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 중순 인도에서 열리는 <세계사회 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조희연 교수(성공회대)는 부시 낙선 세계 캠페인을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한 전략으로 공식 제기하게 된다. 이는 부시의 재선에 제동을 거는 작업이 이제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현안으로 긴급하게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오는 2004년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 한반도의 운명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부시 낙선 운동의 국제적 전개는 잘만하면 새로운 지구촌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 세계적 연대운동의 한 전략 목표로 구체화되어갈 전망이다.
***'부시의 세계'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워**
지금 세계는 자신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서, 제국주의 마지막 단계의 반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부시를 중심으로 한 초국적 대자본과 군사주의 동맹체제인 국제 파시즘의 폭력"을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시의 낙선이 곧 세계가 현재 겪고 있는 착취와 억압, 그리고 빈곤과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열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이 운동의 세계적 여파가 증폭되어 나가게 되면 미국의 세계정책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교정되어가는 중대한 계기와 고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사회의 집단적 위력을 분명하게 과시함으로써 고압적 일방주의에서 협력적 국제주의로 미국의 세계정책이 선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부시 낙선 운동의 구상은 지난 해 2003년 7월 25일 프레스 센터에서 열렸던 <정전협정 50주년 기념 세미나>의 현장에서 미국 문제와 관련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번 이런 것도 생각해봄직 하지 않은가"라는 차원에서 출발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4년 미국 대선이 가지게 되는 인류사적 의미에 주목하게 된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이 문제를 보다 공식적 차원에서 제기하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던 것이다.
부시 낙선은 미국의 부시정권이 "초국적 대자본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무장력을 앞세운 세계제국의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전ㆍ평화/반세계화 운동의 결합으로 가능할 수 있는 사안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세계 언론이 주시하는 <세계사회 포럼>에서 공동의 전략목표로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면 미국사회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대선의 선택을 놓고 고뇌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점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낙선 운동, 세계와 미국 사회의 호응 얻을 방도 있어**
물론, 부시 낙선 운동은 미국의 선거에 대한 "내정간섭"의 차원을 갖는다는 점, 민주당 선거지원이 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점들로 인한 미국 사회 내부의 반발로 도리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더하여 미국 선거의 과정에 국제사회가 실질적인 관여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 운동의 한계가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부시의 재선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은 국제적으로 더욱 심각한 도전에 처하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고립상태의 심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시민사회가 인식하게 된다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와 함께 부시 재선은 미국 자신의 공화정 전통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민주적 원칙과 기반에 타격을 주는 사태임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다. 이에 성공한다면 이는 미국 자신의 본래의 역사적 좌표를 되찾게 하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 "세계적 반미운동이라는 거부감을 피하면서" 미국 시민사회의 호응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미국사회 내에서는 "부시 타도 운동(Beat Bush Campaign)"을 펼치려고 벼르고 있는 개인과 운동단체가 적지 않게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의 세계 정책적 기조가 비난과 고립을 자초할 뿐인 일방주의에서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을 회복시킬 협력적 국제주의로 돌아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국 시민사회의 움직임과 제대로 결합할 수만 있다면 부시 낙선운동은 헛된 망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부시 없는 세상, 더욱 안전해(The World is Safer Without Bush!)"**
이 운동을 위한 전략구호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오늘날 전 세계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부시정권이라는 세계여론이 비등하다는 차원에서 "부시 없는 세상, 더욱 안전해(The World is Safer Without Bush!)"를 큰 주제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는, 부시의 군사주의 정책이 세계를 안전하게 하겠다고 하는 주장의 전복(顚覆)을 시도하는 동시에 그로써 강성 신보수주의자들의 전쟁정책을 폐기하도록 하는 세계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다. 이러한 구호로 결집되는 세계여론 앞에서 미국 사회는 부시를 내세우는 한, 미국은 전 세계와 척을 질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느끼도록 되어갈 것이다.
둘째로 외부의 내정간섭적 움직임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로 도리어 부시진영 지지 세력의 결집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국에서 공화정으로(From Empire to the Republic)"을 미국사회를 겨냥하여 내세우는 것이다. 이는, 부시 낙선 운동이 미국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공화정 전통의 민주주의 회복에 보다 주안점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방식이라고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최근 "제국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국의 성장이 미국의 민주적 공화정 체제의 위기를 결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드높다. 이러한 현실은 가령, 시민과 이민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애국법"이나 기타 정보기관, 비밀경찰 권한 강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계속 받아들일 경우 미국은 자신이 자유의 이름으로 지켜온 권리들을 잃어가게 된다는 점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제국에서 공화정으로(From Empire to the Republic)"**
하여 이러한 미국 내부의 논의와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공화정의 가치>를 <제국의 가치>보다 상위에 두려는 정치철학적 접근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부시 낙선 운동은 미국 시민사회의 거부와 반발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호응과 동시에 세계적 연대의 틀 속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공포로 다스리는 제국(Fear's Empire>)을 출간한 미국 국가안보전략 전문가이자 메릴랜드 대학 석좌교수인 벤자민 바버(Benjamin R. Barber)는 "테러에 대한 공포를 공포의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미국식 자본주의(McWorld)를 군사적 접근으로 전 세계에 강요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지도력을 중심으로 한 협력적 국제주의를 내세우는 보수적 자유주의자에 속하는 그는 "제국을 극복하고 공화정 전통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만이 세계의 무질서와 폭력, 그리고 테러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부시의 선택은 미국과 전 세계를 날이 갈수록 위험에 빠뜨리고 있으며, 미국 사회 자신의 민주주의 전통에도 일대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세계의 평화도, 자신의 민주주의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도리어 파괴하면서 그 평화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전쟁을 일으킨 위선적 권력이다.
***흑암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이제 이러한 어리석은 불장난은 중단되어야 한다. 인류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세계가 서로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도 모자란 판국에 침략과 살육, 그리고 폭력의 지배를 국가의 정책으로 삼아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사태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로 야만의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시 낙선 운동의 세계적 캠페인, 그 실질적인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는 이제부터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이 전 세계 도처의 선거에 냉전전략의 관철을 위해 공작적으로 개입, 간섭해왔던 역사를 역전시켜 미국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인류적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노력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출발이 미미한 듯하나, 그 대의에 따르는 의지에 찬 이들이 하나둘 집결해나갈 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우리를 오랫동안 뒤덮고 있었던 미국에 대한, "불가피함을 구실로 했던 패배주의"를 마침내 극복하고 자본과 군사력이 주인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정의로우며 평등한 세계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가 주역이 되는 그런 세상, 함께 꿈꾸어보자.
새로운 세상은 그것을 꿈꾸는 자에게서부터 비롯되는 법. 그렇게 되어간다면 2004년의 역사는 그렇게 해서 인류적 평화혁명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으리라. 1999년 시애틀에서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의 4년의 세월은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응집력이 성장한 시기였다. 이제 그 결실의 새로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왔다.
흑암이 빛을 이길 수 없다. 그 빛 가운데 가려는 이, 결단을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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