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러진 화살>, 최종병기 법정을 찾아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러진 화살>, 최종병기 법정을 찾아서

[다산 칼럼]<13>

스크린 법정을 펼쳐 낸 <부러진 화살>이 설 연휴에 개봉돼 열기를 뿜고 있다. 2007년 터진 석궁사건에서 '활'의 의도적 발사여부가 법적 논쟁의 '최종병기'였을 것이다. 그 앙금은 르포 소설을 낳았고, 그에 기초한 르포성 법정영화 <부러진 화살>을 생산해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노라면 법정영화의 묘미를 가슴 저리도록 느끼게 된다.

정지영 감독이 오랜 부재를 딛고 13년 만에 연출한 <부러진 화살>은 법정영화의 덕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목록에서 대표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법정영화는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해 온 강력한 장르이다.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은 정교한 이미지가 빛나는 걸작으로 통한다. 한국영화사에도 <검사와 여선생>(1958, 윤대룡)이나 <법창을 울린 옥이>(1966, 임권택) 등이 존재한다.

설연휴, 스크린-법정의 진실과 폭소

정의로운 법과 공정함이란 가치를 성찰하게 만드는 스크린 법정은 관객-배심원과 함께 허구로써 진실의 법정을 짜나간다. 대중오락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할리우드나 다른 나라에서도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살려내는 법정영화를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흑막을 고발하는 <JFK>, 법정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심층적으로 드러낸 이란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렇듯 법정영화는 법집행의 사연을 중심에 놓고 드라마화하는 본질적 구조를 갖고 있다. 법정영화로서 <도가니> 역시 권력과 밀착한 복마전의 긴장감을 치열하게 보여줘 아픈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아픔은 정의로운 법집행을 바라는 에너지로 전환되어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가시나무 새'가 흘러나오면 비애감에 온몸이 저릿저릿해 온다.

이어 등장한 <부러진 화살>은 법정영화 고유의 심각함과 아픔 속에서도 유쾌한 코믹성을 가미하고 있어 흥미롭다. 심각한 주제를 다소 무겁게 풀어내던 정지영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변한 것이다. 영화 대사처럼 '재판이 아닌 개판'이 되버린 상황에서 법지식으로 무장한 저항은 통쾌한 유쾌함을 전파해준다. 그런 대목에선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법대로 전개되지 않는 법정의 권위가 유쾌하게 폭로되기 때문이리라. 이런 예외적 성과는 매력적인 캐릭터 연출과 관찰자적 시점에서 나온다. 채플린 말처럼 비극적 인생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법정영화의 새 지평을 열기에 충분해

수학자답게 원칙과 상식에 근거한 법을 아름답다고 믿는 피고인 김 교수, 이에 반해 법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법적 정의를 수행하느라 상처투성이가 되버린 박 변호사, 이 두 사람 앞에서 판사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곤혹스러움을 찡그린 표정으로 감춘 채 안간힘을 쓴다. 수학자다운 집중력으로 관련법을 독학한 김 교수는 지행합일 원칙주의자의 본때를 증명해낸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보수 지식인의 덕목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대학 공책에 가득 적은 법조항을 외우고 읽어가며 재판장의 위선을 고발한다. 대한민국에는 (법대로 집행하는) 전문가가 없으며, 오직 사기꾼만이 전문가라는 일갈! 이런 대목은 일반적인 법정영화에선 맛보기 힘든 재미, 즉 판결을 넘어 선 전복적 쾌감을 선사해준다. 그런 쾌감은 '법대로' 집행되는 또 다른 법정을 꿈꾸게 만드는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4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김 교수는 얼차려 시키는 간수 이름을 손바닥에 적으며 저항권을 행사한다. 그리곤 우리에게 미소를 날린다. 해피엔딩을 넘어선 유쾌한 도발이다.

영화는 허구이며 현실이 아니다, 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의 산물이며, 드라마 소재로 현실을 우려 먹고 사는 예술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영화보기의 의미는 삶의 한 순간을 인문예술학적 행위로 맛보는 데서 나온다. 즐거운 영화보기가 가능한 곳, 의미 충만하고 사회치유력까지 곁들인 <부러진 화살>의 '스크린-법정', 바로 그 곳에 마련된 가상 배심원 자리에 앉아 보시길 권한다.

팁: 연기자로서 안성기의 재발견. 박원상, 문성근, 김지호 등 연기자들의 생생한 리얼리티 연기가 빛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공판 장면. ⓒ아우라 픽처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edasan.org) 1월 2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