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남부 북(北)오세티아 학교 인질범들은 마지막 선을 넘어섰다. 339여 명의 사망자 가운데 156명이 어린이였던 것이다. 지난 달 모스크바 지하철과 2대의 항공기 자살테러는 이번 테러의 서곡에 불과했다. 이번 학살은 지난 9.11 미국 테러 참사 이후 최악의 테러다. 그러나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는 그러나 체첸 반군의 테러 양상이 점차 알 카에다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테러범들은 체첸의 분리독립을 요구했지만 학교 체육관에 엎드린 인질을 향해 총구를 여는 순간 ‘알라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것으로 독일 주간 디 차이트(DIE ZEIT, 9월9일자)는 보도했다. 이는 알 카에다의 순교자적인 자살테러를 연상시킨다.
또 독일 주간 슈피겔(SPIEGEL, 9월6일자)은 체첸 반군 중 일부가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고 미디어를 의식한 대량학살을 시연하고 있으며 순교를 찬미할 뿐만 아니라 아랍권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등 알 카에다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 독일 테러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테러범들의 목적과 원칙이 불투명한 이번 테러에 반해 지난 9.11 테러의 배경은 훨씬 뚜렷했다. 이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전사였고 테러 대상국은 미국이었다. 탈레반 정부 축출 이후 알 카에다 핵심부는 현재 매우 취약해진 상태고 테러훈련 기지도 제거되었지만 빈라덴과 일부 조직이 산악으로 도피한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알 카에다의 와해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테러조직의 분열은 대테러전 수행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게 테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분산된 테러조직은 공동의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갖지만 독자적인 테러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연방총리실 정보담당관 에른스트 우를라우(Ernst Uhrlau)는 “지하철 중앙역을 둘러싼 핵심조직을 타격하면 수십개의 세포조직으로 나뉘어져 도시 전체로 숨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대테러전을 마약과의 전쟁에 비유한 바 있다.
또 미하엘 힐데브란트(Michael Hildebrandt) 독일 연방정보국(BND) 국제테러담당관도 조직이 와해된 후 각 세포조직은 독자적으로 테러를 감행하지만 몇몇 조직은 알 카에다로부터 직접 지휘를 받는다고 말한 것으로 독일 주간 디차이트(DIE ZEIT, 9월9일자)가 보도했다. 이러한 세포조직이 알제리, 이집트, 이라크를 비롯,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슈미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또 미발견된 테러 조직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알 카에다의 맥도날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미 중앙정보국(CIA)은 현재 전 세계 68개국에 알 카에다 추종세력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측한 바 있다. 그리고 체첸도 여기에 속한다.
알 카에다의 그림자가 체첸 반군에 드리운 것은 베슬란시(市) 학교 인질극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인질극의 주요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Schamil Bassajew)는 체첸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강경파로 이슬람 신정(神政)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지난 1995년 러시아 남부 부데노브스크 병원 테러를 주도한 바 있다. 당시 인질은 1500명에 육박했고 러시아 점령군의 서투른 테러진압으로 166명의 사망자를 냈으나 바사예프와 테러범들은 인근 산악으로 도피했다. 또 체첸반군은 지난 8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테러조직을 거점으로 삼아 러시아에 저항한 바 있다. 반군은 또 지난 90년대 알 카에다의 성전(聖戰) 훈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밖에 지난 2002년 파리 지하철역 자살테러 첩보를 사전에 입수했던 당시 프랑스 국제테러조사관 장 루이 브뤼기에르(Jean-Louis Bruguiere)는 유력한 테러용의자로 체첸인을 지목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프랑스 국가정보기관(DST)은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관 테러 첩보를 입수해 참사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 대사관 테러를 기도한 세포조직은 빈 라덴 계파였고 이중 일부는 체첸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테러범들의 목적은 지난 2002년 4월 독살당한 카프카스 지역 알 카에다 세포조직의 지도자인 차타브(Chattab)에 대한 복수였다. 같은 해 10월 129명의 사망자를 낸 모스크바 극장 테러는 그의 ‘형제’ 바사예프가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브뤼기에르는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화학 무기가 개발될 수 있는 곳으로 카프카스 지역을 지목한 바 있다. 실업자로 전락한 옛 소련 출신 과학자들과 군인들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체첸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퍼져있는 카프카스 북부지역은 바로 체첸 반군의 대러시아 투쟁 거점이다. 이 밖에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DER SPIEGEL,9월6일자)은 한 독일 정보국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 체첸에서 개발된 폭탄기술이 이라크에 투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프랑스, 영국, 이태리, 스페인 경찰은 생화학무기 개발 혐의를 받는 테러 세포조직을 급습했는데, 체포된 테러범 중 일부는 체첸과 그루지야의 판키시 계곡에서 훈련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2000년 체첸을 시찰한 독일 연방정보국(BND) 총장 아우구스트 하닝(August Hanning)도 당시 체첸에 지하드 전사가 8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방정보국은 현재 체첸의 외국계 지하드전사를 약 5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디 차이트(DIE ZEIT,9월9일자)는 보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체첸 반군의 알 카에다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병원, 극장, 학교 등 체첸반군의 무차별 테러는 전형적인 이슬람 급진주의자의 테러방식과 동일하다.
무엇보다 지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알 카에다의 지하드 이데올로기를 선전한 셈이 되었다. 더군다나 인간이 동물로 전락한 아부그라이브의 사진은 아랍세계 전체를 성전에 휘말리도록 했다. 바로 전선으로 향하는 회교도 신자가 점증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체첸에서 아랍권의 신(新)식민전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향후 바사예프 등 알 카에다와 깊숙히 관련된 극단주의자가 체첸 분리독립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또 체첸이 독립되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과연 무기를 내려놓을 것인지 아니면 서구문화가 이슬람권에서 완전히 축출될 때까지 총구를 겨눌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ueddeutsche Zeitung, 9월7일)에 따르면, 이번 테러 이후 독일 적십자와 연방정부는 각각 5만 유로와 10만 유로의 구호비를 지원하고 슈뢰더 총리도 향후 러시아와 긴밀한 대테러협력을 천명했으며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대테러 협력를 강화해나갈 전망이다. 이 밖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위로금을 차등지급할 것으로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9월10일자)은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의 이른바 ‘사후 대책’은 구태의연한 모습인 것 같다. 테러에 대한 경악과 분노, 동정심과 아울러 푸틴의 카프카스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어쩌면 반복되는 ‘사후 처리 논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러시아와 유럽 정치권은 지난 마드리드 테러참사 이후 논의된 바 있는 미국 독주의 세계질서에 대항할 유럽 독자의 대테러 전략 수립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베슬란의 테러범들은 어린이 등에 총구를 겨누었다. 이는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던 서구의 30년 전쟁이나 지난 20세기의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니힐리즘적인 테러 방식은 굶주린 하이에나에게 훌륭한 먹이감을 제공한 셈이다. 사망자 축소발표나 언론통제 그리고 테러진압 직후 보여준 독선적 대테러전 수행 의지 등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베슬란 테러를 “빈 라덴이냐 푸틴이냐”라는 이분법적 선거전략으로 악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유권자들이 선과 악이라는 냉전 시대적 세계인식을 갖도록 자극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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