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선일씨 피랍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재추진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고 김선일씨 피랍, 피살 과정에서 정부의 대테러대책과 협상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법안 제정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당의 이같은 움직임에 민주노동당은 "책임을 회피하고 파병을 강행하려는 술수"라며 전면 반발하고 나섰다. 테러방지법은 인권침해소지가 있고 국정원 권한을 과도하게 확대한다는 지적이 있어 지난해 상임위를 통과하고서도 입법이 좌절됐었다.
***우리-한나라, "필요성 공감"**
열린우리당 제1정조위 안영근 위원장은 2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테러방지법안 검토에 이미 착수했고 오늘 중으로 골자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김선일씨 사건을 외교부가 소관했지만 외교부에는 테러관련 주무부서가 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현재 국정원은 이라크 현지에 단 2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어 테러 조직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보망을 형성 한다는 게 불가능한 상태"라며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같은날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천정배 원내대표도 지난해 추진 당시 논란이 있었던 점을 의식한 듯, "대(對)테러센터를 국정원이 지휘하는 형식은 곤란하고 인권침해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추진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와함께, 지난 24일 반기문 외통부 장관도 긴급현안질의 답변을 통해 테러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반 장관은 "테러방지를 위한 관계부처 간의 업무협조를 강화하고, 우방과 정보협조 강화하되 필요시 테러전담부서 설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16대 국회서 안된 테러방지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권이 적극성을 보이는 한편, 한나라당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주장이 나와 정치권의 테러방지법 제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26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된 데서 부터 출발한다"고 단정하고 "국정원의 해외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작년에 야당도 동의해 준 국정원의 테러방지기능에 대해, 당시 정부 여당이 시민단체의 의견을 존중해서 묵살했다"며 "테러방지의 최소한의 기능조차도 정부 여당에서 법안을 폐기해버려 이번에 대처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사실상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민노당, "책임회피, 파병 강행 술수"**
이처럼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지난해 좌절됐던 테러방지법을 부활시킬 조짐을 보이자 민주노동당은 "진상규명과 파병반대 여론을 외면하고 이번 참극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여 파병을 강행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민주노동당 김배곤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게 무소불위 권력을 부여해 군 특수부대 출동 요청, 외국외국인에 대한 사찰활동, 감청 및 통신 제한사유의 확대 등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 체계를 파괴하는 위험요소마저 안고 있는 반인권법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아니었던가"라며 법안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울러 이번 참극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국정원에게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날개마저 달아주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부대변인은 "테러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파병을 철회하는 길밖에는 없다"며 양당에 테러방지법 제정이 아닌 파병 철회로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천정배 대표, "테러방지법은 헌법질서에도 위배된다"더니 **
지난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적극 추진된 테러방지법은 국회 정보위에서 수정안까지 통과했으나 국가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인권단체들과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입법이 좌절된 바 있다.
당시 추진되던 테러방지법은 '테러' 개념이 모호해, 이를 빌미로 대테러활동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테러 단체' 규정도 애매해 국내 반전평화단체가 연계 결사로 묶일 수 있는 등 인권침해의 소지가 농후해 국가인권위를 비롯한 민변, 헌법학교수모임 등 시민사회 전반의 힘으로 입법을 막아낸 것이다.
또한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소관 대테러센터에 출입국 규제 요청권, 감청권, 군의 특수부대 요청권 등을 부여해 국정원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시킨다는 비난을 사기도 앴다.
이점을 지적하며 여야가 합의하에 추진되던 법안을 국회에서 반대한 대표적 인물은 열린우리당 천정배 대표였다.
당시 천 대표는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현 국정원을 인권유린의 대명사였던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안전기획부나 중앙정보부로 회귀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정치권의 법안 제정 움직임에 정면 반발했었다. 그는 또 "국정원은 엄밀히 말해 헌법에 규정된 기관도 아닌데, 집행권을 주는 것은 헌법질서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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