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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를 무용지물 취급하는 대법원, 대체 언제까지…"

[기고] 대법원의 입장 변화를 바란다

실망스런 헌법재판소 결정

헌법재판소는 2011. 12. 29. 2007헌마1001 등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대한 위헌심판청구 사건에서,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및 255조 제2항 제5호 중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그 게시판·대화방 등에 글이나 동영상 등 정보를 게시하거나 전자우편을 전송하는 방법'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 많은 시민단체들과 유권자들은 크게 환영했다. 비록 인터넷을 통한 의사표현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동안 선거와 관련된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막아왔던 대표적인 조항에 대해 '위헌성이 있다'는 판단이 최초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고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실망하게 되었다.

이렇게 실망하게 된 이유는 이번 결정이 인터넷을 통한 의사표현에 국한된 결정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크게 두 가지가 더 있는데, 한정위헌이라는 결정방식을 취하였기에 법원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하나고,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를 실질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만을 대상으로 위헌성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이 다른 하나였다.

나는 법원인데 자네는 누구인가?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령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데 취하는 방식은 크게 단순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등이 있어 왔다. 단순위헌이라는 것은 해당 법령의 위헌성을 확인하여 결정 시부터 바로 법령의 효력을 없애는 방식이다. 헌법불합치는 법령의 위헌성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바로 그 효력을 없앨 경우 많은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여겨질 때 새로운 입법을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적용하라고 하거나 혹은 입법자의 판단을 존중하여 형식적으로는 법령을 존치시켜두면서도 새로운 입법이 도입될 때까지 적용하지 말라는 결정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한정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법령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위헌적인 해석방식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원칙대로라면 헌법재판소가 법령에 대해 행한 위헌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이 그에 따르도록 하는 효력-기속력-을 가지고 있다. 국가기관 중 하나인 법원도 위헌결정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고, 이미 끝난 사건에 대해서는 재심의 청구를 허용하여 결국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른 위헌결정방식과는 달리 한정위헌에는 따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정위헌이라는 것은 법을 해석하는 방식이나 방향에 불과한 것인데, 법에 대한 해석권한은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법원에 있는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법령해석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이유로 다른 위헌결정과는 달리 한정위헌결정을 이유로 한 재심도 불허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뭐라 했든!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의 효력을 바로 상실시키지도, 잠정적으로만 적용하거나 적용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의사표현이 금지되는 것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하여 특정한 해석방식을 제거하는 형식 즉 한정위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정위헌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고수하게 되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위 조항을 근거로 하여 유죄판결을 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 법원이 그동안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위헌성이 없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 조항을 이유로 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재심청구 역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우리 국민들이 얻은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아무런 쓸모없는 장식과 같은 결정을 하나 얻은 것에 불과하다. 곧 있을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이전과 같이 인터넷 공간조차 국민들에게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

▲ 대법원 ⓒ뉴시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헌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에서 법률에 의한 재판은 당연히 "합헌"인 법률에 의한 재판을 의미한다. 헌법을 국가의 최고법으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헌법을 위반되어서는 그 효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을 행하는 법관은 어떤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 먼저 적용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는지를 살펴야 하고,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면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 법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비록 법령의 해석방식을 정하는 한정위헌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실질이 위헌결정인 이상 법원은 이에 따라 재판을 해야 정의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법원이 안 받아들일 것을 뻔히 알고도 한정위헌이라는 방식을 취해 실질적인 권리구제에 많은 걸림돌을 남겨 둔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연하지만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일단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유권자자유네트워크 등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근거해 재심청구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재심청구에서 법원은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를 둘러싼 국민들의 열망을 충분히 고려해 기존의 입장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또다시 기존입장을 고려하여 위헌성이 인정된 법률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번에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그동안 법률해석권한을 독점하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법원의 저의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권한다툼에서 우위에 서 있겠다'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참고로, 헌법재판소장인 이강국 재판관은 이번 결정을 통해 2년 만에 자신의 입장을 바꿨다. 국민과 대의를 위한다면 입장을 바꾸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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