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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야권연대'의 아름다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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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야권연대'의 아름다운 만남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

I. '부러진 화살'은 없다

김명호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사무처장 일을 맡고 있었던 2004년 겨울이었다. 민교협과 교수노조(전국교수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는 낙성대 주변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생맥줏집으로 민교협과 교수노조의 집행부 교수들과 김명호 교수가 함께 이동했다. 사무실과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진 주된 대화는 김명호 교수가 해직교수협의회(2004년 당시 전국의 해직교수는 50여 명에 이른다)에 들어와서 다른 해직 교수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법정에서 다른 교수들과 함께 김명호 교수의 해직이 불법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맥줏집으로 옮긴 자리에서 민교협과 교수노조 집행부 교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김명호 교수의 재판부와 판사에 대한 일방적인 판단을 들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재판에 대한 해당 법조문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례들의 판례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도 등장하지만, 김명호 교수의 논지는 수학의 공식처럼 법률은 너무나도 명료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보안법'도 수학의 공식처럼 너무나도 명료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법이냐고 어떤 교수가 질문을 했다. 그건 "자신이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정말로 대학에서 수학만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수학만 연구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누려야만 하는 학자 중의 학자였다. 나도 그러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근대 식민지성의 헌법에 대한 현실 판단이 그의 생각과 달랐다.

▲ <부러진 화살> (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그는 해직 교수 협의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다른 해직 교수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는 물소처럼 혼자서 싸웠다. 민교협과 교수노조 회원 교수들은 김명호 교수 대책위원회의 부탁으로 1인시위 이외의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연구년으로 해외에 나갔고, 영화 <부러진 화살>은 그 이후의 재판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조·중·동 신문이 1면 머리기사들로 그렇게도 요란하게 대한민국의 부정이고 법정모독이라고 떠들어댔던 '부러진 화살'은 없었다. 그는 수학의 공식처럼 너무나도 명료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법을 올바로 수행하지 않는 판사에게 항의하기 위하여 판사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식민지 근대성은 병원이나 대학이나 신문사의 언론이나 법원이나 정부나 의회의 개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을 구성하는 자본의 권력, 대학을 구성하는 식민지적 행정체제의 권력, 법원을 구성하는 법관들의 권위주의 권력, 정부를 구성하는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의 독재 권력, 그리고 의회를 구성하는 국회 권력의 구조들이 식민지 근대성의 지식과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권력,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의 권력, 변호사와 검사 혹은 원고나 피고와 소통하면서 올바른 재판을 하고자 하는 판사의 권력, 지역구 주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권력,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대통령과 정부각료들의 권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한민국의 근대적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국가를 구성하는 각각의 권력구조가 시민과 국민 그리고 소수자들을 위하여 각각의 아름다운 권력들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김명호 교수는 비록 지난 20세기 대학의 권력구조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21세기 법원은 각각의 판사들이 각각의 아름다운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 <부러진 화살> 속에 등장하는 박준 변호사(박원상 분)는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근대 식민지성의 권력구조가 각각의 판사들로 하여금 각각의 아름다운 권력을 창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헌법과 법원의 권력구조를 개혁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 진보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명호 교수(안성기 분)를 '보수'라고 이야기하고 박준 변호사를 '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은 결코 '꼴통'이 아니다. 그들은 각각의 삶이 만드는 사건들에 따라서 보수주의자도 되고 진보주의자도 되는 아름다운 보수와 진보의 원칙주의를 대표한다. 정지영 감독은 아마도 서형 작가의 소설 <부러진 화살>을 읽고, 소위 '꼴통 보수'와 '꼴통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두 사람이 대한민국 법원의 아름다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하여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가 되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탈근대적 아름다운 만남에 매료되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리라?

II. 석궁 사건과 야권연대의 사건

'사건(event)'과 '사고(accident)'는 다르다. '사건'은 과거와 미래를 변형시키는 현재이지만, '사고'는 과거를 지속시키는 현재의 불협화음이다. 그래서 훌륭한 영화를 보는 '사건'은 영화 관객들을 변화시킨다. '6.15남북공동선언'을 포함하여 '2002한일월드컵' 등등의 수많은 21세기의 사건들은 근대 식민지성의 대한민국을 탈근대의 생성적인 대한민국으로 변화시키는 사건들이었다.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은 근대 식민지성의 대학과 법원을 탈근대의 생성적인 대학과 법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김명호 교수는 아마도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석궁 사건'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대 식민지성을 고수하는 법원 판사들의 권위주의와 언론권력의 저널리즘은 탈근대적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근대 식민지성의 '사고들'로 폄하한다. 미국의 '9.11 사건'이 그렇고 지난 해 서해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이 그렇다. 그러나 오늘날 지난 20세기와 달리 탈근대 영화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처럼,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의 장에서도 탈근대적 사건들은 끊임없이 생성된다. 그것이 바로 '4.11 총선'을 대비하여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만든 야권연대의 '사건'이다. 김명호 교수가 대한민국 대학과 법원의 근대 식민지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석궁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정치인들이 '4.11 총선'을 통하여 근대 식민지성의 대한민국을 탈근대의 생성적인 대한민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야권연대'라는 탈근대의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아우라 픽쳐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마치 민교협이나 교수노조의 교수들과 김명호 교수의 만남처럼 근대 식민지성의 일상 속에서 김명호 교수와 박준 변호사는 도저히 서로 화해하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술자리나 대학 교정에서 서로 만났다면, 서로 소리를 지르며 언쟁을 하거나 혹은 서로 본체만체하며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통한 만남은 그렇지 않다. 수학을 전공하는 보수적인 김명호 교수는 법률을 전공하는 진보적인 박준 변호사보다 더 진보적인 법 해석을 하고, 진보적인 박준 변호사는 보수적인 김명호 교수보다 더 수학적 논리체계를 갖춘 보수적인 법조인이 된다. 영화 속에서 둘의 변화과정은 마치 김명호 교수가 변호사이고, 박준 변호사가 대학에서 쫓겨난 수학을 전공하는 보수적인 학자인 것 같다. 사건은 둘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변호사의 논증 과정을 엄밀히 분석하는 석궁사건의 2심을 맡았던 이태우 판사(이경영 분)도 또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근대 식민지성을 대한민국 법정의 권력으로 알고 있는 검찰이나 석궁사건의 1심을 맡았던 박봉주 판사(김응수 분)의 잘못을 알게 된다. 사건의 핵심인 '부러진 화살'이 없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만 없는 것이 아니라 '피가 묻은 와이셔츠'도 없다. 피고인으로 나온 김명호 교수는 교수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는 단지 자신의 사건을 근대 식민지성의 법원을 탈근대의 생성적인 법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근대 식민지성의 법원 권력이 이태우 판사를 신재열 판사(문성근 분)로 대체해 버린다.

신재열 판사와 같은 근대 식민지성의 수구세력은 김명호 교수나 이태우 판사와 같은 원칙이 있는 보수가 아니다. 보수를 가장하고 근대 식민지성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권력의 노예이다. 법정 사건을 다루는 신재열 판사는 사건을 사건으로 인식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법정사건을 다루어서 올바른 판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것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판결이 나 있다. 대한민국 근대의 보수를 자처하는 김명호 교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의 보수주의적 원칙 속에서 신재열 판사는 판사가 아니다. 마치 대학입시 수학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교수가 보수주의적 원칙 속에서 교수가 아닌 것처럼 김명호 교수의 보수주의적인 법의 논리 속에서 신재열 판사는 판사가 아닌 것이다. 진보적인 변호사를 자처하는 박준 변호사가 김명호 교수의 보수주의적 원칙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는 심지어 김명호 교수처럼 변호사의 자리를 내팽개치고 싶어 한다. 그의 삶과 그의 분노를 함께하는 장은서 기자(김지호 분)가 없었다면, 그는 아마도 신재열 판사에게 물병을 던졌을 것이다. 석궁 사건과 또 다른 근대 식민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법정모욕사건! 박준 변호사와 장은서 기자, 혹은 그의 아내(진경 분). 그리고 김명호 교수와 그의 아내(나영희 분)의 관계처럼 근대 식민지성의 대한민국에서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익과 우익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중 ⓒ아우라 픽쳐스

영화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 보자. 근대 식민지성의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500년 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침략과 바스쿠 다가마의 아프리카 침략 이후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근대 식민지화를 토대로 한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지식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근대 식민지성의 전략이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보여주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은 상호보완적이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이 상호보완적이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근대 식민지성의 지식처럼 서로 대립하거나 상하의 서열관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1990년대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그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근대 식민지성의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보수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하는 김명호 교수처럼 근대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권력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의 권력과 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권력 등등이 시민과 국민, 그리고 소수자들을 위한 각각의 아름다운 권력들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근대 진보주의 세력과 연대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계승하는 수구꼴통 세력과 연대했고, 연대하고자 했다.

III. 이정희 의원의 눈물과 김용민 후보의 아름다운 싸움

1990년대 이전의 대한민국 근대 식민지화 과정의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거의 민주당을 계승하는 민주통합당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근대 보수주의 정당이고 과거의 민주노동당을 계승하는 통합진보당은 개혁이 없이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근대 진보주의 정당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사건을 통한 보수주의 학자 김명호 교수와 진보주의 활동가 박준 변호사의 만남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처럼 대한민국 근대 식민지성의 역사에서 단 한 번의 유례도 찾을 수 없었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4.11 총선'을 탈근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야권연대의 만남 또한 너무나도 어려웠다. 근대 식민지성의 독재 권력을 계승하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근대 식민지성의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야권연대를 깨기 위한 집요함은 마치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하는 신재열 판사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도 역겹다. 그러나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하는 박준 변호사처럼 '4.11 총선'을 대한민국 탈근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야권연대를 깨지 않기 위하여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보여준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이정희 의원의 눈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개그맨들과 개그를 하기 위한 농담을 가지고 근대 식민지성이 지니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막말 논쟁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투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정희 의원의 눈물과 김용민 후보의 투혼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정희 의원의 눈물에 보답하듯이 그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통합당의 결단도 아름답고, 이정희 의원을 대신해서 '야권연대'를 깨지 않기 위하여 이정희 의원 지역구에 출마한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의 용기는 얼마나 갸륵한가! 그들만이 아니다. '4.11 총선'을 탈근대의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야권연대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전국 각 지역구 후보들의 노력은 마치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사건을 탈근대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만남으로 승화시킨 장은서 기자나 박준 변호사의 아내, 혹은 김명호 교수의 아내, 그리고 '김명호 교수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소설가 서형 씨와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너무나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문제는 우리다. 근대 식민지성의 지식과 권력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보수주의자이거나 진정한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들이 '4.11 총선'을 어떻게 근대 식민지화 과정의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탈근대적 사건으로 만드느냐이다. 그것은 마치 김명호 교수 개인과 박준 변호사 개인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는 석궁사건의 재판을 <부러진 화살>이라는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서 영원한 탈근대적 사건으로 승화시킨 서형 작가와 정지영 감독처럼 근대의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서로서로 만나서 탈근대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역사적 사건으로 '4.11 총선'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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