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노르망디의 D-Day 기념식은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아닌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이날 초대된 부시 대통령은 나치 치하의 유럽을 해방한 ‘미국’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유럽 방문 직전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대테러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사성을 강조함으로써 불량배 나치와 이라크 독재를 연계시키려 했다. 나치즘의 ‘악’은 여전히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며 1944년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투쟁이야말로 유일한 ‘선’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이분법이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미영 연합군은 유럽 도처에서 환영받았지만 이라크 파병 미영 연합군은 자살폭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또 히틀러의 대량살상 저지를 위한 대규모 상륙작전의 명분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전세계에 반미 기류를 조성했고 아랍국가들은 부시의 외교정책을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참전국은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서구사회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라크전은 유럽인들의 반미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반(反)부시 정서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풍자영화 <화씨 911(Fahrenheit 9.11)>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하고 20여분 동안 갈채를 보낸 한 문화엘리트의 괴벽스런 울분의 표현과는 다른 것이다. 또 독일과 프랑스만의 특이한 감정표출도 아니다. 예컨대 친(親)부시정책으로 일관한 스페인의 전 아스나르 총리는 지난 마드리드 테러 이후 스페인 국민의 심판을 받아 재집권에 실패했으며 이번 유럽방문시 대규모 반부시 시위를 벌인 이태리 유권자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이라크 파병을 심판할 것이다.
특히 2차대전 패전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후복구의 발판을 마련한 독일이 ‘반부시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 반면, 프랑스는 팍스 아메리카에 대한 대응으로서 유럽의 지도적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이번 부시 방문을 앞두고 ‘부시에 No, 미국에 Thanks’라는 수사(修辭)로 프랑스의 여론을 대변했다. 파비우스(Laurent Fabius) 전 프랑스 총리도 “부시 대통령은 프랑스가 경의를 표하는 미국적 가치와 정반대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부시의 방문은 6월 6일의 아이러니다”라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정부는 또 나토(NATO)의 이라크전 개입과 미국의 대중동구상(Great Middle East)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거부할 것으로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Sueddeutsche Zeitung 6월 4일자)이 보도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새 유럽’인 폴란드는 반부시 정서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폴란드인들은 미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타계한 로날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지난 1987년 6월 12일 베를린 연설에서 베를린 장벽 철거를 옛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했었다. 또 현 부시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유럽대륙의 재통합과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억압을 중단할 것을 종용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의 민주적 세계질서를 위해 이렇다할 정치적 비전를 제시한 바 없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유럽인들은 각별한 애정이나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유럽방문은 미국의 이라크 개전에 강력히 반대해온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울러 부시 대통령은 다가오는 대선을 고려, 로마 교황과 유럽 각국 정상들의 지지를 확보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유럽 정치권 내에는 부시의 외교정책에 동조하지 않고 도덕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독일 주간 디 차이트(Die Zeit 6월 3일자)는 다가올 미 대선에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부시와의 회동 자체가 유럽정치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만약 존 케리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세계 외교안보질서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신문은 보도했다. 미국은 유엔(UN)이나 유럽연합(EU)의 승인없이도 전쟁 수행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정권 교체는 실질적인 변화가 되리라는 시각이 힘을 받고 있다. 예컨대, 최근 외교적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약속한 케리 후보가 오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주요 외교안보 사안에서 유럽정상들의 동의와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민주적 절차의 옷을 걸친 미국의 세계경찰임무 분담 제안을 유럽이 거부할 경우, 이는 역으로 미국 신보수주의 ‘카우보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는 점이다. 비민주적인 대통령으로 유럽인의 질타를 받고있는 부시 대통령이 유럽정치권에겐 오히려 ‘No’라고 말하기 쉬운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지난 9.11 테러참사를 도구화하여 자신의 부실한 정치적 내용을 강화했던 정치인이다. 즉, 자신과 행정부를 변화된 현실의 체화(體化)로서 주장함으로써 대통령직 수행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비인간적인 이라크 포로 학대, 불명확한 이라크 개전의 근거 등 권력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부시 대통령은 노르망디 방문을 훼손된 도덕성 회복의 기회로 삼았다. 1944년의 연합군과 오늘의 이라크 파병을 대비시키려는 책략이다.
부시 대통령이 경제적 이권과 석유자본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이른바 제3세계 착취라는 테제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오히려 유럽인들이 진정 부시 대통령에 염증을 느끼 건 냉전시대적 언어 구사 - 역사적 임무, 세대적 과제, 자유진영의 적, 자기방어 그리고 승리 – 에 담긴 선과 악의 이분법, 바로 일종의 도덕적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현 슈뢰더 독일 총리와 요쉬카 피셔 외무장관 세대가 주도했던 지난 68혁명의 이데올로기 논쟁 이후 유럽은 탈이데올로기의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 과정을 심화시켜왔다. 물론 21세기의 세계정치권에 다시 역사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논쟁이 유발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역사적 과제를 짊어지고 역사의 수레 바퀴를 돌리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갈채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들은 유럽인들에게 지난 20세기의 이데올로기 논쟁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1944년 6월 6일은 나치 독재의 종말과 현대 유럽사회의 시작을 의미하는 날이다. 이제 탈이데올로기 사회의 유럽인들은 지난 세기를 장식했던 언어들을 반복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물며 허풍과 조작으로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진 부시 대통령의 ‘너무나 이데올로기적인’ 언어는 탈이데올로기화한 유럽인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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