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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경제성장을 결정하나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9> 제도, 지리, 혹은 개방

***3. 무역개방, 경제성장 그리고 역사적 현실**

***성장의 근본적 결정요인**

보다 최근 경제학자들은 무역개방을 포함하여 경제성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요인(deep determinants)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량분석과 논쟁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세계화와는 조금 거리가 먼 얘기이지만 경제개방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학자들은 경제성장의 근본적인 결정요인으로 제도(institutions)와 지리적 요인(geograpy) 그리고 무역개방 등을 경마처럼 서로 경쟁을 붙이고 어떤 것이 이기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제도가 경제성장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지리적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고하지만, 무역개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한다는 점이다.

<그림 1> 경제성장의 결정요인

사실 제도란 그 정의조차 어려운 무척 모호한 개념이다. 일찌기 노벨상을 받은 경제사가 노스는 제도를 “공식적, 비공식적 게임의 규칙(rules of the game)”으로 정의했지만, 세상에 규칙이야 어디 한두 가지인가. 흔히 학자들은 재산권이 더 잘 보호되는 경우 생산적 활동에 대한 투자가 높아지고 따라서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는 논리 하에서 재산권의 보호정도 혹은 정부 등이 재산권을 위협하는 정도, 또는 이와 관련된 정부의 효율성 등을 제도발전의 지표로 사용한다.

초기의 연구들은 이 제도 지표를 표준적 성장모델에 추가하여 계량을 돌렸고 결과는 물론 훌륭했다. 그러나 누구나 생각하듯 이러한 방법은 제도 변수 자체가 경제성장 자체에 의해 거꾸로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계량분석을 내내 쫓아다니는 내생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최근에는 성장과는 관련이 없지만 제도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이른바 ‘도구변수(instrumental variable)’을 사용한 연구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도대체 어떤 변수들이 성장률과는 관련이 없이 제도의 발전 정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 몇몇 연구들은 그 대표선수로 식민지 시대 정착한 서양인들의 사망률(settler mortality), 1500년 경의 인구밀도 등을 제시한다. 이들에 따르면 서양 정착인들의 사망률이 높은 경우 식민주의자들은 식민지에 정착하여 서구적 식민지(neoeurope)로 발전시키는 대신 자원을 빼가는 수탈형 식민지(extractction)으로 발전시키기 때문에 이런 나라들에서는 전반적인 재산권 보호 수준이 낮으며 제도의 발전도 나쁘다.(Acemoglu et al., 2001)

또한 당시에는 잘나가서 원주민들의 인구밀도가 높은 경우, 식민주의자의 정착이 힘들어서 이런 나라들은 결국 현재에는 가난한 나라가 되기 쉽다는 “행운의 역전(reversal of fortune)” 현상이 주장되기도 한다. 그밖에도 영어 등 서양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비중 그리고 지리적 조건 등 다양한 요인들이 도구변수의 후보에 목록에 올라서 제도의 질을 잘 설명하는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나 남미와 미국이나 호주를 비교해보라, 그럴 듯하지 않은가. 당연히 식민지 시대의 제도가 나쁜 나라들은 현재의 제도도 발전하지 못하며 이는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개도국에서 온 학생 하나는 “그래서, 서양인들이 정착에 더 성공해야 발전한다니,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식민지에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게 원주민들에게는 무슨 도움이 되죠?”라고 불만 섞인 질문을 던졌다. 정작 원주민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많이 정착해야 식민지가 성장에 성공한다니, 숱하게 학살당한 북미의 인디언들이나 호주의 원주민을 생각하면 역시 맘이 편치는 않은 이론이다.

***제도, 지리, 혹은 개방?**

경제학자들이야 원래가 별로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학자들은 이러한 도구변수에 기초한 제도변수와, 앞서 언급한, 지리적 조건과 인구 등을 도구변수로 사용한 무역개방도를 모델에 추가하고 마지막으로 적도로부터의 거리 등 지리적 조건을 추가하여 어떤 요인이 성장에 가장 중요한가를 탐구한다. 이러한 연구에는, 제도나 무역개방 정도 등 내생적 변수들은 도구변수들을 사용하여 우선 한번 계량을 돌리고, 그 다음 이 결과를 사용하여 경제성장률에 관해 다시 계량을 돌리는 소위 2SLS(2단계 최소자승법)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이들 변수들 중에선 뭐니뭐니해도 지리적 변수가 가장 외생적일 것이고 경제성장에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이상 지리적 조건을 바꾸긴 힘들 테니까. 그리고 역시 열대의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은가. 일견 생각하면, 날씨도 덥고 기후도 좋고 하니까 농작물도 풍부하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아무래도 너무 편견에 찬 생각 같고, 기후와 지리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로드릭 등 제도주의자(institutionalists)라 불릴 만한 학자들은 이들 변수들 중 성장에 역시 제도가 가장 중요하며 무역개방이나 지리적 변수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Rodrik et al., 2002) 특히 지리적 변수는 제도를 통해서만 영향을 미치지 그 자체로는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된다. 즉, 적도에 가까워서 기후가 덥거나 질병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은 제도가 발전하기 어려우므로 성장이 정체된다는 것이다.

몰론 제프리 삭스 등 지리적 조건을 더욱 선호하는 학자들은, 질병의 고생(disease burden)을 강조하며 말라리아 같은 지리나 기후적 조건과 관련이 있는 변수들이 제도를 통한 간접적인 영향 말고, 독립적으로도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Sachs, 2003) 또한 다이아몬드가 일찍이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이라는 흥미로운 저작에서 주장한 인류문명의 흥망에 관한 설명도 주목을 받고 있다.(Diamond, 1997) 이는 유라시아 대륙처럼 대륙의 수평적 거리가 클수록 동물이나 식물의 다양성이 높아져 인류문명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대한 생지리학(biogeography)의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Hibbs and Olson, 2004) 아무튼 거의 모든 연구들은 한결같이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의 결정요인은 아니라고 보고해서 개방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실망을 던져주고 있다.

***왜 어떤 나라가 더 잘 살까**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잘 사는 이유를 밝히는 것은 경제학자들을 평생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질문이다. 물론 생산함수를 보면 생산은 투자와 인적자본 그리고 생산성(Y = f(K, L, A)), 이렇게 세 가지 요인으로 쉽게 결정되지만, 요즘의 학자들은 투자율이나 교육이나 생산성 그 자체를 결정하는 뭔가를 찾으려고 온갖 상상력을 짜내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라든가 젓가락의 사용? 누구든 뭔가 근사한 변수를 찾아내면 훌륭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IQ 같은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경제가 성장해서 영양섭취가 좋아지면 IQ도 높아지긴 하겠지만 두개골 크기라든가 뭔가 외생적인 요소가 IQ 결정에 더 중요할 것이고 IQ가 높은 나라가 빨리 성장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IQ와 경제성장, 그리고 제도 간에는 아주 뚜렷한 양의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이건 뭐 아무래도 인종주의에 가까운 주장일까?

다시 우리의 논의로 돌아오자. 아무튼, 제도와 성장의 요인을 둘러싼 이러한 논의들은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고 많은 난점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흔히 사용되는 제도의 지표 자체가 제도 자체와 관련한 것이라기보다, 보통 컨설팅회사들이 수행한 투자자들에 대한 서베이에 기초한 제도의 ‘결과(outcome)’이고, 인기를 끌고 있는 도구변수들도 현실의 제도를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 의문이 있다. 빅뱅으로 급속하게 이행한 러시아의 재산권 보호가 중국보다 더 높다고 나오지만, 현실과 경제적 성과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혹자는 제도변수들은 안정적이지 않고, 정착인 사망률은 오히려 제도보다는 교육수준과 더 관련이 있으며 인적자본이 성장에 더 중요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Glaeser et al., 2004)

역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도대체 제도가 뭔지 그리고 무엇이 제도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며, 제도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도 밝혀져야만 할 것이다. 이런 한계들은 접어두고 연구의 발전을 기다리기로 하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근의 이런 연구들도 무역개방이 성장에 미치는 이득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어딘가에선 개방이 성장에 미치는 이득을 보여주기 위한 계량연구들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역사적 사례연구, 그러나**

자본자유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보았지만, 역시 실증연구라고 하는 계량분석은 철썩같이 믿을 만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며, 구체적인 나라의 경험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가 더 많은 정보를 줄지도 모른다. 물론 주류경제학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최근에는 무역자유화에 대한 사례연구도 다시 새로운 논쟁과 관심을 끌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로드릭 등의 무역자유화에 대한 비판은 주류경제학자들의 심기를 상당히 건드린 모양이다. 역사적인 경험을 볼 때 자본자유화에 대해서는 별 할 말이 없지만, 무역자유화까지 비판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을까. 개방을 지지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은 어떻게든 대응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국제무역의 대가인 스리니바산과 바그와티가 결국 총대를 멨다. 이들은 로드릭에게 보내는 공개비판에서 괘씸한 심정을 애써 누르면서, 이들 회의주의자들을 점잖게 타이르고 나섰다.(Srinivasan and Bhagwati, 1999) 계량적 연구에 매달리는 논자들을 서로 치고 받기만 하는 RHS(방정식의 우변) 전사(warrior)들이라 부르며 여러 개도국들의 사례를 다룬 NBER-OECD-세계은행 등의 프로젝트들을 포함한 많은 사례연구들은 한결같이 무역자유화의 이득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복잡한 정책효과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시 계량연구보다도 각국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이후 OECD,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의 NBER(전미 경제연구국) 등의 대규모 지원을 받으며 발전된 남미와 동아시아의 무역체제를 비교하는 여러 연구프로젝트의 공통된 발견이 이들의 주장을 확인해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리틀, 발라사 등의 연구들이 바로 그것이었고 크루에거 등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쌓아왔다.

그러나 사례연구는 정말 자세히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무역자유화를 지지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제기했던 주장은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단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우 무역을 개방하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수출지향적 정책으로 공업화와 경제성장에 성공한 반면, 수입대체전략을 오래도록 지속했던 남미의 경우 비효율성이 심화되고 성장에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수출과 세계시장에의 통합이 주는 이득과 무역보호와 수입대체의 폐해를 명확하게 비교하여 무역자유화가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결론을 쉽사리 끌어냈다. 경제학자들은 역사가 자기 편이라고 믿었는지, 혹은 그렇게 해석했는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정말로 그랬을까.

***동아시아, 동아시아**

현실은,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대비된다는 동아시아의 경험은, 학자들이 해석한 대로 혹은 바라던 대로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수출이 경제성장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들 나라에서는 60년대 초반 평가절하와 어느 정도의 수입자유화가 시행되었고 관세나 비관세 장벽 그리고 수출시장의 환율 등을 고려한 수입보호의 수준이 라틴아메리카보다는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도 수입을 완전히 개방하고 무역이 자유로운(free trade) 체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수입은 상당수준 제한된 반면, 수출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청난 드라이브를 걸었다. 즉 한국이나 대만 등의 무역정책은 단순한 수입개방과 시장자유화가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intervention)’과 수출금융과 세금 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에 기초한 수출 촉진 혹은 압박이었으며,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입보호에 기초한 수입대체전략도 함께 수행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국제무역의 초기연구들은 수출입을 포함한 전반적인 무역자유화의 이득보다는 수출 자체의 효과를 더욱 강조했는데, 이런 면에서 국제무역의 자유화와 수출촉진이 꼭 동일한 개념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사실 동아시아의 경험은 주류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자유로운 시장(free market)의 작동의 성공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으며, 그 중 무역자유화가 가장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주장은 80년대까지는 흔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동아시아의 정부들은 무역을 포함하여 산업정책이나 국내적 금융통제와 대외적 자본통제 등 경제의 전 부문에 걸쳐 강력한 경제개입을 수행하였다. 이를 생생하게 분석한 암스덴, 웨이드 등 이른바 국가주의자들의 연구는, 80년대 후반 이후 시장주의자들의 나이브한 논리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그래도 정부개입이, 발전되지 못한 시장을 대체한 혹은 모사한(simulated) 것이고 선별적인 개입은 좋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정책들은 패키지로 시행되었고 이들 정부는 결코 단순히 시장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장과 민간부문의 참여자들을 이끌어(guided) 갔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n miracle)에 대한 이러한 치열한 논쟁을 배경으로, 세계은행조차 1991년 보고서의 강한 시장주의적 입장을 어느 정도 변화하여, 1993년 이른바 ‘기적’ 보고서에서는 정부개입도 상당 부분 인정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거시적 안정성이 더욱 중요하고 선별적 산업정책과 같은 과도한 개입의 성과는 별로였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한편, 국가주의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동아시아 기적의 열쇠로 역시 효과적인 ‘제도’를 지적한다.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정부는 발전지향적이고 능력이 있어서, 무역정책에서는 정부가 수출의 성과를 정확하게 특혜나 정부지원의 기준으로 삼는 등의 노력들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렌트를 창출하였지만 그 배분이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이며, 이는 ‘조건부지대(contingent rent)'로 표현되기도 했다.

***전면개방 vs. 전략적인 개방?**

동아시아의 이러한 경험들은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며 자본자유화와 마찬가지로 무역자유화에서도 제도와 역사 등 현실의 여러 상황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의 대외정책에서는, 해외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 그리고 수출촉진과 적절한 수입대체공업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캠브리지대의 싱이 말하듯, 명백하게 단순한 전면개방이 아니라 “전략적인 세계경제로의 통합(strategic integration into the world economy)”이 성공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Singh, 1994)

로드릭도 스리니바산 등의 공개비판에 대해서 사례연구의 중요성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대만의 실효보호율(ERP: effective rate of protection)은 상당히 높았으며 그들이 언급한 자세한 사례연구들도 무역자유화의 성장효과를 뚜렷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응수한다. 그 밖에도 남미의 경우 적어도 80년대 초반 외채위기로 붕괴하기 전까지는 수입대체전략에 기초하여 상당한 경제성장을 달성한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남미의 정체를 무역정책에서만 찾는 것도 무리가 있다. 게다가, 개방정책으로 인해 성장을 구가하게 되었다는 최근의 이행기 국가들도 막상 들여다보면 수출촉진에는 적극적이지만 수입 등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규제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부패나 인센티브의 왜곡 등 강력한 보호무역이 가져다주는 여러 문제점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무역체제의 완전한 개방 자체가 경제성장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경험에서 볼 때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중국이나 베트남 등이 보다 적극적인 세계경제와의 통합에 기초하여 성장을 구가하고 있지만 이들의 개방정도가 높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시 개도국에게 필요한 정책은 자본 뿐 아니라 무역과 관련해서도,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적절하게 관리되는 개방이며 세계경제에의 통합을 위한 지혜롭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역사 그리고 미래**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뚜렷하지 않은 결론에 기초하여 많은 개도국들이 무역을 개방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그랬지만, 많은 경제학자들과 IMF 등의 국제기구의 정책제언은 언제나 개방, 자유화의 방향이다. 성장을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개방 자체보다는 국내적인 개혁, 예를 들어 훌륭한 관료제와 같은 적절한 제도적인 발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러한 주장들은 WTO 체제의 등장 등 최근의 국제무역 자유화의 강력한 배경이 되고 있다.

한편, 앞서 살펴본 많은 연구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무역자유화의 효과가 역사적인 국제경제의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사실 1970년대와 80년대 수출지향적 공업화에 성공하였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행운아였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세계시장에서 개도국간의 경쟁은 그리 치열하지 않았으며 국제적으로 냉전의 분위기가 미국의 지원 등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에 좋은 환경을 제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바로 그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개도국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개도국 사이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으며 특히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다른 경쟁국들에 심각한 압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1997년의 동아시아 위기조차도 중국의 급성장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중국과 경쟁하던 개도국들은 1990년대 이후 무역적자가 심각해졌고, 이는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수출에 기초한 경제발전전략은 이 전략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많아질수록 성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아질 것이며, 따라서 혹자는 무역자유화의 이득에 관한 주장은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반면, 최근의 세계경제환경의 변화는 개도국들이 자신의 시장을 보호하기 한층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선진국으로부터의 시장개방 압력은 더한층 격화되고 있다. WTO 무역협정은 이전에 개도국에게 용인되었던 다양한 국내시장의 보호수단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섬유 등 다양한 부문에서 빈국에게 주어졌던 선진국 시장에 대한 특별한 접근이 철폐되면 이들이 무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작아지고 비용만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한다면 개도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여전히 존재하며 국내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무역부문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주장도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개도국들간의 보다 강력한 연대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논쟁 혹은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WTO 체제에 대한 개도국들의 반발과 진보적인 학자들의 비판은 이미 숱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반세계화 운동 등과 결합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들은 보다 심도깊은 고민과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Shfaedin, 2003; www.networkideas.org 의 논문들을 참조)

***참고문헌**

Acemoglu, D., S. Johnson, and J. A. Robinson. (2001). "The Colonial Origins of Comparative Development: An Empirical Investiga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91,1369-1401.
: 정착인 사망률을 처음으로 도입한 연구

Diamond, J. (1997). Guns, Germs, and Steel, New York: W.W. Norton & Co.
: 지리에 기초한 거대한 문명사

Glaeser, Edward, L., Rafael, La Porta, Florencio Lopez-de-Silane, and Anderi Shleifer, 2004. Do Institutions Cause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10568.
: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제도주의자에 대한 비판

Hibbs, Douglas A. Jr., and Ola Olsson. (2004). "Geography, Biogeography, and Why Some Countries are Rich and Others Are Poo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1(10), March 9, 2004, 3715-3720.
: 생지리학의 실증연구

Rodrik, Dani, Arvind Subramanian, and Francesco Trebbi. (2002). "Institutions Rule: The Primacy of Institutions over Geography and Integration in Economic Development," forthcoming in Journal of Economic Growth.
: 제도를 가장 강조하는 제도주의자의 연구

Rodrik, Dani. (2004). "Getting Institutions Right," Harvard University
: 경제성장의 근본적 결정요인에 대한 서베이

Sachs, J. (2003). "Institutions Don't Rule: Direct Effects of Geography on Per Capita Income,"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Working Paper No. 9490.
: 지리를 여전히 강조하는 삭스의 비판

Chang, H-J. (1994), The Political Economy of Industrial Policy, Macmillan
: 동아시아 논쟁과 관련하여 시장중심주의자들에 대한 반박, 특히 초기 무역자유화 지지론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World Bank, (1993). East Asian Miracle: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
: 국가개입을 인정한 세계은행의 이른바 ‘기적’ 보고서

Singh, Ajit, (1994). Openness and the Market Friendly Approach
to Development: Learning the Right Lessons from Development Experience. World Development, 22(2).
: 세계은행의 기적 보고서에 대한 비판과 동아시아의 전략적 통합

Rodrik, Dani, (2000). Comments on "Outward-Orientation and Development: Are the Revisionists Right?" by T.N. Srinivasan and J. Bhagwati (September 1999 version
http://ksghome.harvard.edu/~.drodrik.academic.ksg/Bhagwati-Srinivasan%20piece%20_response_.pdf
스리니바산 등의 비판에 보내는 로드릭의 반비판

Srinivasan, T. N. and Jagdish Bhagwati, (1999). "Outward-Orientation and Development: Are Revisionist Right?" Yale University Economic Growth Center Discussoin Paper No. 806.
http://www.econ.yale.edu/growth_pdf/cdp806.pdf
: 스리니바산 등의 로드릭 비판

Shafaedin, Medi, (2003). Free Trade or Fair Trade: How Conducive Is the Present International Trade System to Development?
http://www.networkideas.org/featart/oct2003/Mehdi_Shafaeddin.pdf
: 개도국의 경제발전 입장에서 현재의 WTO 체제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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