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자마자 탄핵을 추진한 두 야당은 12일 "국정안정이 최우선"이라며 4당대표회담을 제안하는 등 여당 역할을 자임해 생색내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거리로 나서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며 대국민 홍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탄핵 이후 여야가 뒤바뀐 형국이다.
***한나라, "고 총리 적극협조" **
한나라당은 노무현대통령 탄핵안 가결후 고건 총리에게 전폭적인 협조를 할 것을 밝히며 다수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는 방침이다. 당 일각에서는 '국정위원회의' 등의 제안으로 구체적인 당정 협조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13일 오후에 소집된 긴급 확대 당직자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예측가능한 정치로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1당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좋은 정책을 내고 아이디어 차원의 건의를 할 수도 있고, 정부가 제1당에 대한 협조요청을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도 "고건 총리를 예방해서 전폭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려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날 오후 고 총리를 예방하기로 했으나 고 총리의 일정상 전화통화로 대체하기로 했고, "내일 중으로 4당 대표회동을 갖자"고 제안하며 정국 주도권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은 부대변인은 "지금은 헌정 중단이 아니라 헌정 계속 상태"라며 "우리 헌법에는 탄핵에 대비한 모든 것이 다 완비돼 있다"고 밝혀 여론의 역풍 차단에 부심했다.
이들은 '탄핵 역풍'을 우려한 듯, 당 지도부와 대변인 공식 논평 이외의 개별 의원들의 발언이나 성명은 자제하는 것을 의원들에게 권고키로 이날 회의에서 결정했다. 은 부대변인은 "비상한 국면에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해야 하고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당내 입단속에 나섰다. 그는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거국 내각'이나 '총선후 개헌' 등에 대해서도 "논의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은 부대변인은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위한 '국정위원회의'에 대해서는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가시화 되지 않겠나"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 "국정 협조를 위한 4당 대표회담 제안" **
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탄핵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과 혼란을 막기 위해 고건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한치의 차질도 없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민주당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고건 권한대행의 국정보고를 위한 임시국회소집 및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체제에 대한 전폭적 지원, 시국수습책 논의를 위한 4당대표회담 개최를 제의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대표는 또한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강변하며 국민 설득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조 대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은 17대 총선과 관련된 당리당략적 차원이 아니다"며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기본정신에 따라 대통령이라도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한다는 선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우국충정에서 비롯한 결단이었고 불가피한 결단이었다"며 "국민의 평가는 민주당뿐 아니라 탄핵소추에 참여한 모든 의원들이 17대 총선에서 겸허히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열린우리당과의 관계개선책에 대해서는 "탄핵 논란은 이제 종지부를 찍고 국론분열을 치유하기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할 뿐, 경색국면을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조 대표는 또 대통령의 진퇴여부에 대해서는 "민주당에 입장이 있으나 국민 안정이 최대 과제인 시점에서 사임까지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상당기간 대통령 진퇴에 대한 언급은 유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 심판에 대해서는 "법리적, 정치적, 도덕적으로 탄핵사유라는 확신이 있다"며 탄핵결정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 열린우리당, "의회를 떠나 국민 속으로" **
반면에 탄핵안 통과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열린우리당은 야3당을 '의회 쿠데타세력'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떠나 거리로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본회의 직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헌정 수호와 국가 안정을 위한 비상대책 위원회'를 구성해,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를 공동 의장으로 추대했다. 비대위는 국립묘지 참배나 각계 원로를 방문하는 등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정동영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실패했지만 국민 여러분 행동해 달라. 전화 한 통 해 달라.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이 분들의 행동이 얼마나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편지, 전화, 팩스 한 통만 해 달라"며 지지세력의 '행동'을 촉구했다.
정 의장은 또 "대통령직을 다시 살려내겠다. 법률적인,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 대통령직을 다시 살려내는 일에 총력을 다하겠다"며 헌재판결이 나올때까지 강도높은 대야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야당이 제안한 4당 대표회담에 대해서는 "최병렬, 조순형 대표와 김종필 총재 셋이 만나라. 만나서 합당하길 바란다"며 냉소했다.
정 의장이 야 3당을 '지역주의 기생세력', '부패세력'으로 규정하고 "결연하게 싸울 것"을 천명함에 따라 여야 대치 정국은 대통령 탄핵 이전보다 더욱 경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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