검찰이 개인비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배임죄로 기소를 강행했으나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마무리됐다. 이후 방송사 사장들을 대통령 측근부대들로 채우고 이들로 하여금 방송장악을 완성했다.
최 전 위원장은 언론장악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파이시티 청탁비리로 구속됐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다.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 이사 선임 청탁과 함께 2억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종편 채널 선정의 근거가 된 미디어법 개정과 관련해 여당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그는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방통위 보좌역을 둘러싼 각종 로비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전격 사퇴했다.
따라서 언론청문회가 열린다면 최 전 위원장은 반드시 증인으로 불려 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주물렀던 그가 빠진다면 청문회는 '김빠진 맥주' 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이명박 정부 초기 언론정책 입안 및 실행자인 이동관 전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도 빠질 수 없다. 물론 이병순·김인규(KBS) 김재철(MBC) 구본홍·배석규(YTN) 박정찬(연합뉴스) 등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언론사 전·현직 사장들은 언론인 해직 및 중징계, 비판프로그램 삭제 등을 숨김없이 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종편 선정을 주도한 방송통신위원회 간부들과 4개 종편사업자 대표들도 출석대상이다.
언론장악의 피해자들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나설 것이다. YTN, KBS, MBC 해직자들은 물론, 중징계를 당하고 프로그램 제작현장에서 쫓겨난 기자와 PD, 언론사의 기나긴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언론노조위원장과 각사 노조위원장들도 언론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있다. 물론 직접 피해당사자인 정연주 전 KBS 사장과 신태섭 전 KBS 이사 등도 국민 앞에 고발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언론청문회는 이명박 정부의 불법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장악 시나리오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으면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인 언론자유도 위협받게 된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종편채널의 출범과 횡포·특혜는 아직도 언론계를 아수라장으로 몰아넣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이를 통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해고언론인의 복직과 징계언론인의 명예회복이 가능할 수 있다. 언론청문회는 명실공히 언론이 독립성을 확보해 민주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과거 언론청문회는 언론민주화의 시발점이었다.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던 보도지침과 언론사찰의 산실 문공부 홍보정책실(홍보조정실)이 사라졌고 민주언론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도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언론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식도 크게 높아졌다. 이를 통해 우리 언론은 한 단계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도 높아졌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언론권력'의 등장으로 언론도 개혁대상이 될 만큼 정치권력의 언론통제는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이제 국회의 언론청문회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도 언론청문회를 촉구하는 시민과 정치인들의 발길이 파업 언론인들이 농성 중인 여의도를 찾고 있다. 새누리당이 끝까지 화답하지 않는다면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비호하는 '언론통제 세력'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 정권 때에도 언론청문회가 열렸다는 점을 새누리당은 잘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을 꾀하는 박근혜의 의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도 언론청문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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