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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확대, 민주적 세계질서 수립의 계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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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확대, 민주적 세계질서 수립의 계기 될까

서명준의 '베를린통신' <3>

유럽통일은 이미 오래된 정치적 이상이었다. 로마제국 이후 독일 칼 대제가 그리고 나폴레옹이 유럽대륙을 통일한 바 있다. 그 후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전체주의 방식으로 유럽통일을 노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세계대전의 참상이었다.

2004년 5월을 기점으로 세계는 폴란드에서 말타까지 4억5천만의 인구를 포괄하는 거대 경제공동체의 탄생을 보고있다. 그러나 지난 5월 1일 확대 이후 지난 세기의 정치적 분열을 극복한 유럽연합은 아직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올해안으로 헌법이 제정될 예정임에 따라 점차 국가의 틀을 형성해 가고 있다. 유럽연합의 정체(政體)를 규정하는 헌법 제정은 이미 유럽 정치권의 오래된 테마이자 유럽 정치통합의 실질적인 완성을 의미한다.

사실 유럽 정체의 논의는 유럽공동체 논의보다 더 오래되었다. 예컨대, 2차대전후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그리고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국’을 통합유럽의 국가모델로 제시했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가능한 유럽연합의 정체를 원칙적으로 회원국들이 연방에 귀속되는 이른바 연방주의(Federation)와 회원국 정부가 우선권을 갖는 정부연합체 (Confederation) 의 2가지 형태로 보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의 정체 논의는 이 두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이루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1일 유럽연합 확대의 축포를 뒤로 하면서 이 논의는 더욱 복잡해졌다. 예컨대 공동안보방위정책과 같은 사안에서 25개 회원국의 합의를 이끌어내 단일한 입장을 견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이라크전에서 유럽 각국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이를 고려할 때 향후 유럽연합의 정치체제는 위의 두가지 대안의 적절한 배합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이미 지난 2000년 요쉬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베를린 대학에서 유럽통합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강연하는 자리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중심의 연방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유럽연합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관여한다는 원칙이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며 “이렇게 해서 작고 효율적인 연방정부 구성이 가능하며 동시에 각국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단일 헌법은 무엇보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질서와 회원국간의 새로운 관계 규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 12월 브뤼셀 정삼회담에서 있은 헌법 제정 논의는 회원국간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오는 6월로 미루어졌다. 게다가 최근 영국의 블레어 수상은 헌법제정과 관련, 기존 하원 비준입장에서 국민투표 실시로 돌연 입장을 바꿔 파문이 일기도 했다. 영국 등 주요국에서 헌법안이 부결될 경우 유럽연합 통합 논의 자체가 표류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발레리 지스까르 데스탕 전 프랑스 대통령이 작성한 헌법초안은 4/5에 해당하는 회원국의 비준이 있을 경우, 유럽연합 각료이사회가 헌법제정 작업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일단 헌법 제정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안에 따르면 회원국은 자국 헌법에 의거,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헌법안 합의에 실패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할 경우 유럽통일의 원대한 정치적 이상은 물거품이 된다.

헌법안은 또 유럽연합 의회가 집행위 의장을 선출하도록 의회 기능을 강화했으며 외무장관직을 신설하도록 해 단일한 유럽 공동외교정책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확대 이후 헌법 제정, 외무장관직 신설 등을 통해 대외 정치력 강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연합이 세계정치에서 미국의 독주를 막는 정치적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시각이 힘을 받고있다.

사실 미국에게 유럽은 ‘믿음직스런’ 친구이자 ‘게임’의 훼방꾼이다. 이라크전에서 보이듯 부시 행정부에게 영국과 폴란드, 이태리의 자발적 협력은 만족스러운 것이지만, 독일과 스페인의 책임회피와 프랑스의 훼방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에게 유럽연합은 미국과의 협력에 충실한 ‘새 유럽’과 반항하는 ‘늙은 유럽’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태리 좌파 이론가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최근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4월 13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새 유럽’과 ‘늙은 유럽’이라는 불화의 씨앗을 뿌리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유럽연합은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통해 세계시장과 유럽연합 내부 기관에서의 독립성을 추구해야할 것”으로 강조했다.

‘Europe is no Island’라는 제목의 이 신문 기고문에서 그는 미국에 의존적인 회원국들의 유럽연합 내 영향력 확대를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규가입국인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보다 미국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다.

이라크전 당시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이 반전 전선을 형성할 때 이들 국가는 미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다. 특히 폴란드는 이라크에 4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결국 미국 주도의 NATO에서 자국의 안보를 보장받고 있는 이 국가들의 미국 지지 입장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 국가는 제2외국어로 대부분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향후 정치적 지위가 상승된 유럽연합은 부시 행정부에게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 같다. 특히 NATO와는 달리 미국이 관여하지 않고 이번 확대 이전부터 세계최대 규모의 공동체였던 유럽연합이 추진해오고 있는 공동안보방위정책은 세계안보질서에서의 미국의 독주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미 미국의 위성항법체계(GPS) 독점에 대항하고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지난 2002년 출범한 유럽 위성항법체계 ‘갈릴레오’ 사업을 2005년 말경 가동할 예정이라고 독일 일간 디 벨트(Die Welt, 2월 23일자 )가 보도했다. 군사적 목적의 미 GPS 체계와는 달리 총 30개의 위성으로 구성된 갈리레오는 민간사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일간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 4월 27일자)은 최근 유럽공동방산업체인 EADS사가 미 보잉사의 방산매출액을 넘어설 것으로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세계질서 독주를 견제할만한 물적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유럽연합이 게임의 훼방꾼인 프랑스처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미국의 우려가 예상된다.

지난 마드리드 참사는 무엇보다 유럽의 안보가 미국의 외교안보정책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프랑스인의 75%, 독일인의 63%, 영국인의 56%가 부시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결별해야 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고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ueddeutsche Zeitung, 4월 22일자)이 한 여론기관의 결과를 인용,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인의 85%는 부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부시 행정부의 침략정책과 단절함으로써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유럽인들의 상황인식이다.

지난 1950년대 유럽통합 추진위원회를 구성, 유럽연합의 초석을 놓아 최초의 유럽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장 모네(Jean Monnet)는 유럽연합이 외교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데 기여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향후 유럽연합이 경제공동체로서만이 아닌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세계질서의 균형을 회복할 만한 정치적 좌표를 설정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럽인들을 반미정서로 단결시켰다. 나아가 확대 이후의 유럽을 이른바 신보수주의에 대한 정치 이데올로기적 대안으로 안토니오 네그리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유럽연합의 ‘정치적 완성’을 민주주의적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계기로 파악하는 유럽 사회운동에 달려있다는 게 이 이태리 출신 이론가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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