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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저울'위에 '권력의 칼'마저 올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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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저울'위에 '권력의 칼'마저 올리려는가

[기고] 곽노현 교육감사건과 검찰

지난 19일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검찰의 프레임에서 현저하게 벗어났다. 관련자들에게 전부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기초사실들은 검찰과 보수적인 매체들의 합작 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판결이 나오자마자 상처입은 검찰이 '화성인 재판'이라거나 '지구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거나 곽 교육감을 '피싱(fishing, 낚시) 사기단의 두목'이라고 주장했다. 교육감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의 태도에 대해 사건의 전개 순서에 따라 몇 가지 짚어보겠다.

첫째로, 검찰은 이 사건의 시작부터 줄기차게 피의사실을 공표하였다. 물론 보수언론에 갖가지 방식으로 중계한 검찰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할 간 큰 검사가 있을법하지 않지만, 어쨌든 공표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겠다. 특히 보수신문의 인증샷을 위하여 검찰 조사 후 서울구치소로 돌아가는 교육감을 회차시키는 과감하고 모욕적인 처우는 압권이었다.

피의사실 공표를 주목하는 이유는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전이 정치재판의 기본적 수행전략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단일화협상과정, 후보사퇴, 사후금원지원 간의 관계를 면밀히 규명할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의도의 연쇄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고 이를 후보매수라고 규정하였다. 후보직을 매수하고 대가를 나중에 주고자 했기 때문에 더욱 교활한 범죄라며 여론을 부채질하였다.

실제로 검찰은 가장 추악한 스토리를 만들어 하이에나 언론과 자칭 도덕주의자들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하여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율법가들과 선지자들은 도덕적 여론재판을 끝냈다. 곽 교육감에 대한 '묻지마 증오'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검찰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여론을 왜곡하고 착취하였다.

둘째로, 검찰은 자신들이 매체에 흘리고 세상에 포고한 대로라면 당당하게 사전매수죄(형법 제232조 제1항 1호)로 끝까지 가야했다. 검찰은 실컷 사전매수죄로 세상을 격동시키더니 정작 사후매수죄(형법 제232조 제1항 2호)로 공판을 진행하였다.

검찰의 소송전략이야말로 '피싱 사기극'에 가깝다. 반국가단체 구성죄나 이적단체 구성죄라는 거창한 범죄로 시작한 국가보안법 사건들이 이적표현물소지죄로 졸아드는 경우와 똑같다. 이적표현물죄는 본질상 안보 검찰의 사회보험에 지나지 않는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아니 태산명동서일편(泰山鳴動書一編)인 셈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미 상당수 사람들은 흉측한 후보매수논리에 낚인 나머지 이제 1심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하였으니 교육감은 사직하라고 아우성을 친다. 검찰의 피싱은 결국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2호 행위만을 죄목으로 거론했다는 점은 검찰에게는 수치스러운 대목이다. 1호 행위와 2호 행위는 조문의 편제상 같은 죄목으로 묶여 있을 뿐 결코 불법이나 비난 가능성에 있어서 동일한 유형의 행위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찰은 선거법, 즉 1호 범죄의 고의를 정치적으로 유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은 법원이 곽 교육감에게 경미한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십중팔구 검찰의 비난은 1호 행위와 2호 행위 간의 구조적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 19일 1심 재판 이후 풀려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뉴시스

셋째로, 지난 10월 중순에 시작된 공판이 거의 4개월가량 진행되었다. 검찰이 수사단계에서 조사했던 참고인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관련자들도 증거조사를 위해 차례로 법정에 소환되었다. 이들은 아주 활달하게 그간의 사건에 대해 증언하였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스토리와 그 구성능력에 대해 피고인 측뿐만 아니라 재판부도 몇 차례 의문을 표시하였고, 공판이 진행될수록 곽교육감 측의 이른바 '비상식적인' 부조 스토리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한 사건관련자 중에서 이 스토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한 마디로 검찰의 스토리는 무너졌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사실은 검찰의 공소장에서 전개된 무너진 스토리가 검찰의 마지막 구형의견에서까지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에 지적한 두 가지 문제점은 검찰의 소송수행 책략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증거조사를 마친 이후에도 입장의 불변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예산을 사용하며 온갖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의 성실한 직무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검찰은 그들의 작업가설이 4개월의 심리과정을 통해 전혀 수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것일까? 아마도 다수의 방청객들은 검찰의 스토리가 그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 소송을 수행한 검사들마저 검찰의 스토리를 의심했지만 직무상 초지일관 밀어붙여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어쨌든 사실인정을 둘러싸고 감각의 차이는 피할 수 없지만 4개월에 걸친 재판부의 집중심리가 검찰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법개혁의 방향은 장기적으로 공판중심주의와 배심제이며, 법정의 변증도 사물의 본성과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움직이는 대화적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에 명망 있는 교수들과 고위 공직자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공판중심주의가 모범적으로 운용되었으며, 증인과 피고인의 발언기회가 자유롭게 보장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추측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사실들에 양념을 친 조서를 작성하고, 공판과정에서 검찰조서는 다양한 이유로 변변히 다투지도 않은 채 재판부에 의해 사건의 실체로 확립되고 만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향유(?)하는 법치국가의 재판이다.

집중심리과정을 보면서 진실발견을 위해 법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게 되었다. 온갖 증명과 토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초기가설을 수정하지 않는 자는 우주설계자이거나 검찰이 말하는 화성인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법정의 심리과정은 유무죄를 논하고, 책임의 유무를 다투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각자의 유리함을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법정이 협력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포럼일 수 없다. 하지만 기소하고 처벌하는 권력을 국민이 공직으로 설치하고 높은 급여와 명예를 제공하는 이유는 비록 그 권력기관이 게임의 당사자로서 사건에 관여하더라도 최소한 유불리를 떠나 진실을 추구해야 할 객관적 책무가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사건 초기에 검찰이 대대적으로 유포했던 매수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진실의 일부를 인정한 셈이고, 그 한도에서 관련자들의 명예는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물론 나머지 부분에서도 앞으로 진실을 발견해야 하고, 그에 대한 법적 평가도 새롭게 다투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기 위하여 법의 저울에 들고 있던 칼까지 올려서 저울추를 움직이려는 권력이라면 국민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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