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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땅트와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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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땅트와 냉전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14>

국제정치사에 보면 ‘데땅트’란 말이 나온다. 냉전체제가 이완되면서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화해와 공존을 시도했던 70년대의 국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데땅트(détente)’라는 프랑스어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사용되고 있고 국제정치에서는 긴장완화를 가리키는 공식적인 용어로 굳어있다. 프랑스어에서 ‘데땅트’란 말은 긴장완화나 휴식을 뜻한다. 국제정치용어가 돼버린 이상, 일상적인 프랑스어에서도 보통의 휴식을 가리키는 말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70년대 국제정치를 돌아보면 50년대, 60년대 냉전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데땅트’하면 늘 따라다니는 용어는 바로 냉전이다. 우리가 지긋지긋하게 사용해왔고, 실제 현실로서 겪어왔던 것이 바로 냉전 아니던가. 냉전(the cold war)이라는 말은 1947년 미국의 평론가 월터 리프먼이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로 건너와서는 그대로 직역된 채 ‘라 게르 프로와드(la guerre froide)’라고 사용되었다. ‘라(la)’는 정관사이고 ‘게르(guerre)’는 전쟁, ‘포로와드(froide)’는 ‘차가운’이라는 뜻이니, 번역하면 말 그대로 냉전이 된다.

그런데, 냉전은 엄밀히 말하자면 일종의 전쟁이다. 전쟁은 전쟁인데 교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차가운 전쟁, 요즘말로 하면 썰렁한 전쟁이 바로 냉전이다. 무기를 사용하는 열전(hot war)은 아니지만 정치, 경제, 군사, 이데올로기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긴장과 대립을 동반하는 냉전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불만 붙이면 터지는 화약고 같은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때 절정이었던 냉전은 6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서구진영에서는 서독과 일본이 급성장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영국, 프랑스, 중국은 새로운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프랑스는 같은 자유진영에 속하면서도 종주국인 미국과는 각을 세우며 소위 반미 자주외교노선을 주창하게 된다. 사회주의진영도 마찬가지로 균열을 맞게 된다. 중국과 소련은 같은 사회주의 형제국이면서도, 이데올로기분쟁, 국경분쟁을 포함한 치열한 중소분쟁을 치렀다.

세계는 양극체제를 벗어나 차츰 다극화되었고 각 국민국가들은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국익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적대국과도 서슴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1972년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미국은 소련, 중국 등 공산주의 종주국과 화해와 공존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데땅트이다.

데땅트로 인해 냉전구도는 많은 변화를 겪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데땅트가 냉전의 종식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데땅트는 일시적이었을 뿐, 80년대 초반에는 또다시 신냉전시대를 맞게 된다. 결국 냉전의 종식은 20세기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냉전구조를 타개하기 위해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 섬에서 수뇌회담을 갖고 공식적으로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반세기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는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물론 그후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더 이상 냉전체제는 가능하지 않았다.

국제정치라는 큰 틀에서 보면 냉전은 구시대의 유산이다. 하지만 시야를 좁혀 한반도를 보면, 우리 사회가 냉전의 종식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지금도 전쟁의 일시적 중단상태인 휴전상태이고 냉전의 적자인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으며 남북한의 대립도 본질적으로는 해소되고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석학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 1905-1983)은 냉전을 가리켜 ‘전쟁은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평화는 불가능한 상태(guerre improbable, paix impossible)’라고 정의했다. 참으로 명쾌한 정의다. 만약 아롱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지금 남북한의 상황은 여전히 냉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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