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팔레스타인에 들어설 ‘21세기 중동판(版) 게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팔레스타인에 들어설 ‘21세기 중동판(版) 게토'

김재명의 '중동 현지르포' <12> 동예루살렘 분리장벽 건설현장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를 굽어보는 언덕에 서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중국 만리장성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건축물이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것을 악마같이 여긴다. 그것은 어른 키 네 배가 넘는 8m 높이로 동예루살렘 일대에 세워지는 분리장벽이다. 이스라엘쪽 용어로는 ‘보안장벽’.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겠다“며 지난 2002년 6월부터 총연장 640km 길이의 분리장벽 건설을 밀어붙여 왔다. 공사진척도는 7월 현재 30%쯤에 이른다.

<사진 1. 동예루살렘을 가로지르는 분리장벽(ⓒ 김재명)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이스라엘이 장벽건설을 강행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1967년 6일전쟁 뒤부터 불법 점령해온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안에 들어선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합치고, 팔레스타인을 사실상 이스라엘 점령국가 속의 게토(ghetto) 안으로 옹색하게 가둬놓아, 장벽 바깥 주민들을 동예루살렘에서 분리하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동예루살렘 일대에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서예루살렘에 살다가 지난 1967년 6일전쟁 때 밀려난 난민들은 분리장벽이란 또다른 시련을 맞아 큰 시름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40만 팔레스타인 주민이 장벽 안에 갇혀**

분리장벽 건설은 팔레스타인 전체의 문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작성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샤론 정권의 계획대로 장벽건설이 마무리될 경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전체면적의 16.6%(약 975평방km)가 1967년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경계선인 이른바 그린 존(Green Zone)과 장벽 사이에 가두어져 버린다. 그 안에 갇히게 될 팔레스타인 주민은 약 23만7천명. 여기에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접경지역인 제리코처럼 장벽 안의 ‘고립된 섬’에 갇히는 주민들도 16만명에 이르게 된다. 그 주민들은 감옥에 갇힌 죄수나 다름없는 처지로 바뀐다.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서안지구 북부 칼킬랴 지역이다. 이스라엘 평화운동 인권단체인 구쉬 샬롬이 낸 한 자료에 따르면, 칼킬랴 장벽 건설로 그 지역 일대 67개 마을주민 21만명이 심각한 영향을 입을 것이고, 특히 13개 마을 1만1천7백명은 6일전쟁 당시의 경계선과 장벽 사이에 갇혀 버렸다. 팔레스타인 노동부장관 가산 카티브를 비롯한 비판자들은 ”분리장벽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Apartheid)보다 더 악랄한 인종청소 음모“라고 지적한다.

<사진2. 분리장벽 곁에 선 동예루살렘의 어린이들도 이 장벽이 곧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김재명)

동예루살렘도 분리장벽 건설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언젠가 들어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꼽히는 동예루살렘 바깥을 삥 둘러싸고 보안장벽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루살렘 전체를 유대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욕심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지난 2000년 가을 클린턴 미 행정부 막바지에 클린턴 중재 아래 이뤄졌던 중동평화협상에서도 예루살렘 경계선 설정 문제는 회담의 큰 걸림돌이었다. 2000년 9월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일어난 것도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 경계선에 자리잡은 알-아크사 이슬람 사원에 아리엘 샤론(당시 야당인 리쿠드당 지도자)이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 분리장벽은 지금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장벽들이 완성된다면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가까이 사는 주민들이 장벽 바깥과 고립된다. 그들은 나치 히틀러 시절의 유대인 게토처럼 주거지역이 제한을 받는 ‘21세기의 중동판(版) 게토’ 안에서 지내야 할 판이다. 아울러 장벽 바깥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동예루살렘 안에 있는 직장, 학교를 다니는 데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이미 라말라나 베들레헴을 비롯해 다른 지역들에 설치된 이스라엘 검문소 경우에서 보듯, 주민들의 통행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군은 ‘보안검색’을 내세워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기 일쑤이고, 걸핏하면 검문소를 닫아 오고가는 길을 막는다. 동예루살렘에 장벽이 건설됨으로써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팔레스타인 주민은 12만명쯤이다.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고싶지 않아!”**

동예루살렘 아부 디스 지역은 분리장벽 건설을 반대하는 데모가 벌어지곤 하는 곳이다. 그 지역에 가보니, 아직은 완전한 형태의 장벽을 세우지 않고 남쪽편 벼랑에 틈을 만들어놓았다. 젊은 남자들이야 그 틈새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데 큰 불편은 없지만,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문제다. 발을 헛디뎠다간, 벼랑 밑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을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필자가 그곳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힘겹게 발걸음을 떼며 장벽을 넘거나, 어른들이 어린이를 번쩍 안아 장벽 사이로 넘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3.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분리장벽 지도(ⓒ구쉬 샬롬)

그곳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대학생 하산(22)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비타니 마을에 사는 하산은 장벽이 완성될 경우, 장벽 안에 있는 알-쿠즈 대학 역사과에서 공부하기가 어려워진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남동생도 동예루살렘 안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가 곤란해진다. 하산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점령정책에 고부분하지 않은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집단적 징벌을 가해왔다. 분리장벽은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거대한 감옥에 가두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필자와 말을 나누던 하산은 서예루살렘(이스라엘) 쪽을 노려보며 끝내 속에서 누르고 있던 울분을 토해낸다. “이 **들아! 우린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고싶지 않아!”

1967년 6일전쟁이 터질 무렵 동서 예루살렘 경계선에 자리한 구시가지에서 살던 파라이 노인(69)은 전쟁 통에 집을 유대인에게 빼앗겼다. 지금은 동예루살렘 외곽마을인 에이자일랴 마을에 산다. 장벽 건설로 가족들이 겪을 불편을 생각해,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마을로 이사를 가려는 중이다. 그러나 월세는 이미 터무니 없이 올랐다. 수요공급의 불균형이란 시장논리가 팔레스타인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 분리장벽 안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건물 신축 또는 재건축이 금지됐다. 장벽 건설로 심각한 생존 위협에 놓인 예루살렘 동북부 아-람 마을을 비롯한 일부 주민들은 단식투쟁까지 벌였으나, 샤론 이스라엘 정권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그들이 실낱같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장벽건설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과 이스라엘 법원이 내놓은 판결이다.

***“장벽건설은 국제인권법 위반” 판결**

<사진4 동예루살렘 분리장벽 지도. 붉은 선을 따라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베첼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7월 9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분리장벽 건설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동권과 직업선택권, 교육 및 의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명백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연말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그동안 심리를 진행해온 ICJ는 59쪽 분량의 결정문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는 장벽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철거에 나서라. 아울러 장벽건설로 말미암아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적정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은 어디까지나 ‘권고 결의’이고 따라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 ‘깡패국가’로 비판받아온 이스라엘의 도덕성을 다시 한번 먹칠하는 역사적 심판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 샤론 수상은 ICJ 판결 소식을 듣고 “장벽건설은 테러를 막기 위한 것이니만큼,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따를 이유가 전혀 없다”며 겉으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중동 평화협상에서 현실적인 힘을 지닌 미국이다. 미 부시행정부는 그동안 “장벽 건설은 테러리스트들을 막기 위해서다. 그것은 정치문제다. ICJ가 안보나 정치문제에 관여해선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막상 판결이 내려지자, 부시행정부는 “이스라엘은 생존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이스라엘 손을 들어주었다. ICJ 재판관 15명 가운데 홀로 반대표를 던진 판사가 미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는 5백만 유대인들은 태생적 모국을 위해 워싱턴 정치권에 막강 로비군단을 형성, ‘이스라엘 감싸안기’ 분위기를 이끌어왔다.

<사진5. 힘들게 분리장벽 틈새를 오르내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김재명)

지난 6월 30일 이스라엘 고등법원도 보안을 내세워 마을 주민들이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면서 샤론 수상의 밀어붙이기식 장벽건설을 비판했다. “예루살렘 북쪽 7개 마을을 지나는 30km 장벽 건설이 마을주민들의 삶을 심각하게 파괴하므로 건설계획을 취소하라”는 것이 판결요지다. 현재 이스라엘 법원에는 20건의 이와 비슷한 소송이 기다리는 중이다. 이스라엘 샤론 정권은 높아가는 국제사회의 비판여론과 예상치 못한 국내법원의 판결 결과에 따라 일부 장벽건설 계획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장벽 건설을 밀어붙인다는 자세를 바꾼 것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내부의 양심들**

분리장벽 건설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판여론이 높다. 지난 3월 예비역 장성을 포함한 이스라엘 예비군 소속 장교 101명은 “분리장벽 건설을 중단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이스라엘 각료들에게 보내 화제를 모았었다. 이 편지는 “분리장벽 건설을 강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이 더욱 위험에 빠지게 됐다. 장벽건설을 막지 않는다면, 그에 따라 늘어날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피로써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베첼렘(B'Tselem, 점령지역 인권을 위한 이스라엘 정보센터), 구쉬 샬롬(Gush Shalom), 지금 평화(Peqace Now) 같은 이스라엘 평화운동 인권단체들도 아리엘 샤론 정권이 장벽건설을 추진해온 2002년 6월 이래 줄기차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들 인권단체들은 가두시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스라엘 내부의 반대여론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올봄 들어 예루살렘 동북부 지역인 아-람 마을의 주민들이 장벽건설에 반대하는 단식투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 평화운동 인권단체들이 적극 도와주었다.

<사진6. 분리장벽에 쓰여진 문구는 미국의 일방적 친이스라엘 정책을 비난한다(ⓒ 김재명)

“아랍인과 유대인이 중동 땅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을 인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이들 평화운동가들은 아-람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항의시위를 벌이다, 이스라엘 군이 쏜 최루탄과 곤봉세례를 맞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우파 정당이나 언론들은 이들을 ‘배신자’ ‘반역자’라고 손가락질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목소리는 샤론 같은 극우파 정치인이 득세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아직은 소수파의 목소리일 뿐이다.

***“가자지역 유대인이 철수하면 이곳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유대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아리엘 샤론의 계산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동예루살렘 주변은 유대인 정착촌으로 포위된 상태다. 북쪽은 피스가트 제브 정착촌과 네베 야아콘 정착촌, 동쪽은 마알레 아두민 정착촌과 미쇼르 아두민 정착촌, 남쪽은 베타르 정착촌과 구쉬 에치온 정착촌이 자리잡았다. 정착촌 건설은 계속 중이다. 2002년 6월 필자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예루살렘 동쪽 마알레 아두민 정착촌 바로 남쪽에는 한 정착촌이 건설 중이었다. 그런데 꼭 2년 뒤인 올해 6월에 가보니, ‘케다르 정착촌’이란 이름의 거대한 주거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7. 장벽건설 현장을 지키는 유대인 경비원들. 왼쪽은 이디오피아에서 이민 온 아프리카 유대인이다(ⓒ 김재명)

이들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들은 이미 동예루살렘 안에 들어선 크고 작은 정착촌과 함께 동예루살렘을 둘러싼 모습이다. 이들 정착촌들은 “언제가 들어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도로는 동예루살렘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여겨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웃는 현실적인 암초들이다(부시행정부가 중개한 이른바 중동평화 이정표에 따르면, 2005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로 돼 있지만,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동예루살렘에서 만난 주민들은 장벽 건설이 결국은 그들의 삶의 둥지를 앗아갈 것이란 불길한 예감을 이미 느끼고 있다. ”샤론이 가자지역에서 유대인들을 철수시킨다고 요란스레 선전하지만, 그들이 결국은 이곳 동예루살렘 쪽으로 오지 않겠냐“고 근심스런 얼굴이다. 생존에 허덕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장벽건설 현장의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것은 오늘의 팔레스타인이 지닌 또다른 비애다.

(이 글은 월간 <말> 8월호에 필자가 쓴 글 가운데 분리장벽 부분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것이다. 곧 발행될 <말>지 8월호 관련기사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kimsphoto@yahoo.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