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지식인들은 이라크 현실을 어떻게 볼까.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담 후세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이라크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적인 힘’인 미국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라크의 주요자원이자 미국의 이라크침공 주요원인으로 꼽히는 석유관리문제, 다시 말해 ‘석유주권’을 어떻게 지켜내야 한다고 볼까.
사진(@김재명)
1. 바드다드 시내 고등교육부 건물 앞 후세인 대형 초상화는 훼손돼 보기 흉한 모습이다.
이라크 취재 중 미국에 대해 좋게 말하는 지식인을 흔히 만나지 못한 것은 예상한 대로였다. 후세인 체제 아래 집권 바트당 간부 출신인 전 바그다드대학 법대 학장은 물론이고, 대학교수들이나 신문사 논설위원, 화가에 이르기까지 반미의 목소리를 높였다. 바트당 간부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난 법대 학장이야 그 나름의 충분한 반미 이유를 지녔지만, 현직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반미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또한 그들은 한국군 자이툰부대의 파병에 대해서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딱 한사람 예외가 있다면, 쿠르드족 출신 정치인이다. 한국군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기로 돼있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을 지배하는 정치세력인 ‘쿠르드 민주당’(KDP) 바그다드 지부 2인자인 파라이 알-하이다리만. 그는 “미국이 이라크 정치발전에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1991년 걸프전쟁 뒤 미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안에서 자치를 누려왔기에, 친미적일 수밖에 없다. 알-하이다리만은 한국군 자이툰부대의 아르빌 주둔을 환영한다고 말하면서 “인력보다는 물자를 많이 보내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으로 실리를 챙기는 데 익숙해진 쿠르드족다운 주문이었다.
사진2. “자이툰 부대는 인력보다는 물자를 많이 보내달라” 쿠르드 민주당(KDP) 바드다드 지부 부지부장 파라이 알-하이다리만.
***“미군이 해방자 아니라 점령자임이 분명해졌다”**
바그다드대학 바로 곁에 있는 엘나하레인 대학은 후세인 정권 시절 바트당 간부를 키우던 이른바 엘리트 코스의 대학으로 통했다. 그래서 일명 ‘사담 대학’이라 일컬어졌다. 다른 많은 대학과 마찬가지로 이 대학은 후세인 정권 몰락 뒤 해고 바람이 불었다. 폴 브레머 3세가 이끄는 미 점령당국의 이른바 탈(脫) 바트화 정책에 따라 이라크 32개 대학에서 후세인 충성파로 알려진 바트당 간부 출신의 교수 약 2천명이 물러나고 새 교수들이 임명됐다. 인맥으로 보면, 새 교수들은 미 점령당국과 후세인 정권에 맞섰던 망명자 그룹에 줄을 댄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한사람인 에마드 알-살렘 교수(정치경제학 전공)은 “나는 비록 새로 교수 자리를 딴 사람이지만, 바트당 출신이라고 교수 자리에서 쫓아낸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적이다. 그의 말은 이라크 지식인사회에 반미 감정이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라크 지식인들의 반미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일어난 수감자학대사건이다. 필자가 만난 이라크사람들 중에 “저항세력의 뿌리를 뽑으려면 정보를 캐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문이나 학대가 생겨날 수도 있다”고 이해하는 입장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필자가 바그다드에 닿은 첫날, 이라크 예술인들 22명은 아부 그라이브 감옥 학대사건을 고발하는 거리 전시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만난 화가 카심 엘세프티는 “여성문제나 성(性)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아랍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고 아부 그라이브 사건이 이라크 사회에 던진 충격의 깊이를 전한다.
이라크에서 미 점령당국에 비판적인 이른바 ‘독립신문’이면서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 <아자만> 신문이다. 이 신문의 논설위원 무산나 알-타바크츨리는 지난 1년 사이에 미 점령당국에 큰 실망을 느꼈다. “미군이 처음 바그다드에 들어왔을 때 우린 그들과 카페에서 만나 같이 커피도 마시고 잘 지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나와 내 동료들은 그런 만남을 끊었다. 왜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미군이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자임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군은 한밤중에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군화를 신은 채 사람들 집에 들어가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갔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하거나 들을 때마다 모욕감을 느꼈다”
사진3.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석유주권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엘나하레인 대학 에마드 알-살렘 교수(정치경제학 전공)
<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의 압둘 와하브 알-카사브 사무총장은 “이라크 사람들의 반미감정은 역사가 오래됐다”고 말한다. 미 역대 행정부의 전통적인 일방적 이스라엘 감싸안기를 아랍권 지식인들은 ‘미국-이스라엘 동맹’이라 말한다. 알-카사브는 “이라크 지식인들도 기본적으로 그런 미-이 동맹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 들어와 그 동맹은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한 미-이 동맹의 세력확장 음모의 결과”라는 판단이다.
바그다드대 역사학과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는 <1850-1941년 사이의 미일(美日) 관계>라는 책을 써냈다. 여기서 사브티 교수는 '국가 관계는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도전과 우호라는 두 축을 왔다 갔다 하는 관계'라는 가설 아래 두 나라 사이의 협력과 긴장을 다뤘다. 미국의 극동지역 진출이 일본의 경제발전과 충돌하지 않았을 때는 두 나라가 우호관계였지만, 20세기 들어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둘러싼 패권다툼은 결국 태평양전쟁으로 치달았다는 분석이다.
사브티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미일 관계의 충돌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여긴다. 1980년대 미국은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을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이해를 같이했지만, 그 뒤 미-이라크 두 나라는 서로의 경제이익 관계가 달라져 잇달아 전쟁을 벌이게 됐다는 진단이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후세인이 미국의 석유 야망을 채워주는 양보조치를 했더라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어 사브티 교수는 “석유라는 변수에다 중근동 지역의 군사강국인 이라크를 부담스러워 해온 이스라엘, 이라크를 발판으로 한 미국의 중근동과 서남아시아 패권전략이 더해져 전쟁이 벌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미국의 대중동프로젝트(Big Middle East Project)에 따른 것이라 믿는다. “미국은 중근동지역과 서남아시아 일대의 세력균형을 깨뜨리고 이를 재편성하려는 대중동프로젝트에 따라 이라크를 점령했다”는 논리다. 그는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와 가까이 지내왔던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 독식(獨食)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아울러 “같은 맥락에서, 미군의 침공을 돕는 성격의 한국군 추가 파병을 반길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미 중동프로젝트는 석유와 이스라엘 안보“**
사진4. “미군이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자임이 분명해졌다” <아자만> 신문 논설위원 무산나 알-타바크츨리.
“모든 국가는 점령에 저항한 역사를 지녔다. 미국도 18세기말 영국의 점령에 저항하지 않았느냐” 바그다드대학 국제연구학과장인 하미드 시하브 아흐메드 교수(국제정치학)는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반미저항을 자연스런 현상이라 진단한다. 그는 앞서 사브티 교수가 짚은 ‘대중동프로젝트’를 이라크 침공의 배경으로 이해한다. 국제정치학 전공자답게 아흐메드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시적으로 본다. “이라크를 발판으로 중근동 지역에 미국의 패권을 다지겠다는 이 프로젝트의 실무 지휘자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다. 이 일대에 풍부한 석유자원 획득은 이 프로젝트로 얻는 직접적인 이득의 하나다. 이스라엘 안보도 물론 이 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석유뿐 아니라, 이라크의 지정학적 위치가 미국의 침공을 불렀다” <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 압둘 와하브 알-카사브 사무총장의 진단이다. “이라크는 21세기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미국이 만든 새 중동지도의 중앙을 차지한다. 이스라엘을 사담 후세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반미국가인 이란을 견제하려면 미국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이 전략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보호와 이란 견제, 그리고 이라크 석유지배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30살의 이슬람 성직자 모크타다 알-사드르와 그를 따르는 무장세력 마흐디 군의 반미투쟁을 보는 지식인들의 눈길은 복합적이다. 반미라는 큰 틀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슬람이란 종교적 열광이 지닌 한계가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바그다드대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역사학)는 “알-사드르의 투쟁은 미국의 점령정책에 이라크 민중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는 측면에서 이라크 정치발전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 압둘 와하브 알-카사브 사무총장은 사브티 교수와 얼마간 시각이 다르다. “후세인 절대권력의 붕괴 뒤 이라크는 아직 시민사회의 성숙과는 거리가 먼 단계에 있다. 그런 공백을 알-사드르의 포퓰리즘이 대신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라크에 민주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좀더 뿌리를 내리면, 이라크 민족주의도 단순한 종교적 열광보다 단단한 기반을 갖게될 걸로 여긴다. 그런 점에서 후세인 정권 시절의 이라크 장교들과 병사들이 주축이 된 팔루자 투쟁은 이슬람 시아파가 중심이 된 알-사드르의 투쟁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라크 민족주의적 성향을 더 강하게 띤다고 여긴다.
***“후세인은 잇단 전쟁으로 국력 낭비했다“**
후세인 정권이 사라진 데 대해 많은 이라크 지식인들은 미련을 두지 않는 듯하다. 바트당 출신의 일부 후세인 충성파말고는 “후세인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라는 얘기들이다. 이들의 평가를 모아보면, 집권 전반기 후세인은 석유 국유화 등으로 경제발전에 힘써 이라크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 들어 실정을 거듭해 이라크의 국운을 쇠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란 평가다.
<사진5.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스라엘 동맹의 음모다” <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의 압둘 와하브 알-카사브 사무총장
필자가 만난 지식인들은 초기의 후세인 평가엔 매우 후한 점수를 주었다. 후세인(1927년생)은 혁명아로 자부해왔다. 20대 청년시절엔 이집트의 풍운아 가말 낫세르의 아랍민족주의 영향 아래 이라크 혁명에 뛰어들었고, 31세 때인 1968년엔 바트당의 무혈 쿠데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73년엔 부통령으로서 외국 석유자본의 저항을 무릅쓰고 석유 국유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라크를 ‘아랍의 선진국’으로 탈바꿈시켰다. 따라서 이라크 근대화에 이바지했다고 자부해온 후세인이다.
이라크 사람들은 “아, 그리운 옛날이여”이란 말을 자주 한다. 석유 국유화 뒤 이라크는 경제발전에 주력, ‘이슬람권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라크는 우리 한국보다 잘 살았다. 지금은 교사-경찰 등 하급 공무원의 월급이 160달러쯤이지만, 20년 전에는 300-400달러 수준으로 한국보다 높았다. 이라크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 건설업체의 노동자들이 도로를 닦는 등 이곳에서 일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노동자들은 이라크의 석유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한 가난한 외국 노동자들이었다.
<아자만> 신문 논설위원 무산나 알-타바크츨리는 후세인 공과(功過) 평가에 사뭇 인색하이다. “후세인은 석유 국유화로 쌓은 국부를 잇단 전쟁(1980년대 8년을 끌었던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쿠웨이트 침공, 1991년 걸프전쟁 등)에 쏟아 부었다. 게다가 호화궁전을 짓고 대형 이슬람사원들을 짓는 데 낭비했다. 그 결과 국민의 95%를 빈곤선 아래로 떨어뜨렸다”
***“2개의 지하정당이 조직돼 활동중이다”**
사담 후세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지식인들도 물론 있다. 바그다드대 법대학장으로 있다가 미 점령당국의 탈(脫)바트화 정책(집권 바트당에 몸 담았던 사람들을 공직에서 내쫓는 정책)에 밀려난 수헬 파틀라위 박사가 그 가운데 한사람이다. 올해 63세로 30년 이상 몸담았던 직장에서 강제해직됨으로써 퇴직금이나 연금을 못 받았다. 바그다드 시내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나는 학자이지 군인이나 정치가가 아니다”라는 전제 아래 사담 후세인을 변호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후세인 체제는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아랍권 자원을 착취해온 영미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아랍세계를 지키려는 이슬람의 반식민지운동선상에 서있다”고 주장했다. 후세인의 강압정책과 독재에 대해 묻자, 그는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적으로부터 이라크를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조치”라는 논리를 폈다.
<사진6. “미군의 침공과 점령을 돕는 성격의 한국군 파병을 반대한다” 바그다드대 역사학과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
<국제법> <전쟁법>을 비롯, 32권의 책을 썼다고 밝히는 파틀라위 박사는 “미 CIA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를 구실로 내세워 이라크 석유를 노려 불법 침공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유엔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은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뚜렷한 국제법 위반이며,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수감자 학대는 전쟁범죄 행위로서 1949년 제네바협정을 어긴 사건”이란 얘기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전쟁포로로 잡힌 모든 수감자는 스스로 동의하지 않고는 수감실 바깥으로 끌려나가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부시 미 대통령, 블레어 영국 수상은 물론이고 럼스펠드 미 국방과 산체스 미군 사령관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은 1998년 로마협정에 따라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덧붙여 파틀라위는 “침공군인 미군과 한편이기에 한국군(자이툰 부대) 파병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뒤 후세인 동상이 미군 기중기로 끌어내려지는 걸 보며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렇지만 팔루자 투쟁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떤 희망? 이라크인의 힘으로 다시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희망이다. “현재 비밀리에 바트당 재건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개의 지하정당이 조직됐다고 들었다. 미국과 그 하수인들은 우리의 투쟁을 두려워해 내리 누르겠지만, 반외세 투쟁의 열기를 억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서면서, 그런 미묘한, 듣기에 따라선 위험스런(?) 말을 과감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라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필요하다면 이라크 내전 이끌 수도”**
필자가 만났던 지식인들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미국의 이라크 점령 현실에 대해 한결같이 비판적이란 점이다. 전 바그다드대 법대학장 파틀라위를 빼고는, 후세인 정권 몰락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반미의 한계를 절감한다. “후세인 정권이 지녔던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 이라크 지식인들로 하여금 미 점령자들을 절대적으로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딜레마를 안겨줬다”(<아자만> 신문사 부설 ‘전략연구소’ 압둘 와하브 알-카사브 사무총장). 엘나하레인 대학의 에마드 알-살렘 교수(정치경제학)도 “이라크 현실은 우리 지식인들로 하여금 현실주의자가 되도록 강요한다”고 반미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이라크 지식인들 상당수는 강한 반미감정을 지녔지만,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무조건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이 부닥친 딜레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현실적으로 이라크 치안에 구멍이 생겨난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들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이라크 치안병력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야드 알라위 총리를 우두머리로 한 이라크 임시정부는 이라크 석유기금을 온통 들이부어서라도 이라크 군 양성에 힘써야 한다”(<아자만> 신문 논설위원 무산나 알-타바크츨리).
<사진7. “이면(裏面) 계약으로 미 석유기업들이 이라크 석유이권 챙길 가능성 크다” 바그다드대학 국제연구학과장인 하미드 시하브 아흐메드 교수(국제정치학)
그러나 바그다드대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역사학)는 저항세력을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는 데 반대한다. 그는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이라크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자살폭탄 차량공격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현실을 거부하는 이라크 인들의 분노의 표현이라 여긴다. “이라크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 싸웠지, 자살폭탄을 안고 싸우진 않았다. 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다. 이라크 민중들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하는 짓을 지켜보면서, 저들이 미국의 복슬강아지(poodle)라는 판단이 선다면, 자살폭탄을 포함한 극한적인 저항으로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려 들 것”이라 전망한다.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이란 힘의 축을 잃은 상태에서 내전의 혼란 속에 빠져들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일부 미국의 정세분석가들은 시아-수니-쿠르드 사이의 내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라크 지식인들은 “그럴 확률은 아주 낮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전 바그다드대 법대학장 파틀라위는 “미국은 그들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면, 이라크를 내전의 혼란 속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견해를 비춘다.
그렇지만 바그다드대학 하미드 시하브 아흐메드 교수(국제정치학)는 “내전은 이라크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란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이라크 사람들에게 수니파냐, 시아파냐를 묻는 물음에 이라크인이라 대답하더라”라고 전하자, 아흐메드 교수는 빙긋이 웃으며 “수니-시아를 가리지 않으려는 현상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이라크 인들의 민족적 위기위식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풀이한다.
***“미 대사관, 석유정책 주무를 것이다”**
이라크 석유 관리문제를 보는 시선은 어떨까. 엘나하레인 대학 에마드 알-살렘 교수(정치경제학)는 “이라크 인들이 이라크 자원을 지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석유자원을 미국의 석유회사를 비롯한 사기업이 관리해서는 안되고, 이라크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 석유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그에 따라 미국 석유기업들이 반사적인 이익을 얻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석유 자원의 관리만큼은 이라크 정부가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8. “부시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전범재판을 받아야 한다” 바그다드대 법대학장 수헬 파틀라위 박사
알-살렘 교수는 그러나 미국 석유기업들이 이라크 석유자원에 투자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근시안적이라 여긴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이라크 석유자원 개발에 투자하는 걸 막는 것보다는 이라크 정부가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외국 기업들이 이라크 석유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농단하는 일이 없도록 막는다면, 투자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알-살렘 교수는 그러나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 아흐메드 찰라비의 석유 민영화론에 반대한다. 아흐메드 찰라비는 지난날 기회 있을 때마다 ”이라크 석유의 국가 독점체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혀왔다. 찰라비는 ”석유자원의 국가독점을 풀고, 외국인 자본가들의 직접투자를 통해 이라크 석유산업을 발전시킨다면, 결과적으로 그 이익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해왔다.
바그다드대학 국제연구학과장인 하미드 시하브 아흐메드 교수(국제정치학)는 ”민영화가 되지 않더라도, 이면(裏面) 비밀계약을 통해 미국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사실상 이라크 석유이권을 챙기려 들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한다. 그럴 경우 이라크는 배타적 불평등 계약으로 미 메이저 석유기업들의 배를 불려온 사우디아라비아 꼴이 될 것이라 걱정한다. 아흐메드 교수는 ”미국은 비밀 채널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석유 생산량과 가격 정책에 압력을 행사해왔다“고 말한다.
앞의 알-살렘 교수는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이라크 석유주권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6월 30일부터 주권이 이라크 임시정권에 넘겨진다 하더라도, 각 부처처마다 포진하고 있는 미국인 자문관, 또는 고문(consultant)들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가 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이라크인 장관에게 주요 정책 결정권이 없고 미국인 자문관들이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한다. 현재 이라크 석유부를 비롯한 이라크 임시정부 26개 부처에는 약 2백명의 외국인 고문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미국인으로 알려진다.
필자가 만난 이라크 지식인들은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의 입김이 더욱 커질 것”이라 입을 모은다.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은 파견직원만 1천명에 이라크인 보조 인력이 700명. 한마디로 세계 최대의 미 대사관이다. 지난 4월 이라크 주재 첫 미국대사로 임명된 존 네그로폰테는 유엔대사 출신. 지난해 초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를 시도했을 당시 총대를 멨었다. 그는 6월말로 사라지는 점령군의 이라크 통치기구인 이라크 임시행정청(CPA)의 폴 브레머를 대신해 등장한 새로운 미국의 ‘이라크 총독’으로 여겨진다. 에마드 알-살렘 교수는 “미 대사관이 이라크 임시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이라크는 주권국가라고 보기 어렵게 된다”고 말한다.
이라크 지식인들은 이라크 미래에 대해선 대체로 불안 속에서도 기대를 지닌 듯한 표정들이다. 후세인 체제를 옹호하는 파틀라위 박사(전 바그다드대 법대 학장)마저도 ‘제2의 혁명’을 꿈꾸고 있다. 1968년 쿠데타로 집권했던 바트당의 혁명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희망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후세인 체제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앙샹 레짐’(구체제)이라 여긴다. 그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란 현실을 못 마땅하게 여기며, 아울러 이라크 임시정부의 대미의존이란 한계를 내다본다. 그런 속에서도 (앞의 일부 사람들이 밝혔듯) ‘현실론자’의 입장에 서서, 이라크 임시정부가 ‘석유 주권’을 잘 지켜내 피폐해진 경제발전을 비롯한 국가재건 정책을 잘 펴나가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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