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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지 대한민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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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식민지 대한민국의 자화상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Ⅰ. 아! 대한민국

윤종빈 감독은 이미 <남성의 증명>(2004)과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통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의 사회 제도나 군대와 같은 국가장치들이 한 인간을 어떻게 근대 식민지인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가의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그의 탈근대적 시선은 가족이나 사회 혹은 군대라는 개별적인 근대 국가장치들을 넘어서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에 의문을 제시한다. 물론 대한민국은 다른 여타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고정된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구성원들의 성격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생명체이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작동되는 대한민국은 건강한 생명체가 아니라 마치 봉준호 감독의 <괴물>처럼 독극물의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우리 자신도 우리 자신이 어떤 생명체인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괴물의 생명체가 되어 있다. 그 괴물의 생명체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나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경주 최씨 35대손 충렬공파의 최익현(최민식 분)은 2012년 대한민국의 1퍼센트를 구성하는 괴물 권력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 ⓒ팔레트 픽처스
오늘날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이 대한민국처럼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독일은 과거 동서분단이라는 근대적 비극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유럽연합과 더불어 새로운 독일을 구성하는 나라이고, 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5퍼센트의 백인이 70퍼센트의 흑인과 나머지 유색인들을 차별했던 근대적 인종차별주의 아파르트헤이트 권력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흑백통합의 무지개 나라를 구성하는 중이며, 오늘날의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등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필두로 시작된 서구 유럽 500년 침략의 역사에서 침묵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새로운 탈근대적 가치들을 실현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오늘날과 같은 괴물의 생명체가 아니라 새로운 상생의 생명체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공동선언'은 독일이나 남아프리카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구성하는 토대가 될 수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며 '검찰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처럼 대한민국의 검찰이 대한민국 원주민을 위한 권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였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영화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살아가는 기준은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없이 과거의 향수로 살아가는 생명체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화의 현재는 국가와 사회의 현재에 따라 변화한다. 사회와 국가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을 때, 영화의 생산과 소비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의 말미에는 근대 식민지 대한민국 국가의 범죄가 이루어지는 최고 꼭대기에 "영어는 권력이다"라는 근대 식민지 국가의 신조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최익현의 아들이 최고의 성적으로 검사가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생명체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영어는 권력이다"가 아니라 "영어는 (불어나 스페인어 혹은 일어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언어일 뿐이다"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한반도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을 위한 권력의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원주민의 언어인 한글이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한반도 원주민의 언어인 한글이 권력이 되는 시대여야만 한다.

Ⅱ. 전쟁 범죄국가의 근대 식민지성

대한민국이 모델로 하는 미국이나 일본 혹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근대 국가들은 그들 국가 내부의 범죄자들을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의 식민지 국가들에 침투시켜 식민지들을 건설하여 이룩한 국가들이다. 500년 전 콜럼버스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선원들은 대부분이 스페인 지역의 범죄자들이었으며, 200년 전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식민지를 만들면서 동원된 사람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범죄자들이었고, 150년 전 미국이 멕시코를 침략한 선봉에 선 사람들이 미국의 백인 범죄자들이었고, 100년 전 일본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그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일본의 범죄자들이었다. 이것은 단지 500년 전, 200년 전, 혹은 100년 전의 일만이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이 쿠바 식민지를 지배했던 토대는 근대 갱스터 영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Godfather)>(1972)에 등장하는 것처럼 마피아 범죄 집단들이었다. 이러한 범죄 집단들을 동원한 근대 국가의 전쟁은 오늘날에도 미국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500년 동안 이들 범죄 집단들에 의해서 행해진 가장 큰 범죄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인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에서 원주민 언어를 말살시킨 것이다.

전쟁과 범죄로 이루어진 근대 국가의 또 다른 병폐는 식민지 지역에 또 다른 범죄 집단을 끊임없이 양산시키는 것이다. 소위 범죄로 이루어진 권력의 사닥다리를 만드는 것이 근대 국가의 목표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식민지 범죄 집단은 제국의 범죄 집단이 제공하는 울타리 속에서 만들어진 잉여자본을 가지고 호텔을 짓고, 교회를 만들고, 학교를 설립하고, 병원을 만들고,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호텔, 교회, 학교, 병원, 그리고 기업이 근대 식민지 국가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수천 년 동안 사용된 언어를 가지고 사는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500년 동안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지구촌의 역사는 그러한 범죄 집단의 근대 국가를 설립하거나 그러한 범죄 집단과 대항하여 또 다른 범죄 집단의 근대 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의 역사였다. 오늘날에도 미국 제국주의에 의하여 작동되는 근대국가는 끊임없이 범죄자들을 양산시켜 전쟁을 통하여 전쟁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괴물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남아프리카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들은 전쟁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국가가 아니라 그곳의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평화의 희망을 먹고 자라나는 국가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

문제는 경주 최씨 35대손 충렬공파를 자랑으로 여기는 유교적 가부장주의에 물들어 있는 최익현이 60년대와 70년대의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 속에서 배운 근대교육과 공무원의 경험을 통하여 전쟁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근대 식민지인이라는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는 60년대와 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이 대한민국 원주민의 권력에 의해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범죄 집단에 의해서 대통령의 권좌에 오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전쟁과 같은 범죄의 피를 먹고 살아가는 괴물이 된 것이다. 문제는 박정희의 유신정권 이후 최초로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정권이 만드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나 최익현은 노무현 정권이 만든 '범죄와의 전쟁'이 가지고 있는 근대 식민지성을 잘 알고 있다. 마치 지난 500년 동안의 지구촌 범죄 집단들처럼 근대 대한민국이 미국의 베트남 침략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가하여 근대 제국주의 국가가 가지는 잉여자본을 나누어 받아 성장한 것처럼, 노무현 정권이 비록 국민의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 권력의 구성원들이 모두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근대 식민지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최익현은 잘 알고 있다.

최익현이 자신의 권력 너머에서 더 커다란 범죄 집단이 자신들의 범죄성을 숨기기 위하여 만드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근대 식민지성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최익현의 근대 식민지성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마치 우리들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배반과 모략 그리고 아부가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배우고 경험한 '유교적 가부장주의'이다. 대한민국의 근대 식민지성은 지난 근대화 과정에서 문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정치학이나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에서 영어를 비롯하여 서구의 언어와 논리 그리고 사유체계를 통하여 그렇게 극복하고자 했던 전근대의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전근대에서 벗어나 근대의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양반과 상놈이라는 전근대 조선의 신분체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신분체계와 근대 식민지 대한민국의 신분체계가 갖는 차이는 전자가 원주민의 언어가 아닌 한문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식민지 대한민국의 신분체계가 영어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교육이 한문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오늘날의 교육은 영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Ⅲ. 미래의 희망

<범죄와의 전쟁>은 손자의 돌잔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최익현이 범죄 집단의 대부였던 최형배(하정우 분)의 "대부님"이라는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그것이 최익현의 환청이든지 혹은 최형배의 진짜 목소리든지 간에 <범죄와의 전쟁>은 2012년의 현재에서 막을 내린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의 범죄 집단이 만든 권력과 그들의 노력과 후원으로 만들어진 최익현의 아들이 구성하고 있는 영어의 권력 사이에 우리들의 아버지와 형제들 중의 하나인 최익현의 권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다. 그것은 최익현의 죽음이다. 그러나 최익현의 아들이 구성하는 영어의 권력이 최익현의 죽음과 더불어 끝날 것인지, 아니면 최형배의 범죄 집단과 결합하여 새로운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최익현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새롭게 자신이 배운 영어의 지식을 원주민의 언어와 삶을 양육시키고 생성시키는 새로운 원주민의 권력으로 거듭날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희망과 기대가 없으면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없으면 현재는 항상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근대 식민지 국가의 경험과 더불어 탈근대의 국가로 접어드는 경험도 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더불어 "영어는 (권력이 아니라) 제국의 언어일 뿐이다"라거나 "지식은 그 지역 원주민들의 권력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수나 교사, 혹은 학생들에 의하여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하는 최익현이 범죄 집단과 더불어 만든 호텔처럼 근대 식민지성의 범죄 집단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과거의 조선대학교, 인천대학교, 상지대학교와 같은 범죄 집단으로 구성된 유교적 가부장주의 대학들이나 중고등학교들을 민주화시킨 경험이 있고, 교회를 미국이나 서구 유럽의 식민지 교회가 아니라 원주민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만든 새로운 기독교 사제들과 신도들의 경험이 있다. 비록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를 계승하는 이명박 정부가 상지대학교를 다시 범죄 집단에게 넘겨주고,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복직시킨 민주교사들을 다시 해임시켰지만, 근대 식민지성에서 벗어났던 과거의 경험은 2013년 혹은 그 이후의 미래를 희망하고 기대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한 희망과 기대가 2012년에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고, 모든 지구촌 시민들과 상생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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