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노자ㆍ허동현의 '한국근대 1백년 논쟁' <4> 대미 인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노자ㆍ허동현의 '한국근대 1백년 논쟁' <4> 대미 인식

"대미 의존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

***미국을 몰라서 맹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노자 선생님 반갑습니다.

개화기 지식인들의 대미 인식을 오늘의 현안에 비추어 우리가 어떠한 교훈을 얻을 것인가를 모색하는 옥고,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제국주의 침략국가이자 정신적ㆍ도덕적으로 타락해 무너져 내리는 나라인데, 100년 전 우리 지식인들은 국제정치에 대한 정보 부족과 판단능력의 한계로 미국의 침략적 본성을 꿰뚫지 못하고 미국에 짝사랑만 퍼붓다가 버림받았으니, 오늘의 우리들은 이 점을 거울로 삼아 종래의 친미 의식에서 벗어나 미국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민주주의와 인권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비 서구지역에 대해 반민주적이고 패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만, 몇몇 부분에서 선생님과 견해를 달리합니다.

먼저 선생님께서는 100년 전 우리 지식인들이 미국을 호의적으로―"과학과 문명의 화신"ㆍ"문명의 중심지"ㆍ"영토적 야심이 없는 공평한 나라"ㆍ"구세주"ㆍ"시혜자"ㆍ"약자를 보호하는 수호천사", "공평함과 신의를 중시하는 요순의 나라"로―본 이유를 크게 둘로 보시는 것 같더군요.

하나는 필리핀 식민화 과정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과 중남미에 대한 군사적 간섭에 보이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성과 인디안ㆍ이민 노동자 학살과 유색인종들에 대한 인종차별,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 등이 웅변하는 미국의 사회ㆍ경제적 모순과 계급갈등을 알아챌 만큼 우리 지식인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 계급적 이해, 서구 중심주의적 인식에 함몰되어 "미제의 야만적 실체"를 깨닫지 못할 만큼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 같습니다.

***유길준ㆍ윤치호도 미국의 치부 꿰뚫어**

사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1882년 전후에 형성되기 시작한 호의적 미국인식은 1894년에서 1905년 사이에는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된 고정관념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지식인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실체나 내부 모순을 잘 몰랐기 때문에 미국을 호의적으로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유학생으로 지미(知美)파 인사인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은 "약자를 돕는 정의의 나라라는 미국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피상적 인식에 경종을 울렸으며, 윤치호(尹致昊, 1865~1945)도 인종 차별, 마약과 범죄의 만연 등 "기독교 국가" 미국의 치부를 꿰뚫고 있었지요.

"혹자는 말하기를 미국은 우리 나라와 우의가 두터우니 의지하여 도움을 받을 만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멀리 대양(大洋) 건너편에 있으며 우리 나라와 별로 깊은 관계가 없다. 더구나 미국이 먼로 독트린(蔓老約, the Monroe Doctrine)을 선포한 후에는 유럽이나 아시아의 일에 간섭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설사 우리 나라가 위급해지더라도 그들이 말로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군대를 동원해서 구원해 줄 수 없다. 옛 말에 천 마디의 말이 한 발의 탄환만 못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의 통상의 상대로서 친할 뿐이며, 우리의 위급함을 구해주는 우방으로 믿을 바 못 된다."(유길준,「중립론(中立論)」, 1885)

"인도주의ㆍ문명ㆍ도덕ㆍ자유 등을 구가하는 강대국—기독교 국가—간에서 자행되는 [노예제도ㆍ아편무역ㆍ주류밀수 등] 죄악은 모두 혹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것도 그 나라들의 문명정도에 비례하여 비판되어야 한다. 강대국들의 이러한 범죄는 요즈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나의 신앙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공정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어떤 민족은 약하게 그리고 다른 민족은 강하게 만드셔서 후자가 전자를 못살게 굴 수 있도록 만드셨을까? 혹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역사와 사실을 잘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적도(赤道)의 불볕 아래에나 한대(寒帶)에는 강건한 민족 혹은 국민이 도무지 없다. 뿐만 아니라 각 인종이 보유하는 정신적ㆍ육체적 능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인종을 똑 같은 환경조건에 놓아두지 않으셨는가? 왜 하나님은 모든 인종에게 똑같은 체력과 지력을 허여하지 않으셨나?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힘들다. 나의 신앙이 이러한 의문들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되겠다."(윤치호,『윤치호일기』1889년 12월 23일자)

조미조약 체결에 관여한 김윤식(金允植, 1835~1922)도 1895년경에는 "미국사람은 말만 떠벌이지 행동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지요. 선생님께서 미국을 약자를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로 그린 것으로만 본 『독립신문』에도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사이의 식민지 쟁탈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난 미국의 대외 팽창주의를 비판하는 글이 실린 바 있었습니다.

"미국은 개국 이후 백여 년에 내치만 주장하여 속지(屬地)를 탐하지 않고 무역과 제조를 숭상하고 전쟁을 힘쓰지 않더니 작년부터 서반아(西班牙)와 싸워서 동으로는 포와국(布蛙國: 하와이)과 여송(呂宋, 필리핀) 군도를…서로는 쿠바와 프토릿고(프에로토리코) 등 섬을 점령하여 이전에는 동서양 전화(戰和)에 큰 관계가 없더니 이제부터는 세계정치에 대권리를 잡고 앉았으니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속지정약(원문대로)을 시작하고 보면 미구에 만국사기와 지도를 변할 일이 많이 생기려니와…"(『독립신문』, 1899년 1월 7일자)

***청ㆍ일ㆍ러 등 주변 열강의 침탈 속에 그나마 믿을 건 미국뿐**

이와 같이 우리의 지식인들도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에 뒤지지 않는 미국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으며, 1890년대 후반에 본격화된 미국의 대외 팽창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다수 우리 지식인들은 침략자의 손길에서 약자를 구해주는 "정의의 화신" 마이티 마우스나 기술과 문명을 주는 산타클로스로 미국을 보았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1882년부터 1894년까지 중국의 압제에, 그리고 1895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과 러시아 두 나라의 패권 다툼에 시달리던 조선왕조의 상황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중국ㆍ일본ㆍ러시아라는 부차적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스스로의 힘으로 막을 힘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과 생존에 필요한 외교적 지원을 얻음은 물론 근대화를 위한 인적ㆍ물적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선생님 말씀대로 100년만에 식민지에서 제2의 무역대국으로 변신한 미국의 압축성장을 높이 평가해 우리의 성장모델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 계급적 이해, 서구 중심주의적 인식에 함몰되었다는 지적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량치차오라는 동아시아의 선구적 지식인조차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목격한 1919년에야 사회진화론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깨달았고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이 살아남을 방법으로 "개명독재"라는 가진 자의 편에 선 국가주의적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면, 개화기 우리 지식인들에게 왜 사회진화론과 계급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했느냐고 채찍질 할 수는 없겠지요.

량치차오가 사회진화론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임을 깨달을 무렵, 한국인 중에서도 러시아혁명(1917)이 성공한 이후 "혁명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입장에서 미국을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로 보아 비판하는 김규식(金奎植, 1877~1952)과 박헌영(朴憲永, 1900~1955) 같은 인물들이 나왔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원동(遠東)에서의 혁명과업과 관련하여 왕왕 "연합전선"과 "협동"의 필요성을 운위합니다. 최근에 우리는 이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서구라파와 미국의 자본주의 열강이 동아시아 전체를 공동으로 착취하기 위해 서로 어떻게 결탁하였는지를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국의 "이타주의(利他主義)" 지향성과 "민주주의" 원칙의 범세계적 적용을 그토록 떠들어 온 위대한 미 공화국조차 워싱턴 회의에서 영국ㆍ프랑스ㆍ일본 등 악명 높은 3대 흡혈귀 국가와 가증할 4강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졌습니다." (김규식,"The Asiatic Revolutionary Movement and Imperialism", Communist Review, 1922)

"세상은 미국 건국의 역사를 보고 청교도적 순도(殉道)의 정신과 영웅적 행위가 충만하다고 찬미하나 그것은 표면만 본 피상적 관찰이 아니면 거짓말로서 정확한 사실을 숨기는 데 불과하다. 미국의 역사는 "토인 학살로 그 첫 페이지가 열린다." 미국에 처음 이주한 구주인은 신영토의 삼림과 황야에 사는 토인을 방축(放逐)하고 토민을 학살하고 토인의 주가(住家)를 약탈하는 일이 피등(彼等)에게 상제(上帝)가 준 "신성한 사업"이었다. …피등이 노예에 대한 법률이 혹독한 것은 구주 중세기 시대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업섯다. 교형(絞刑)ㆍ화형은 물론이오 "버-지니아" 교회에서는 17인, 신영란(新英蘭, New England)의 교회에서는 12인의 노예가 일시에 사형에 처하엿다는 사실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엿다." (박헌영,「역사상으로 본 기독교의 내면」, 『개벽』 1925년 11월)

이와 같은 미국을 "흡혈귀"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국가로 보는 김규식의 미국 인식이나 기독교의 이율배반적 위선을 고발하는 박헌영의 미국비판은 일제하와 해방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미국을 보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지요.
사실 오늘날 미국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외세는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과 국교를 맺은 해는 약 120년 전인 1882년이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지요. 이처럼 짧은 교류기간으로 인해 우리는 유사 이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가져 온 중국과 일본에 대해 호오(好惡)가 분명한 인식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는 불확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미국을 문명국ㆍ강대국이자 우방으로 보는 친미와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사발전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침략국가로 보는 반미가 격돌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친미와 반미로 대표되는 미국인식은 오늘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개화기의 호의적 미국인식은 일제한 우파 민족주의자나 독립운동가의 대미 인식의 토대가 되었으며, 해방후 6ㆍ25전쟁과 냉전기를 거치면서 "구세주 나라"로 미국을 보는 대한민국의 공식적 미국관으로 굳어졌지요.

반면 부정적 대미 인식은 일제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지식인들에게 전파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지만, 오늘 우리 사회 반미의 직접적 뿌리는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30여년간 지속된 군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실망한 지식인층이 1980년대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비판하는 수정주의사관에 입각한 부정적 미국인식을 받아들임으로써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다원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외세에 대한 비판의식이 조성됨에 따라 증폭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 또한 "폭도"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양민을 사살하고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의 유적과 유물들이 파괴ㆍ약탈되는 것을 모른 척한 미군의 행위는 분명 야만적 반달리즘(vandalism)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라크 주둔 미군들이 모두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미제의 고용 살인자"이며, "기름 대신 인간의 살과 피를 태우는 살인 기계 미국의 모습을 보면 인류역사가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죄는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미군을 증오하고 적대하는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를 뿐이지요. 2003년 5월 미국이 공식적 종전 선언 이후 복무지를 벗어나 소속부대로 돌아가지 않은 미군의 수가 1천7백명이고, 정신적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미군도 7천명이 넘는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로 미루어 미군들도 군인이란 특수신분 때문에 자신의 양심에 거슬리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책망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심과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대다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또한 저는 아들 둘을 이라크전선에 보낸 래리 시버슨이란 미국시민이 쌈지 돈을 털어 작년 9월 24일자 『뉴욕타임스』에 실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내 아들들을 배신했다"는 제목의 반전광고가 상징하듯, 미국 시민사회 전체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대외 침략정책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가 전세계에서 벌어질 때 미국 시민들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를 벌였으며,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부시의 경쟁자로 나선 민주당 소속 후보들 중에는 이라크 전쟁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건 인물들도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적인 미국 배척이나 추종은 바람직하지 않아**

미군 모두를 "살인기계"로 보거나 미국 시민사회를 "오락적인 폭력"으로 전쟁을 즐기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로만 규정한다면, 우리는 인류 필망의 암울한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라크 주둔 미군과 미국 시민사회의 양식과 이성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면, 각국의 시민사회가 연대해 전개한 반전시위나 평화촉구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선 미국이 "전쟁을 먹고 사는 괴물"로 "세계체제의 정상에 서있는 한 우리에게 안심과 평화의 날은 오지 않는다"고 보고 계십니다. 또한 오늘의 한미관계를 "종속관계"로 보고 "극미의식"을 갖는 것이 우리가 취할 태도라는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물론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미관계사를 "침략자와 피침략자"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관계사를 미국의 일방적인 전략적ㆍ경제적 이해타산만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한 미국과의 유대 강화와 이를 통한 우리의 국익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다면, 우리는 호의적 미국인식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다원적 시민사회도 이룩했고 대외적으로는 조선시대 이래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서구중심 세계질서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고도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격돌하는 친미와 반미의 고정관념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지나지 않기에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냉전이 해체된 지금 친미와 반미의 소모적 논쟁을 넘어 미국에 대해 보다 유연한 인식을 갖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우리가 냉전시대의 소산인 김동리의 시 「젊은 미국의 기빨―벤프리트 장군에게 드리는 예장(禮狀)」과 1948년 "제주민중항쟁" 때 뿌려진 「호소문」에 동감해 또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 한국을 도와준 위대한 은인들
맥아더 릿쥬웨이 트르맨 아이젠하워 등
수많은 이름을 내 맘은 기리 잊지 못할 것입니다.
드러나 당신처럼 내 가슴에 고동을 주고
내 목에 흐느낌을 일으킨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가 친구의 원쑤를 미워하고
형제가 형제의 원쑤를 갑되
어느 의인(義人)이 또한 나의 수도(首都)를 당신 같이
아끼며 사랑하며 지켜주었겠습니까
일찍이 한국의 어느 항구에 들어왔던 외인(外人)의 선박에서도
당신의 아드님을 비롯한 많은 부하들이
이 고장에 뿌려주신 선혈에 비하여 더 고귀한
빠이블과 삽자가를 우리는 그 속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민 동포들에게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어!
'4ㆍ3' 오늘은 당신님이(원문대로) 아들 딸 동생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단정(單選單政)울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美帝) 식인종과 주구(走狗)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당신님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의(원문대로) 부르는 길 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제국의 오만"을 과시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간의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한 세기 후 우리 후손들이 우리 시대 한미관계의 회계 장부에 어떤 점수를 줄지를 유념해야 하겠지요. 반미와 친미의 고정관념을 넘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인식체계에 어떠한 결함은 없는지, 그리고 한 세기 전 실패한 용미(用美)의 선책이 무엇일지를 좀더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힘이 정의인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선생님이 최악(最惡)으로 보는 미국 제국주의나 차악(次惡)으로 보는 중국이나 유럽연합 같은 "마이너" 제국주의나 침략의 속성은 매 한가지라고 보기에, 무조건ㆍ무비판적인 미국 배척이나 추종이 오늘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허동현 드림

***더 읽을 만한 책**

김기정.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역사적 원형과 20세기초 한미관계 연구』. 문학과 지성사, 2003.
김용덕. 「한국인의 미국관」. 『중앙사론』1, 1972.
문동환ㆍ임재경. 「(대담) 우리에게 미국은 누구인가?」. 문동환ㆍ임재경 외. 『한국과 미국』, 실천문학사
류영익. 「통시기적으로 본 대미인식」. 류영익 등. 『한국인의 대미인식』. 민음사, 1994.
―――. 「개화기의 대미인식」. 위의 책.
―――.「조미조약의 성립과 초기 한미관계의 전개」, 『한국근현대사론』. 일조각, 1992.
아라리 연구원 편. 『제주민중항쟁』Ⅱ. 소나무, 1988.
유성하. 『한미간계의 발자취』. 대동, 1991.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ㆍ미수교 1세기의 회고와 전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한철호 역. 『미국의 대한 정책 1834~1950』. 아시아문화연구소, 1998.
Taik Sup Auh, "Korean Perception of U.S-Korean Relations," Robert A. Scalapino and Sung-joo Han, eds., United States-Korean Relations, Berkeley: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University of California, 1986.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