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국사회포럼2004>가 '노무현정권과 미국, 그리고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13-15일,KBS 수원연수원) 발표된 글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일방적 무력행사를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하려는 현 부시행정부 세계전략의 본질과 한계를 추적하고 있다. 글의 분량상 다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1. 부시 정권 아래 미국의 국가적 본질
2. 아메리카 제국의 역사
3. 세계적 이행기에 처한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모순과 그 한계
4. 평가와 전략
***1. 부시 정권 아래 미국의 국가적 본질**
오늘날 미국의 국가적 본질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이 문제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가지고 있는 기본 목표와 그 성격을 정리하는 작업에 핵심이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은 다름 아닌 바로 이 미국의 국가적 본질이 자신을 관철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명확히 직시할 때, 우리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위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그 한계를 동시에 짚어낼 수 있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부시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 발생한 자본축적의 위기를 공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독점 대자본과 군사주의 세력이 동맹을 형성한 파시즘 국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파시즘 국가는 (1)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선택에 제동을 걸거나 저항할 수 있는, 공화정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체제의 약화 내지 파괴를 겨냥하고, (2) 밖으로는 일체의 국제주의적 제약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적 무력을 불사하는 세계정복을 통한 제국의 야망 실현을 그 내면의 숨겨진 진정한 목표로 삼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을 중심부의 정점에 세우고 여타 국가들을 지속적으로 주변부적 지위에 머물게 하는 위계질서를 세계체제의 변동하지 않는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국을 필두로 하는 서유럽 자본주의체제와 일본 등이 이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 미국의 지휘를 받는 제국주의 동맹체제를 구성하도록 하며 여타 국가들은 이 위계질서의 하부구조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국에 대하여 도전이나 경쟁이 불가능한 질서의 확대 재생산이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제국주의의 가장 야만적인 단계에 처해 있는 <전쟁국가의 출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전쟁은 제국주의 체제 유지의 항상적 구조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거대한 전쟁기구와 끊임없이 지속되는 전쟁경제는 미국이라는 세계적 자본주의 제국의 유지에 요구되는 필연적 요소임이 증명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국가적 본질은 다시 말하자면, 통상의 방식으로 자본축적전략이 관철되지 못하는 위기국면에서, 국가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독점 대자본의 역사적 이해를 실현시킨다는 파시즘의 본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클린턴 정권 시기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불린 제국주의 전략이 (1) 투기자본의 과잉에 따른 시장의 교란, (2) 과도한 신용팽창에 따른 채무경제의 심화, (3)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운동의 국제적 연대 강화 등에 따라 그대로 전개되기 어렵게 되고 그로써 “아메리카 제국주의 주도권 동요에 직면하면서 위기에 처한 결과적 대응”이라고 하겠다.
즉, 아메리카 독점 대자본의 역사적 이해에 중대한 장애가 생겨났다고 판단한 미국 지배계급의 고강도의 결속과 군사주의 세력의 전진배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부시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요구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이 때 일차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이러한 권력집중을 통한 자본의 이해를 전면화하는 작업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진압이며, 그것은 항구적 비상 조처식의 민주헌정 파괴와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침략과 학살 등 유린행위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부시-체니-럼스펠드>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 미국 국가권력의 중추는 파시스트 삼각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대변하고 있는 독점 대자본과 군사주의 세력의 이해는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을 시도하는 세력은 [문명의 적]으로 지목되며 자신들은 사명감을 가진 [문명의 수호자]로 내세워진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점령정책이 이렇게 “문명과 야만의 대결”로 획정되어지면서 “미국의 승리는 곧 문명권 전체의 승리”로 해석되어지도록 하고, 이로부터 이탈하는 세력은 야만의 대열로 귀속되는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공격 대상인 소위 “악의 축”은 문명권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이러한 윤리적 구조 속에서는 미국의 전쟁정책은 인류 전체를 위한 성스러운 과업이 된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 “성전(聖戰)의 지휘자”로서 비판의 표적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아메리카 제국이 지향하는 가치는 절대화/신성시되고 인류사회는 이에 복종할 때 평화가 보장된다는 식의 논리가 전면화된다고 하겠다.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은 모두 이러한 논지에 바탕을 두고 출발하게 되며 증거나 조건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며, 문명권 전체의 보호와 승리를 위한 선한 의도를 가진 신성한 제국의 판단이기 때문에 옳다는 식의 결론으로 일체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초국적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적 토대에 기반을 둔 미국의 독점 대자본”이 군사주의 세력과 연대하여 자본의 위기의식을 대중들 자신의 안전과 직접 관련된 것처럼 여기고 이들 대중들이 공유하도록 하면서 전쟁정책을 정당화하는 작업이 된다. 이는 이른바 “공포를 활용한 제국의 정치”로서, “새로운 적(敵)의 끊임없는 물색과 불안한 현실에 대한 권력의 보장”이라는 방식으로 <안보국가(Security State)>를 팽창해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중동지역이 그 안보국가의 공격 목표가 된 이유는 에너지원이 풍부한 이 지역에 대한 장악이 곧 제국주의 동맹체제의 일방적 결속에 결정적인 고리가 되고, 그로써 지정학적 패권에 따른 아메리카 제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부시 정권의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국가적 본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초강경 안보국가의 위력을 일체의 도덕적, 법적, 국제적 제약에서부터 풀어내 언제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른바 <선제공격전략(pre-emptive strategy)>을 전쟁정책의 근간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는 미국에게 초국제법적 지위를 스스로 부과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잠재적 선제공격 대상으로 삼아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이익이 신성불가침의 국제법적 기준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 대통령은 새해 초 국정연설에서 전쟁지속의 의지를 다시 불태웠다. <항구적 전쟁정책의 선포>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적자재정을 마다한 막대한 군사예산 증액을 내걸고 미국의 향후 진로를 밝혔다. 전쟁이 아니면 존속할 수 없는 제국의 현실에 대한 미국의 자기 고백인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국가 전체의 기본목표를 자신의 제국주의적 역량의 끊임없는 강화를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재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는 일에 압축시켜가고 있다. 그것은 실로 “아메리카 제국이라는 가공할 리바이던의 세계적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런 나라의 요구와 압박, 간섭과 지배를 극복하고 돌파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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