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은 주한미군 전체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천500명을 내년말까지 감축하겠다다고 한국정부에 통보해왔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통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언제 또 터져나올지 모를 미국의 추가조치를 우려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이와 같은 부산한 반응을 바라보며 아직도 한국외교는 그 특유의 ‘ 뒷북치기 외교’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 같아 씁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아직도 이렇다 할 국가외교전략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한국. 이에 비해 한반도 이해당사국은 저마다 21세기형 국가생존전략 다지기에 몰두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 통보가 있던 즈음 일본과 중국의 전략적 움직임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일본. 지난 7일 아사히신문은 미국 관리와의 인터뷰를 인용, “전세계의 미군 재배치(GPR)는 이제 초보적 분석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작성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하며 “단계적 삭감이 예정된 주한미군과 달리 주일미군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 ”이라 보도했다. 아사히는 또한 “미국은 해외주둔 재편작업의 일환으로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일부를 홋카이도에 있는 육상자위대 기지로 이전시키는 방안을 일본에 타진했다”고 보도하며 이는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의 자마기지 이전과 일본 항공자위대 사령부의 요코다 미 공군기지 이전과도 맞물린 주일미군과 일본자위대의 통합운영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GPR에 따른 주일미군 강화 및 이를 통한 미ㆍ일 동맹강화에 대해 중국의 국제관계 전문가는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GPR은 사실상 일본의 경제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21세기 외교의 핵심 축을 ‘변함없는 대미추종전략’에 두고 있는 일본정부로서는 적극 환영할 움직임이 아닌가. 미국으로서도 한국과 달리 미국의 요청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며 GPR을 가속화시켜 주고 있는 일본이 예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분석한다. 미ㆍ일의 찰떡 궁합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같은 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더 나아가 “미ㆍ일 양국은 일본을 향해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공동 군사훈련을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주한미군의 감축 통보로 한반도가 온통 떠들썩하던 날에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외유 준비에 분주하기만 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8일부터 무려 11일간의 일정으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 3개국을 순방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다.
후 주석은 2004년 들어서만도 1월에는 프랑스, 이집트 그리고 가봉을, 5월에는 러시아를 방문한 바 있다. 그런데 이집트와 가봉은 중국의 에너지확보 국가전략 차원이며, 프랑스와 러시아 순방은 유일 패권국 미국에 대항할 새로운 다자체제 수립을 위한 것이었다. 또 이번 동유럽 방문 및 상하이 협력기구 참가는 확대 개편된 유럽국가(EU) 신입국가들과의 유대관계 조성과 이미 다져진 관계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상하이의 한 대학부설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그의 연이은 해외순방은 중국의 21세기 외교전략인 ‘나비외교’를 착실히 진행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고 해석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이 중국을 다각적으로 체크하며 견제하고 있는 데 대해 중국은 러시아, 독일 등 유라시아 대륙 국가와 EU 등 중국의 왼쪽에 위치한 국가들과 일본, 미국 등 중국의 오른쪽에 위치한 환태평양 국가들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치우지지 않는 균형잡힌 외교를 추진하면서 중국국익이 극대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나비의 양날개가 잘 균형잡혔을 때 날아오를 수 있듯이 말이다. 이와 같이 동서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구외교전략에서 탈피, 급변하는 국제환경을 반영한 신외교전략으로 전환중인 중국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구시대적 미군기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로 긍정적인 일"이라는 평가(관영 신화통신)가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할 바 없다 하겠다.
한편 한국의 한 고위 외교당국자는 이미 발표된 주한미군 감축계획 외에 또 다른 추가 감축계획은 없다고 했다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 한 일본인 국제평론가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에게 매달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시기와 규모에는 다소 차이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현 주변상황을 볼 때 주한미군 감축은 어차피 기정사실이 아닌가. 한국은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를 계기로 이제라도 새로운 중장기적 외교전략을 수립, 그 안에서 다양한 전술을 개발, 활용해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관계는 국익(國益)이지 정(情)이 아니지 않은가”.
미ㆍ일동맹 강화를 통한 동아시아에서의 국익강화를 도모하는 미국, 변함없는 친미일변도 외교전략으로 일ㆍ미 동맹을 통한 국가안보 확보 및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 그리고 나비외교전략을 통한 주변 강국들과의 균형외교전략을 추진함으로써 국가생존 및 경제발전을 다져가는 중국.
그렇다면 이들 국가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21세기 한국의 외교전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이에 대해 필자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중견국가로서의 면모를 잘 활용함과 동시에 화려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세계일류’를 지향하는 “까치 외교”가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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