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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사태, '여론조사'와 '여론조작'은 한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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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사태, '여론조사'와 '여론조작'은 한끗 차이

[김주언의 '언터처블']<1> 여론조사는 과학적 방법의 하나일 뿐

'여론조사'인가, '여론조작'인가. 여야 정당들이 이번 총선에서 후보 경선에 여론조사를 전면 도입하면서 여론조사의 효용성을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야권후보를 단일화하는 야권연대 과정에서 불거진 여론조사 조작논란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핵폭탄으로 등장했다. 서울 관악을의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거짓답변 의혹은 진보세력의 도덕성 논란을 넘어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제동이 걸리는 뇌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중요한 정치행위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정치행위를 이를 통해 결정할 만큼 여론조사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국민 여론을 정확하게 진단하지도 못할뿐더러 조사 과정에 부정이 개입되거나 결과가 왜곡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론조사를 만능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총선에서 공천이나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방식에 주로 의존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의 근본적 결함을 무시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뉴시스
여론조사는 '객관적 근거'라는 이름 아래 중요한 정치행사에 활용됐다.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도구로 활용됐다.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경선에 적용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론조사가 후보를 결정하는 '전가의 보도' 역할을 했다. 새누리당은 현역의원 25%를 탈락시키거나 일부 지역의 후보를 경선하는 데 여론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민주통합당도 자당의 경선 과정뿐 아니라 통합진보당과의 야권후보 단일화에도 여론조사를 도입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절차는 물론, 진행방식에도 빈틈이 많다. 특정세력이 개입하면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조작으로 악용될 위험도 안고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을 앞두고 조직력과 자금력이 풍부한 예비후보들은 5~6개월 전부터 여론조사에 대비한 특별 대응팀을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성도가 높은 300명쯤의 주민을 모은 뒤 여론조사 대응법을 가르친 뒤 집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토록 한다. 지역이나 연령대를 보정하여 사전에 조별로 나이대를 지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을 들어주는 여론조사 기관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조사과정에서 특정세력이 개입할 여지는 많다. 여론조사는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표본 집단을 선정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따라서 모집단을 대표하는 여론을 찾아내려면 연령과 성별 등의 비율이 모집단과 비슷한 표본 집단을 선정해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조작의혹은 표본선정에 개입한 것이다. 이정희 공동대표 보좌관과 이후 밝혀진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 측의 '나이 조작' 문자메시지는 지지자들이 표본 집단에 선정돼 지지율을 높이려는 꼼수였다. 이러한 방식은 새누리당에서도 활용돼 주호영 후보가 지난달 '컷오프 여론조사' 때 지지자들에게 나이대를 바꾸라고 권유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조사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요즘 널리 사용되는 전화 여론조사는 크게 전화 면접원의 임의번호걸기(RDD)와 전화자동응답(ARS) 방식이 있다. 이번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는 두 가지 방식이 절반씩 병행됐다. 이중 ARS 방식은 응답자가 나이를 속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데다 응답률도 3~5%에 불과해 여론을 왜곡할 여지가 많다. RDD 방식도 국별 전화가 분명치 않은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거나 직장에 출근 또는 외출 중인 사람이 제외되는 등 표본선정에 한계가 있다. 집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토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 이정희 공동대표는 RDD 조사에서는 49.96%(김희철 후보 50.04%)를 얻었지만, ARS에선 57.83%로 김희철 후보(42.17%)를 크게 앞섰다.

여론조사는 과학적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표본의 크기와 오차를 무시할 수 없다. 조사 응답률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표본의 크기가 작고 응답률이 떨어지면 모집단을 대표하기 어렵다. 여론조사에는 신뢰수준과 오차범위가 등장한다.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가 ±4.5%라면 9%의 범위 내에서 95%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경선 여론조사에서 9% 이내의 지지율 차이가 났다면, 확실한 우세를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승패를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이번 경선결과를 보면 표본집단이 600명이기 때문에 RDD조사에서는 김 후보가 불과 1명을 더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표본수가 적은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후원자와 책임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라면 모두 자당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 설문 문항 과 표본집단 등을 자신에 유리하게 설계해 '제 논에 물 대기' 조사결과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언론사는 제3의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한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수백 개의 군소 여론조사업체가 난립해 공정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은 조사를 의뢰한 예비후보에게 유리한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각 정당의 컷오프 과정에서 "지지율 5%인 후보가 통과하고 50% 후보가 탈락했다"는 일부 예비후보의 문제제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계속 발전해왔으나 아직도 정확성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여론조사 기법이 발전한 미국도 초기에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알프레드 랜든의 우세를 점쳤으나 결과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압승으로 끝났다. 리터러리사는 1000만 개의 투표용지를 각 주의 전화번호와 자동차 등록명세서, 선거인 등록명부에서 추출한 사람들의 집에 우송했고 이중 200만 개의 용지를 회수하여 선거결과를 예측했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로 저소득 계층이 루즈벨트를 지지하는 여론을 읽지 못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국내에서도 여론조사의 오류가 많았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투표마감과 동시에 방송 3사는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15석 정도 많이 차지해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16석을 더 차지해 제1당이 되었다. 여론조사가 방송 사상 최악의 '오보사태'를 몰고 온 것이다. 15대 총선, 17대 총선, 2008년의 18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별 의석수를 제대로 예측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18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한나라당의 의석수를 과다 예측해 국민적 비난을 사기도 했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여론을 조작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에게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와 여론이 우세한 후보를 깎아내리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밴드왜건 효과'에 더 비중을 둔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기왕이면 승자의 편에 서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밴드왜건 효과'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이론도 있다. 이른바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이다. 언론의 여론조사보도는 다수의견으로 나타난 사람들의 의견을 더욱 강력하게 표출시키는 반면 소수 편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침묵시키는 '침묵의 나선' 현상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제시한 노엘레 노이만(Noelle-Neuman)은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존경과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의견과 행동양식이 우세한가에 따라 의견을 갖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에 따라 자신의 의견이 열세에 속하면 침묵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침묵의 나선이론은 여론조사가 선동과 선동에 동원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아직 확고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여론조사를 후보경선이나 연대과정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은 아직 이보다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는 수치로 나타나기 때문에 승패를 분명히 가려내고 패자를 쉽게 설복시킬 수 있어 효용성이 높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부정적 측면이 많을뿐더러 특정세력이 개입해 여론조작에 활용할 여지도 많이 남아 있다. 정치권은 유권자의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고 경쟁력 있고 참신한 후보를 찾아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좋은 방법'의 개발은 아직 장기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보다 효율적이고 수월한 방안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과학적 여론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관위와 정치권, 학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오늘날과 같은 여론조사방식이 개발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많은 오류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각 정당들이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경선방식을 선거법 테두리 안에 넣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우선 여론조사기관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규와 당내 경선 및 단일화 경선 과정의 여론조사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여론조사를 여론조작에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공적 기구를 구성할 필요도 있다. 가령 여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회의 검증을 받지 않은 조사결과는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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