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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가톨릭의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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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가톨릭의 경계를 넘어

서명준의 '베를린통신' <2> 새로운 정체성 찾는 유럽

유럽 최고의 이슬람 사원이 네덜란드에 건립된다. 그러나 자유와 관용의 도시 로테르담에 건립예정인 이 사원을 로테르담 시는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사원의 첨탑이 로테르담 축구경기장의 전광탑보다 높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성당 첨탑보다 높다는 게 문제였을 것이다. 이는 현대 소비여가사회에서 종교적 가치가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 달 프랑스에서 학교 내 이슬람 스카프 착용금지법이 통과된 데 이어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도 유사법안을 마련했다. 3.11 마드리드 테러로 더욱 불거진 이른바 ‘이슬람 스카프 논쟁’은 이슬람권 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가능성과 맞물려 유럽의 정체성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럽 각국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교사와 학생의 이슬람 스카프 착용을 금지한 프랑스와는 달리 학생의 이슬람 스카프 착용을 허용한 독일은 경찰, 법원 등 공무원의 스카프 착용을 금지했다. 반면, 영국은 회교도 여경이 헬멧 대신 이슬람 스카프를 머리에 두를 수 있으며 로마 교황의 나라 이탈리아에선 최근 한 회교도 여성이 스카프 착용을 이유로 해고되자 반대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이 시위에는 극우 정치인도 참여했다.

사실 이탈리아의 회교도는 소수민족에 불과하므로 이슬람 스카프가 사회문제로 떠오를 만큼 심각하지 않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이민 온 회교도 신자들이, 독일은 터키 이민자들이 국가 주요 노동력일 만큼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의 회교도는 각각 350만명과 500만명으로 집계되나 실제숫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그러나 종교 상징물 착용 논쟁은 오히려 유럽내 종교간 연대를 강화한 것 같다. 프랑스의 국공립학교 여학생이 이슬람 스카프를 문제 삼지 않는 가톨릭계 학교를 찾아 전학을 시도하고 이탈리에선 최근 학교와 법원의 십자가 허용 논쟁에 이슬람 사원의 지도자가 십자가 허용을 변호하고 나섰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은 이슬람의 미덕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축구경기장 전광탑의 높이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노력으로 문화의 확장과 통합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유럽은 정치적으로 종교 문제, 특히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문화적 우월감을 보여왔다. 게다가 자국 고유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넘어서 타문화에 대한 배타적 시각도 잔존하고 있다. 독일 주간 DIE ZEIT(4월1일자)에 따르면, 베를린의 볼프강 후버 주교는 기독교를 자유와 현대의 종교로, 이슬람교를 계몽이 시급한 종교로 다소 작위적인 규정을 내렸다. 교실의 십자가는 인정하지만 교사의 이슬람 스카프는 허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사회가 겪은 일련의 테러를 감안할 때 이슬람이 문화적 다양성이나 또 하나의 종교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폐해와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이 지하드와 깊숙히 관련되어 있음을 베를린의 터키연합회 대표 자프터 치나르(Safter Cinar)는 지적하면서, 3.11 스페인 테러 이후 이슬람을 향한 비난의 화살에 대해 독일 내 회교도들은 테러리즘과의 차별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회교도협의회의 엘리아스(Elyas) 의장도 회교도는 테러리스트와 무관하며 독일내 회교도들이 사회적 기본가치를 존중하며 살고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또 현재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이며 올 초 베를린 여성의 상을 수상한 터키여성 아테스(Ates)는 이슬람이 자살테러종교로 비춰지는 것을 개탄하면서 회교도의 반테러리즘 시위가 단 한차례도 없었음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전 세계에 이슬람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슬람 스카프를 옹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회교도들은 동시에 평화를 위해 시위해야 한다는 게 아테스의 변론이다.

이 밖에도 3.11 마드리드 테러는 이슬람의 국제적 인정을 위해 노력해온 독일 만하임의 이슬람 지도자 탈랏 캄란(Talat Kamran)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독일에 25년을 거주해 온 캄란은 지난 9년간 ‘열린 이슬람’ 프로젝트를 추진, 중고등 학생들의 이슬람 사원 견학을 추진해 왔으나 마드리드 테러 이후 학교로부터 학생들의 부모가 더 이상 사원 견학을 원치 않는다는 서신을 받은 것이다.

“코란은 ‘죄없는 이를 해친 자는 세계를 해친 것이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라며 독일의 다수 회교도들은 테러에 전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에 적응하고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캄란은 주장했다. 독일 정치권은 집권여당인 사민당(SPD)이 당내 이슬람 문제 전담반을 구성, 현재 ‘독일 회교도 마스터플랜’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을 뿐, 독일 내 알 카에다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외에 종교문제와 관련, 이렇다할 정치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 이슬람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이미 역사적으로 오랜된 정체성의 문제다. 11세기 말 십자군 원정에서부터 17세기 오스만투르크의 비엔나 점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과 침략을 겪으면서 유럽은 문화의 정체성 문제에 민감해졌다. 예컨대 터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게 되면 ‘유럽적인 것’의 경계는 무엇이 되는지, ‘이스탄불 소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주민 다수가 이슬람인인 베를린 시의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구(區)가 독일내 문화적 타국이 될 것인지에 대해 독일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는 달리, 9.11 테러가 있은 미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단순히 범죄로 분류되어 경찰과 군대가 관여할 문제일 뿐, 이민자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은 쟁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기독교인인 부시 대통령의 관심은 종교나 문화보다는 석유자본과 전쟁에 있다. 특히 미국의 이민집단은 멕시코 등 라틴계열로 유럽과 다른 인구학적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영어’를 쓰는 백인이 소수민족이 된다는 불안감은 유럽의 사회문화적 문제와는 맥락이 다른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프랑스의 엄격한 이슬람 스카프 금지법은 유럽대륙의 종교적 신념의 발현쯤으로 비춰질 것이며 기독교 예배를 금지하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법륜공 신도를 감옥에 가두는 중국에 비해 신사적인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럽은 30년 전쟁 등 ‘신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강력한 종교지배에 대한 처절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유럽 사회의 발전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종교의 추방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예컨대 최근 인간복제 문제를 두고 유럽 지식인들이 놀랄 만큼 종교적 가치에 충실하다는 점인데, 가톨릭적 가치에 동의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의 의무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세계적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조차 인간복제 논쟁에서 가톨릭을 판단의 준거로 삼고 있다. 이에 유럽이 다시 종교의 지배를 받는 사회로 후퇴하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이슬람 스카프 문제에 이어 유럽연합(EU) 헌법 초안 마련 작업의 막바지에 유럽의 종교적 전통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유럽 헌법 서문에 유럽의 기원과 기독교에 관한 문장은 삽입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 기독교는 유럽연합에서 행군의 나팔을 불기 어려울 것 같다. 한편, 헌법에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을 다같이 언급하자는 주장도 있어 흥미롭다.

그러나 서구사회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감안했을 때, 유럽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은 그 어떤 편협한 종교적 발상에서 비롯된 행동이어서는 안된다. 또 이슬람 문화를 유럽에서 추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설 때 유럽은 오랜 종교적 뿌리를 잃게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설 때 새로운 정체성의 뿌리를 얻을 수 있음을 유럽 정치권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로마 교황은 향후 터키의 유럽가입(EU) 여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미 자국 사회의 일원이 된 타 종교문화의 수용에 대해 이제 유럽의 ‘국가’는 얼마나 효율적인 사회통합방안을 마련할 것인가. 나아가 최근 마드리드 테러 이후 유럽연합(EU)의 확대로 그 어느때보다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유럽 정치권이 기본 인권으로서의 종교의 자유는 물론, 진정한 유럽통합과 확장을 위해 어떠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또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기독교와 이슬람은 이미 상호 이해와 관용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유럽의 국가와 정치권이 이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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