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밖'이 '안'이고 '안'이 '바깥'인 아이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밖'이 '안'이고 '안'이 '바깥'인 아이들

[전태일통신 40] 나는 무지하지 않은가?

부모가 가난한 아이들. 그래서 어른들 보살핌을 받기 어렵고, 학교를 다녀와서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방과후공부방을 도와주는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가 있다. 하루 밥 세끼도 제대로 먹기 어려운 아이들한테 밥이라도 주자고 수도권 여기저기에 밥집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1992년부터 해마다 글잔치를 하고 있는데, 나는 1993년부터 글잔치 심사를 보고 있다. 심사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게 많이 들어가지만, 어려운 일 하는 분들을 위해 한 자락 거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부탁을 거절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다.
  
  이 단체에 보내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쓴 글 수백 편을 읽는 일은 나에게는 일이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불을 외치는 고도 경제성장 그늘에 가려 잘 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그 속에서 슬피 우는 아이들 삶을 보면서 나태해지는 나를 채찍질하는 배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이 땅의 아이들 삶에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면서 동시에 교사로서 그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했음을 회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무릎 꿇고 앉아서 아이들 글을 읽는다.
  
  다음 글들은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에서 그 아이들 글을 모아 놓은 『가슴깊이 묻어놓았던 보물상자 하나 2002』에서 몇 편 골라본 것이다.
  
  부끄러운 우리 동네
  
  '우리 동네'라고 하니, 작년 5학년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숙제로 우리 동네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 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숙제가 싫었다. 우리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반 친구들과 같이 집에 놀러오고 싶어도 우리 동네를 가난한 동네라고 놀릴까봐 데리고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이하 줄임)
  - 박미애, 초등6, 성남공부방, 1993.

  
  언제 행복하게 될까?
  
  아빠는 거짓말쟁이다.
  회사에 나가 돈 많이 벌어 온다고 하면서 나가
  아직 빚만 많이 쌓였다.
  오늘 밤에 엄마가 울었다.
  아빠가 빚만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기 쓰면서도 울었다.
  가난한 우리 집 언제나 행복하게 될까?
  - 박경애, 초등 6, 은행골공부방, 1994.

  
  30년을 참교육을 해보겠다고 몸부림 쳐 온 나도 박미애 어린이처럼 교과서에서 가르치라는 그대로 따라서 불쑥 내주는 숙제 하나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잊을 때가 있다. 미애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마음에 상처받은 아이들도 있겠지…'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박경애 어린이의 아버지처럼 자기 마음과는 전혀 달리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아버지들이 참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6학년쯤 되었으니 경애가 진짜 자기 아버지가 거짓말쟁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경애는 아버지는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현실이 싫고 두려워 일기를 쓰면서 울었을 것이다. 국민소득 몇 만 불이 된다고 한들 이렇게 사랑하는 식구들한테, 어린 딸한테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이 있는 이상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땅에는 오늘도 아들딸한테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거리에 넘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 동네
  
  우리 동네를 보고 사람들은 달동네라고 부른다. 아담하고 조용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리 집도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이다.
  우리는 식구가 많다. 할머니는 편찮으신데 화장실에도 못 가셔서 방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 그리고 아빠, 엄마, 언니 하나와 동생 셋이 있다. 내가 공부만 하려면 동생들이 심술을 부린다. 그래서 시끄러워 공부를 할 수가 없어 밖에 나가서 놀아 버린다.
  그런데 요즈음 범박교회에 공부방이 생겼다. 선생님께서 숙제도 봐 주시고 영어도 가르쳐 주신다. 교회는 조용하고 넓어서 공부가 잘 된다. 열심히 하여야 되겠다.
  - 김지성, 초등2, 범박공부방, 1997.

  
  작은 방 두 칸에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화장실에도 갈 수 없어 방에서 똥 오줌을 가려야 하는 할머니와 일곱 식구가 살고 있다. 그래도 그 냄새나는 방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동생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장난치고 매달린다. 그러니 방이 있어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동네 교회가 이런 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서, 얼마 전에 교회 공부방이 생겨서 갈 곳이 있다. 공부할 방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집을 많이 지어서 넘쳐나면 무엇하나? 이렇게 조용히 공부할 방 한 칸 없어 밖으로 떠돌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80여 년 전,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행사 때 뿌린 전단지를 통해 당시 어린이운동가들이 외쳤던 세 가지 요구 사항 가운데 세 번째가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밖에가 방이에요
  
  난 맨날 집에 혼자 있기 싫어
  맨날 밖에서 생활합니다.
  밖에서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사라지고
  행복한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난 외롭게 집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어렸을 때 엄마와 집에서
  쎄쎄쎄 하던 그 행복한 기억이 눈앞에 빙빙 돕니다.
  - 김선희, 초등6, 예은신나는집, 1999.

  
  집이 있어도 집에 있을 수 없는 아이, 그래서 자기한테는 '밖이 방'이라는, 곧 '밖이 안'이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밖은 밖이고 안은 안이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사람 살만한 세상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 한창 꿈
  을 먹고 자랄 꽃봉오리같은 12세 소녀가 '내 삶은 밖이 안이고, 안이 밖이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어른들의 말과 행동
  
  학교에서 나는 인간쓰레기…
  집에 오면 나는 말종…
  하지만 나는 원치 않는다.
  그런 말과 행동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나는 평등한 대우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다같이
  밝은 세상…
  우리에게 평등한 대우를
  하는 세상을 원하다.
  - 박정희, 고1, 인천 서로사랑공부방, 1999.

  
  밖이 밖이고, 안이 안이 될 수 없는 아이들. 안과 밖을 바꿔서 인식하고 살아 가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상처를 받게 되는 요인은 주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다. 그런 어른들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는 또 다른 아이들이다. 주변 어른들이 툭툭 던지는 말과 어른들이 표정과 몸짓으로 보여주는 '너는 안과 밖도 구별하지 못하는 쓰레기, 인간 말종'이라고 규정지어 버리는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밖이 방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이고 무감각이다. 그리고 무지다.
  
  나는 그 무지에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