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 중에는 국적불명이거나 원어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게 변해버린 정체불명의 신조어가 많다. 고기집을 의미하는 무슨무슨‘가든(garden)'이라든지 불륜의 현장 '러브 호텔(Love Hotel)' 등이 그러하다.
’룸살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룸살롱의 경우는 희한하게도 ‘룸’이라는 영어와 비슷한 의미의 프랑스어 ‘살롱(Salon)'이 부적절하게 결합돼 만들어진 말이다. 물론 단란주점보다 더 고급이고 한번 가면 백만원을 훌쩍 넘기는 비싼 유흥주점이지만, 룸살롱이 주는 느낌은 칙칙하면서도 향락적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어에서 온 '카바레, 살롱, 마담' 등의 단어는 모두가 향락산업과 관계가 있다. 이렇게 자신들이 사랑하는 단어들이 이역만리 한국에서 선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이상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인들이 안다면 엄청나게 다혈질인 그들은 아마도 격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카바레나 살롱, 마담 같은 말들은 프랑스어에서는 한없이 문화적이고 고급스런 말들이며 또한 역사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말들이다. 특히 살롱은 역사의 산물이며 지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말이기까지 하다.
살롱문화는 프랑스가 유럽대륙의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며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던 17세기에 나타나 18세기에 꽃을 활짝 피운 지성적인 문화이다. 프랑스 살롱문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마담(Madame)’이 있었다. 그중 이름난 살롱을 주관했던 귀부인들은 '그랑 담(Grand Dame)'이라고 불렀다. 보통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귀족부인들이 살롱을 주관했는데, 살롱은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철학이나 문학, 예술을 논하는 토론의 장소였고 젊은 학자들이 지배층과 사교를 통해 인맥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계급이동을 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도 했다.
많은 아카데미 프랑세스(프랑스 한림원) 회원을 배출했던 ‘랑베르 부인(Marquise de Lambert, 1647-1753)의 살롱’이나 계몽운동시기 자연철학자나 수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백과전서파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어 ‘백과전서파의 실험실’이라고 불렸던 ‘레삐나스 부인(Julie de Lespinasse,1733-1776)의 살롱’등은 특히 유명했던 살롱이다.
프랑스의 살롱은 단순히 귀족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교를 하는 High Society나 사교클럽이 아니었다. 젊은 지성과 기득권층이 만나 토론하고 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주로 마담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모여 남녀와 신분의 벽을 넘어 토론문화를 만들어 내던 그런 문화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살롱은 지성의 산실이자 토론의 공간이었고, 사교의 장이면서도 남녀간, 계층간 이해의 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살롱문화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순간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말듯이 향락퇴폐문화로 바뀌고 만다. 살롱과 룸살롱은 글자 한 자 차이지만 그 차이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프랑스의 살롱에는 문화와 역사, 이성과 지성이 살아 있었지만 룸살롱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흥청거리는 이성의 마비만이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도 황진이 같은 기생이 선비들과 학문과 문학을 논하고 함께 시를 읊으며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던 세련된 기방문화가 있었건만 어쩌다 이제는 천민자본주의의 음산한 면들만이 기승을 부리는 룸살롱문화가 이리도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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